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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야고보의 조화
조규현  2016-11-24 08:40:47, 조회 : 268

바울과 야고보의 조화

1. 상반된 주장

1) 바울

(롬4:2-3)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갈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 야고보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21-2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 행함에 대한 바울의 주장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2:6-10)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 믿음과 행함의 조화

루터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 평가하는 것도 무리한 표현이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탄의 짓‘이라는 극단적 언사는 더 더욱 무리한 표현이라 생각 한다.
우리는 편지의 대상자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즉 바울의 로마서는 주로 이방인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복음의 요체인 ‘이신칭의’의 믿음을 강조한 것이고,  야고보서는 믿음을 빙자하여 행함을 등한히 여기는 부덕한 유대 기독교인을 훈계하기 위해 행함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통일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찾을 수 있다.  즉 여러 상황 속에서 강조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롬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in order that the righteous requirements of the law might be fully met in us, who do not live according to the sinful nature but according to the Spirit

(현대어)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갈5:25-26)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신자들이 공유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바울이 목적으로 둔 것은  ‘새로운 생명 속에서 걷고(롬6:4)’,  ‘성령의 새로운 삶으로 섬기고(롬7:4-6),  ’성령에 따라 걷는(롬8:4)‘ 것이 사람의 주된 목적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의(義)이다.“

율법의 정당한 요구는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효과적인 삶의 가능성이다.


4. 믿음의 요소- 지(知), 정(情), 의(意)

칼빈(Jean Calvin 1509∼1564)은 루터(Luther,1483-1546)보다 26세나 나이가 어린 사람이다. 당시 루터의 종교개혁이 진행되고 있었을 때  ‘오직 믿음’에 대한 오해와 왜곡 때문에 율법의 폐기론자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마치 야고보서의 기록 당시 유대인 기독교인들이나 영지주의자들이 행함을 무시하고 ‘오직 믿음’이나,  ‘영지(靈知)’만을 주장하고 그들의 부덕한 행위들을 자행하고 있는 모습과도 같았다.  또는 오늘날 십자가 복음의 교리에만 매몰되어 성화를 매도하거나 성도의 삶을 등한히 하는 경우와 같았다.

대 선배인 루터로부터 종교개혁의 부작용을 갈파한 칼빈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개탄한 야고보의 심정으로 성화를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칼빈 역시 루터와 같이 성화가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 하였다.  루터 역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행함을 중요시 하고 있다.  루터는 유명한 그의 저서 ‘크리스챤의 자유’에서 “크리스챤은 율법으로부터 자유인이다.  그러나 크리스챤은 이웃으로부터 무한한 노예인이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하고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엡2:8) 성령의 역사(役事)이다(고전12:3).  믿음을 광의로 볼 때 지(知), 정(情), 의(意)의 요소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즉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 말씀의 내용을 이해하고 깨달아 알게 되며(지성),  그리스도의 신비한 연합의 비밀을 체험하고(감성),  그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찬송과 기도로 표출되고 이웃 사랑으로 행하게 되고 전도하게 된다(의지).
그렇다면 굳이 믿음과 행함을 구분할 수 없지 않는가?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진부한 주장을 무시해 버린다면 바울이 강조한 ‘이신칭의’의 믿음이나 야고보의 행함은 결국 동전의 양면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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