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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인 동시에 의인
조규현  2016-11-15 06:38:17, 조회 : 138

죄인인 동시에 의인

최갑종 교수는 “바울의 신학은 살아 있는 신학(living theology)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실천적 신학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전 신학과 그의 전 서신은 실천적이며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1. 직설법(indicative)과 명령법(imperative)과의 관계

아마도 성경 66권의 문장의 표현은 크게 직설법(indicative)과 명령법(imperative)으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울 서신의 특징 역시 직설법과 명령법으로 되어 있다.

1) 직설법 - 신자의 신분에 관련된 교훈이다.  신자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공로로 구속되었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래서 성도는 성전,  그리스도의 몸,  새로운 피조물 등으로 불려진다.

2) 명령법 - 신자의 삶에 관련된 교훈이다.  신자는 새로운 신분에 합당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명령이 주어져 있다.

직설법과 명령법의 표현이 서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 안에서 이루시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되어 있다.  


2. 신학자들의 주장들

1) 다드(C.H. Dodd)

직설법(신학)과 명령법(윤리)이 서로 구별되어 있고 양자 사이에는 경계선이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서로 관련성이 있다고 한다. ‘케류그마’와 ‘디다케’의 구분과 같은 것이다.
다드의 주장에 대하여,  바울의 사상을 신학과 윤리를 서로 분리시켜 통일성을 마련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2) 불트만(R. Bultman)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 입장에서 불트만의 관심은 오직 인간의 실존이며 현재만이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말해질 뿐이라는 것이다.  불트만은 ‘형식적 순종’과 ‘철저한 순종’으로 나누고,  전자는 율법의 권위에 따르는 것으로 이를 강력히 거부하고 구체적인 상황의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서 후자만을 옹호하였다.  따라서 그는 인위적인 윤리적 제도를 거부한다.


3) 퍼니쉬(V.P. Furnish)

퍼니쉬는 다드처럼 ‘직설법’과 ‘명령법’을 구분하는 것을 거부한다.  ‘케류그마’와 ‘디다케’ 부분을 나누는 것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케류그마는 윤리적 교훈을 함축하고 있는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 등과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으며,  동시에 디다케도 복음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고 본다.


3.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직설법과 명령법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과 동의어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너무 극단적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미(Already)’  ‘새로운 피조물(고후5:17)’로서 주님이 오실 때 까지 이 땅에 불완전한 죄성을 가진 존재로서  ‘아직(Not yet)’도 살아가야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갈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현대어) 만일 우리가 성령님을 따라 산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공동번역)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NIV) Since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keep in step with the Spirit.
(NASB) If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also walk by the Spirit

따라서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을 헬라적 사고로서 성령의 한 부분이 크리스챤 안에 갖혀 있는 정적인 것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성령과 크리스챤과의 인격적 관계를 보여주는 히브리적 사고로서 동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4. 성도의 이중성

루터의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란 성도의 규정에 대하여 ‘한 때는 죄인이나 지금은 의인’으로 대신 읽혀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루터의 견해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성도의 신분은 주 안에서 '이미(already)' 의인인 동시에  '아직(not yet)' 죄인으로서 육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중성을 가진 모순된 자이기 때문이다.

1) 의인된 죄인

(롬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롬7: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22-24)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 죄인된 의인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5. 결론

진부한 율법과 복음의 논쟁이나 믿음과 행함의 논쟁은 그만두고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에만 의지할 것 뿐이다.

(갈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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