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1:1

by 신윤식 posted Dec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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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 주된 목적과 이유는 복과 함께 구원, 즉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 정작 천국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천국이 어떤 곳이며 누가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하는 자세를 찾아보기 힘들다. 천국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신 보석으로 장식된 좋은 곳이고, 신앙생활 잘하고 착하게 살면 들어가는 것으로 알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베뢰아 사람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는 내용이 있다. 기독교인들 또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다고 하겠지만 성경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복과 천국, 즉 자기 이익이라는 점이 베뢰아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이 예수님께 책망받은 유대인의 성경을 대하는 태도다(5:39).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 것은 단순히 성경을 알고자 하는 마음과 궁금증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한 자세로 성경을 상고한다면 결국 옳고 그름의 분별은 없이 인간이 연구한 성경 지식의 확대로 이어질 뿐이다. 베뢰아 사람 또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이것이 그러한가하며 성경을 상고했다면 점차 성경 지식이 쌓이고 충족되는 시점에 이르게 될 것이고 이것이 그러한가라는 마음도 희미해지지 않겠는가?

 

 

성경을 대하는 베뢰아 사람의 자세는 인간의 열심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감각이다. 따라서 다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옳은 것으로 확정하지 않고 부인하면서 날마다 성경에 무지한 자로 이것이 그러한가하며 상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믿으며, 자기에게 있는 성경 지식을 도무지 부인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이것이 그러한가의 자세가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이 현대 교회가 교인들에게 성경을 강조하고 성경에 충실한 듯 보이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성경과 전혀 다른 길을 가는 현실로 드러난다.

 

 

천국은 거룩한 나라이기에 거룩한 자가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거룩한 자인지, 거룩한 자라면 어떻게 거룩한 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과 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답이 믿음의 내용이 되어야 하기에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 또한 알고 있는 답은 성경이 증거하는 답과 일치해야 한다. 답이 아닌 답을 내용으로 하는 믿음은 결국 믿음이 아니며 천국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신다. 어렵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읽기 힘든 성경으로 인식되는 레위기의 시작이며 첫 관문이다. 대개는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서 말씀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것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구절이다. 하지만 첫 관문으로 말한 것처럼 레위기라는 말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막에 부르신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그만큼 중요한 부르심이다.

 

 

회막은 만남의 천막이란 뜻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주기 위해 정하신 장소다. 따라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회막을 지으라고 지시하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날 방법이 없다. 이것이 종교와 다른 성경의 세계다. 종교는 신의 존재와 함께 신을 만날 방법과 장소 등 모든 것이 인간에 의해 시작되고 구축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것도 인간이 자기 뜻대로 하나님에 나아갈 수 없음을 뜻한다. 하나님이 오셔서 불러주기 전에는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부르면 하나님이 그의 정성에 감동해 찾아오셔서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에 희망을 두지만 그것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죄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것은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죄의 존재라는 인식이 없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동원하는 것이 곧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확정 짓게 한다.

 

 

천국은 거룩한 곳이며 거룩한 사람만 들어간다. 그런데 죄의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거룩한 자가 되는가? 무엇보다도 인간은 무슨 방법으로든 거룩해질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회가 강조하고 가르치는 모든 믿음의 행위도 거룩 앞에서는 더러움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거룩에 속할 수 있는가?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부르셔서 자신의 거룩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으로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그래서 인간이 거룩에 참여하여 거룩한 자로 여김받는 것은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사건이며 이것이 피로 드러난 언약의 완성, 즉 십자가다. 그러므로 믿음의 믿음다움은 인간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에 주목하는 것으로 증거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제물과 제사에 대해 말씀하신다. 제물과 제사가 피에 관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의 거룩은 희생 제물의 피로 되고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이스라엘다움은 피에 주목하는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레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7:11절을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라고 말한다.

 

 

생명이 피에 있고 피가 죄를 속한다라는 말씀을 이것이 그러한가라는 자세로 상고한다면 천국은 인간의 것을 용납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피로 죄가 속함 받은 거룩한 자만 용납되는 것을 천국으로 아는 그들이 성도이고 성도는 자신이 아니라 십자가 피에만 주목하게 된다.

 

 

 

성도의 거룩은 행위와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용서 안에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있게 되므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행함은 죄밖에 없다. 모든 죄를 주의 피로 용서받았음을 아는 자가 성도이고 성도는 당연히 피의 은혜를 감사하고 자랑한다. 이들이 천국의 백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