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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110강) 제사장 기업
  본문 : 겔 44:28-31
신윤식  2017-01-07 16:33:43, 조회 : 920 , 추천 :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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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8.그들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

29.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이스라엘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을 다 그들에게 돌리며

30.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에게 네 집에 복이 내리도록 하게 하라

31.새나 가축이 저절로 죽은 것이나 찢겨서 죽은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말 것이니라

 

 

<설교>

신자는 하나님을 지식과 논리와 신학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식, 논리, 신학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분명 있습니다. 설교에도 지식과 논리와 신학이 있고, 성경공부에도 그 모든 것이 있으며 설교와 성경공부 등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설교나 성경공부 자체가 신자의 신자 됨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은 아니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을 수단으로 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가 전달되는 것은 있지만 그 말 자체가 하나님을 아는 앎이 아니고 능력도 아니란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아는 앎의 참된 의미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능력으로 함께 하심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신자는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이 실제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가 신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신자로 존재한다면 그 삶은 담대함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 등장하는 신자들의 삶이 그 증거입니다. 복음으로 인한 핍박, 환난, 고난, 가난 등의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포기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앎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고전 2:1-2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하나님 나라의 증거를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다는 것은 말과 지혜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증거는 아니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증거입니다.

 

 

또한 바울은 고전 2:5절에서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말하고, 고전 4:20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 말로 소통합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음으로 자기중심적이 되고 자기를 사랑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말은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나타납니다. 단순히 소통을 위한 말이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이 담긴 말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가령 진심으로 십자가를 믿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면서도 ‘나는 십자가를 믿는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의 본심은 무엇일까요? 자신을 십자가를 믿는 신자로 증거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러한 십자가는 단지 말에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믿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 됨을 알게 하며 참된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인생을 던져 버리고 주가 가신 그 길로만 가도록 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말이 아니라 능력인 것입니다. 이 능력이 무엇인가를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28절을 보면 “그들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제사장들의 기업이 되신다는 뜻인데, 여기서 말한 기업은 사업을 하는 회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상속물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게서 받는 상속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민 8:2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신 10:9절에서도 “그러므로 레위는 그의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고 말하고, 그 외 성경 여러 곳에서 레위 사람의 기업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그러면 레위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은 무엇입니까? 출 6:8절의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기업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데 그 땅에 레위 사람의 기업은 없는 것입니다. 이유는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은 이스라엘 자손은 땅의 소산을 먹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땅에 기업이 없는 레위 사람들은 무엇을 먹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기업이 되신다고 했으니까 광야생활을 할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것처럼 하나님이 직접 하늘에서 먹을 것을 내려주시는 것일까요?

 

 

본문 29,30절에서 “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이스라엘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을 다 그들에게 돌리며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에게 네 집에 복이 내리도록 하게 하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 그들의 양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제물을 잘 바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기업이 없는 레위사람, 제사장들의 생계가 위험해지게 됩니다. 결국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생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의 여부가 이스라엘 자손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레위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기업이 되신다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기업이 없는 레위 사람, 즉 제사장을 통해서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으로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됨이 증거 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레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의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을 보면서 이스라엘 됨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즉 땅의 소산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살고 있음을 제사장으로 인해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합 3:17-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말합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무화과와 포도와 감람나무에서 소출을 거둘 수 없게 될 것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록 현실은 그렇다 해도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으로 영광 받고자 하시는 것이 곧 언약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이 모든 일을 이루실 것을 소망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박국 선지자의 말이 표면적으로는 아주 아름다운 말 같지만 이 내용이 현실로 주어진다면 아마 여호와로 인한 기쁨보다는 열매도 소출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 때문에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된다면 그것은 열매와 소출로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먹고 사는 문제입니까?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소출로 풍족하게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할까요? 물론 수입에 따라서 다른 사람보다 풍족하게 생활 할 수 있고 아니면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심판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죄로 가득합니다. 죄로부터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신자가 죄 문제에 심각성을 준다면 세상에서 풍족하게 사는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더 중요성을 두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신자로 하여금 세상 현실을 초월하여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고 말한 것입니다.

 

 

현대 교회를 보면 좀 더 풍성한 소출과 열매를 원하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소위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믿사오니’라고 외치면서 하나님을 찾지만 그러한 현장에서 보게 되는 것은 온통 거짓된 믿음일 뿐입니다. 말로는 십자가를 말하고 믿음을 말하나 능력은 전혀 없습니다. 현재의 상황과 상관없이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자입니다.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자신이 현재 몸 담고 있는 세상에서 벗어날 날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재림이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영원한 영광의 완성된 나라로 데리고 가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림을 믿는 믿음이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자리하고 있다면 그 마음은 이미 세상을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세상의 복을 비는 기도로 나타날 리가 만무합니다.

 

 

신자가 십자가를 믿는다면 그 믿음은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와 다른 길로 가고자 하는 자신으로 인해 고민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말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와 다른 길로 가고자 하는 자신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교회에 대해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철저하게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정신을 따라 가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의 현실은 온통 예수님의 정신이 아닌 세상의 정신을 따르고 있다 해도 잘못된 말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자각하고 고민하며 기도하게 되는 것이 믿음이 능력으로 자리하고 있는 신자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 선지자로서의 신자 역할입니다.

 

 

제사장의 기업이 하나님이라면 이 시대에 제사장으로 존재하는 신자의 기업이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으로 자신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제사장으로 존재하는 신자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이 가져온 것으로 먹고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9절 뒤에 보면 ‘그들에게 돌리며’라고 말합니다. 30절에서도 ‘각종 거제 제물을 제사장에게 돌리고’라고 말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가져온 것을 제사장에게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은 백성들 덕분에 사는 것일까요 하나님 덕분에 사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백성들이 가져온 것을 제사장에게 돌리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덕분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됩니다.

 

 

제사장은 자신의 노동 대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자신에게 돌려짐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세상은 이러한 방식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신을 찾는 이유는 신이 자신의 기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기업을 받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기독교인 또한 세상의 것을 기업으로 손에 쥐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분명 능력은 없이 말만 있는 거짓 믿음일 뿐입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힘으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것이 우리에게 돌려진 것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것이 내게 돌려져서 먹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중요한 현실로 다가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믿음이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증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죽음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이 성전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로 죽음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그 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신자에게 나타나야 할 능력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으로 사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눈에는 복음에서 벗어나고 십자가의 정신에서 벗어난 현실의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교회가 복음의 정신에서 벗어났을 때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그로 인해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이 오실 날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사십니까? 여러분의 관심은 무엇이고 여러분을 고민하게 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혹시 그 모든 것이 세상으로 집중되어 있다면 믿음이 말에만 있지 아니한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이 말에만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힘쓰는 길로만 간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 없는 우리를 십자가의 길에 붙들어 놓기 위해 날마다 예수님이 일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신다는 것은 구원이 취소될 수 없다는 큰 은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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