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23:21

by 신윤식 posted Nov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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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23:21)

 

구원은 하나님의 뜻으로만 가능하다. 우리의 희망과 믿음 따위는 어떤 효력도 없다. 이것은 복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구원이든 복이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것에 있어서 인간의 믿음은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예수를 믿는 것도 복음을 믿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믿음을 부추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성도는 자기의 무능을 안다. 그래서 자기 믿음으로 뭔가 하겠다고 나서지 못한다. 반면에 성도가 아닌 사람은 자기 믿음을 참된 것으로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힘쓴다. 인간의 믿음이 예수를 죽였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해 사도 바울은 사람은 다 거짓되되라고 선언한다(3:4).

 

 

거짓된 인간에게서 참된 것은 나올 수 없다. 서원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서원하고 지키려고 힘쓰는 것이 거짓이다. 하나님을 위한 서원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서원이라는 점이 그러하고, 인간이 무능하다는 것에 무지한 상태에서의 서원이라는 점이 또한 그러하다. 자신의 결심과 의지로 얼마든지 서원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의 서원이라는 점에서 인간을 알지 못한 미련한 자의 헛된 서원이다. 서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교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고 하신다. 마치 인간의 서원을 인정하시고 서원했으면 지키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것을 빌미로 교회에 작정한 헌금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고 만약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되어서 징계받게 된다며 엄포를 놓기도 한다. 대개의 기독교인이 서원에 대한 규례를 그런 뜻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 서원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일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가령 하나님 오늘부터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하겠습니다라는 서원을 했다고 하자. 서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할 수 있는 여러 여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몸이 건강해야 하고 시간적 여유도 충분해야 한다.

 

 

즉 서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육신의 건강과 매일의 시간을 자신의 힘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건강도 시간도 하나님의 허락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생각하면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하겠다고 서원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과 육신의 일,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주관한다는 뜻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서원은 모두 거짓이다.

 

 

서원에 대해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다(5:34). 23:22 절에서도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믿음의 열심을 보여주기 위해 서원을 하고 지키려고 힘쓰는 것은 믿음이 아닌 죄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서원에 대한 답은 간단하고도 쉽다. 예수님 말씀대로 맹세, 즉 서원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 아무 서원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앙생활이 가능한가?’라는 점이다. 하나님께 서원하고 지키는 것을 믿음으로 알고 있다면 서원하지 않는 것은 믿음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원은 사람이 자기 입으로 뭔가를 행하고 이루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것도, 믿음에 열심을 내겠다는 것도, 성경을 열심히 읽겠다는 것도 모두 서원이다. 그런데 이러한 서원이 없이 과연 신앙생활이 가능할까?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서원하지 말라는 것은 곧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라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서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바른 믿음의 삶을 위해 결심이 필요하고 결심한 것은 반드시 지키기 위해 힘쓰는 것을 믿음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서원하지 않는 믿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이 증거하는 믿음은 서원하지 않는 것이다. 서원이 없는 것을 진리가 주는 자유와 평안으로 증거한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서 자신들을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보고 모세를 원망한다. 그때 모세가 한 말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4:13)는 것이다.

 

 

그리고 삼상 12장에서는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삼상 12:16)라고 말하고, 46:10절에서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만히 서서,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인간이 자기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하겠다는 결심, 서원을 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이 행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되기 때문에 자기 행함으로 믿음을 저울질하고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애당초 성도에게는 자기 행함으로 판단 받아야 할 믿음이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믿음은 인간의 행함으로 판단되지 않고 판단할 수도 없다는 것이 이유다.

 

 

하나님은 서원한 자에게 반드시 실행을 요구하시고, 실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죄가 된다고 하신다. 따라서 인간은 서원을 실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기 결단과 의지로 인한 행함으로는 구원될 수 없다. 이것이 서원에 대한 말씀의 의미다. 서원이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인간에게 말씀이 개입하여 믿음으로 알았던 것을 죄로 드러내는 것이다.

 

 

서원은 하나님만이 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신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22:16-17)나 다윗에게 하신 맹세(89:3-4)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이루신 구원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성도의 믿음은 가만히 서서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큰 일을 보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다.

 

 

 

인간의 서원은 하나님의 일을 훼방한다. 서원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원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죄가 파악되어야 한다. 그리고 죄의 자리에 가만히 서서 피로 이루신 주의 일을 바라보는 자가 성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