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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율법주의
조규현  2016-10-31 06:25:03, 조회 : 148

율법과 율법주의

바울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구원의 수단으로 삼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이중적인 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 보았다. 율법을 선한 공적을 쌓아 자신의 구원을 확보하려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이 유대주의 오류라는 입장이다.

이는 루터의 ‘율법’과 ‘복음’의 대조에서 나온 입장으로서 율법을 성취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고 하는 시도가 바로 그들의 죄의 실제적인 본질인 것이다. 믿음에 의한 칭의(稱義)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 칭의(稱義)를 대립시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오직 믿음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고백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혹자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단순하게 구원과 의(義)의 수단으로써 율법을 거부하기 위한 것으로 율법을 이해하고 있다. 예수는 율법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율법 그 자체의 완성자로 오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율법주의자들을 심판과 저주의 대상으로 질책하신 것이다. 바울 역시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도를 강조하면서 율법 그 자체를 모두 거부한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를 거부한 것이다. 즉 ‘행함’을 거부해서가 아니라 율법의 맥락 속에서 행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율법주의를 배격한 것이지 율법 그 자체를 모두 폐기한 것이 아니다(롬3:31, 롬6:1, 롬6:15, 갈5:12). 예수님은 율법의 폐기론자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것이다.
우선 ‘율법’과 ‘율법주의’의 개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1. 율법과 율법주의

1) 율법
‘율법(law)’은 아마도 ‘율법의 행위(the works of the law)’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바울이 '율법(law)'이라고 말할 때 이 단어의 뜻은 모세율법과 구약 전체 및 어떤 인간의 내적 원리(양심)을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롬2:14-15, 롬7:21, 롬7:23).

2) 율법주의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율법적 행위들을 율법주의라 한다.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단지 그를 죄에 이르게 하며, 실로 이러한 노력 자체가 결국 이미 죄인인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무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키려는 그 의도와 노력이 죄인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인간의 자기 노력 자체가 인간의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 따라서 유대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2. 율법의 한계

유대인들의 율법관에 있어 첫째는 율법이 하나님 앞에서 의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수단으로서 신봉되었다. 둘째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롬2:13)을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의인은 없다(롬3:10)”고 단정하고, 모두가 심판의 대상임을 선언하고 있다.(롬2:12)


3. 율법의 기능

믿음을 통한 구원의 필수성을 더욱 강하게 일깨워주는 긍정적 목적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필수성과 위대성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 먼저 로마서 1:18-3:20절에서 죄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의 비참과 절망을 말하고 있다.

1) 죄를 깨닫게 함(롬3:20, 롬7:7)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2)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까지 초등교사 역할(갈3:24-25, 롬5:13, 롬5:20)

(갈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롬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4. 새 언약

(갈3:21-22)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고후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율법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것이다. 따러서 율법의 불연속성과 연속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1) 율법의 완성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Christ is the end of the law so that there may be righteousness for everyone who believes(롬10:4)“

크리스챤은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이며,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며,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롬7:4-6, 갈2:19).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이다(갈3:13). 그리고 크리스챤은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의 권세에서 해방되었다(롬8:2-3).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의(義)의 권세 아래 있다.

(롬8:1-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2) 율법의 불연속성

‘율법의 종노릇’과 ‘은총의 자유’ 사이를 대립시켜 ‘불연속성’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롬10:4). 하나님께 접근하는데 있어 율법이 차지하는 자리는 없어진다. 성령과 자유의 새 시대는 율법의 시대를 대치되었기 때문이다.(롬6:14, 고후3:6, 갈5:1)

(롬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고후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3) 율법의 연속성

율법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으로서 성령의 사역을 강조함으로써 율법과 기독교 윤리 간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율법과 복음은 본질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지 않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롬10:4을 율법의 마침이 아니라 ‘목표’이며 그 깊숙한 내적 의미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6. 결론

“바울은 율법에 관하여 유연성을 가진다. 복음 앞에서는 율법의 행함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롬3:27-28), 그러면서도 율법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롬3:31, 롬6:15)고 한다. 바로 그의 유연성이 우리의 가장 큰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것은 각 기독교 세대가 하나님의 율법을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새롭게 읽고 따라서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새롭게 찾아내는 길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율법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약의 율법은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의 지표가 된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이제 율법의 지배를 벗어난 자유인으로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로서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은혜로운 천국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을 복음의 핵심으로 전하였다(Already). 그러면서도 크리스챤의 현재적 삶을 강조하였다(Not yet).

(롬15:1-3)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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