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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는 내세가 없는가?
조규현  2016-07-25 15:18:01, 조회 : 190

기독교에는 내세가 없는가?

어제 오후(2016.7.24.) 예배 설교 때 목사님께서 요14:1-4를 본문으로 하여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설교의 내용인 즉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죽고 난후 가는 어떤 시공간적인 가시적 나라가 아니라, 이미 내주 하시는 성령의 은혜 안에 있는 신자의 영적 상태가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강조 하셨습니다. 아울러 오전 설교 때 ‘에덴’의 의미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통치 안에 거하는 성도의 모습이라 했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에서 결론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역시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이기 보다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는 성도 곧 ‘거룩한 성 예루살렘’, 교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교하다보면 ‘기독교에는 내세가 없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다음의 성경 구절들을 가지고 목사님의 설교 내용에 첨부하고 싶습니다.

1) 거처를 예비하면 혹은 낙원에 있으리라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And if I go and prepare a place for you, I will come back and take you to be with me that you also may be where I am.

⇨ 거처(place)는 분명히 장소적 의미를 갖고 있기에 내세를 언급하고 있으며,  

(눅23:42-43)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 순간에 있는 강도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낙원’의 의미가 ‘즐거운 동산’이란 뜻으로 70인 역에는 '에덴 동산‘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낙원 역시 장소적 의미를 갖고 있기에 내세를 언급할 수 있으며,


2)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 더 나은 본향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Now we know that if the earthly tent we live in is destroyed, we have a building from God, an eternal house in heaven, not built by human hands.

⇨ 장막 집(the earthly tent)과 영원 한 집(a building, an eternal house)을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내세를 언급할 수 있으며,  


(히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 더 나은 본향(Instead, they were longing for a better country--a heavenly one)은 성도의 최종적인 소망이기 때문에 분명히 내세를 언급할 수 있으며,


3) 재림의 약속

(행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사도 신경의 내용대로 심판하러 재림하심을 믿으며,


4) 새 하늘과 새 땅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Then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had passed away, and there was no longer any sea.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에덴 동산의 모습이 계시록에 다시 언급되는 것은 에덴 동산의 것들이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예표로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저 ‘여호와 증인들’이나 ‘신천지 이만희’가 주장하는 시공간적인 지상의 낙원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내세적인 시공간적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믿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5) 성도의 지상적 삶

(고후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그래서 성도에게는 이 땅의 삶을 나그네에 비유하면서 더 나은 본향을 향해 소망하는 은혜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신학세미나에서 발표한 저의 졸필 ‘구속사적으로 본 요한 계시록 연구’의 결론 부분의 몇 구절을 올려 봅니다.

성경의 대 주제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는 시공간적 의미의 지상낙원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그 나라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나라이며(Already) 아직 미완성(Not yet)의 나라이다. 이미 완성된 나라는 영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삶(바실레이아)을 의미하며, 미완성의 나라는 육을 입고 있는 성도의 현실적 삶을 의미함과 동시에 주님의 재림과 함께 최후의 대 심판을 거쳐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새 예루살렘(계21:1-2)을 의미한다. 성도는 내세적인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면서 살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자이다.



우물가 여인
신 목사님의 설교가 내세?의 삶을 부정한 것으로 들렸다면 조규현님 자신의 문제로 보입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침노해온 성도의 삶을 강해한 것을 두고 현세와 내세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목사님의 논지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로밖엔 보이지 않네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는 여기있다 저기있다 할 것이 아니요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는데 최후의 대심판을 거쳐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면 그런 주장은 세대주의적 시공간에 매인 비성경적 관점이라고 하겠지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묵시 안에 완료된 아들들을 말하는 겁니다. 성도는 이땅에서부터 영원한 현재를 살고있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영적공간 안에서 창세전 약속이 실현된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내세로 규정될 천국은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새하늘과 새땅은 내세를 기다리는 자에게 있지않고 날마다 종말을 사는 교회 자신이 약속의 땅인 것입니다. 2016-07-27
08:33:59

 


조규현
좋은 글 올려 주신 우물가의 여인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항상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다음의 글귀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와 다른 점에서 항상 너그러워야 한다”
“너가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를 뿐이다.”

답변의 글 올립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성도의 직분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각자의 깨달음의 폭이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생각이 나와 혹 다를 수는 있으나 틀린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저가 신윤식 목사님의 설교 내용이 틀렸다거나 잘못 되었다고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의 하나님 나라의 강해에 공감한다고 했고요. 또한 신 목사님이 ‘내세를 부정하고 있다’라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하나님 나라의 이해에도 공감합니다. 그러나 실존주의적 관점의 이해에서 또 다른 차원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하여 다만 이미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already)와 성도의 현실적 삶의 정황(not yet)을 첨부하여 언급했을 따름입니다.
첨언하고 싶은 것은,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성경 지식과 신학적 상식을 더 깊게 공부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6-07-31
08: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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