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강) 말씀을 응하게

by 신윤식 posted Mar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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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0:12-15

대하 10:12-15>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01215.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2.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왕이 포학한 말로 대답할새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가르침을 버리고

14.젊은 신하들의 가르침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더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치리라 하니라

15.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하여금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이르신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설교 요약>

인간은 모든 일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고 싶어 합니다. 만약 어떤 일의 결과가 원한 대로 되지 않으면 그것을 실패로 간주하고 원인을 찾아 다음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세상은 이것을 인간으로서 당연하고 옳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의 시각에서는 인간이 알게 된 선악 지식에 의한 판단이고 활동입니다.

 

 

인간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 문화, 종교, 개인의 가치관과 양심에 따라 다르게 형성됩니다. 따라서 인간 세계에서의 선악 판단은 하나로 통일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같은 나라, 같은 문화 안에서도 각각 개인의 입장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항상 갈리는 것이 선악 판단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선으로 판단한 것을 누군가는 악으로 규정합니다. 자기를 선한 편에 두고 자신의 판단에 반대하는 상대는 악으로 규정하고 공격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현실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서 드러나는 선악 지식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솔로몬 왕이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면 왕으로 섬기겠다는 백성의 요구를 무시하고 젊은 신하들의 가르침을 따라 멍에를 더 무겁게 하고 가죽 채찍이 아니라 전갈 채찍으로 치겠다고 말하는 르호보암의 행동은 선과 악 가운데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과연 선 아니면 악 둘 중의 하나로 일치된 답이 나올까요?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하셨고, 예레미야 17:9절에서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세상의 인간들 가운데 의인은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도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 됨으로는 선악을 바르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선악 지식은 사탄에 의한 것이고 자신의 유불리가 기준이 되어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인간의 선악 판단은 항상 죄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분노하게 한 르호보암의 말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분열되었다는 결과를 두고 르호보암이 잘못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르호보암의 말이 어떠하든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라면 왕의 말이 자신들의 요구에 어긋난다고 해도 복종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시각에서는 왕을 배반하고 떠난 백성들이 악하다고 판단될 것입니다. 이렇게 선악 판단은 인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선악에 관한 판단을 두고 다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인간은 선악을 판단하는 판단자의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윤리, 도덕과 법이라는 옳은 잣대로 판단한다고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세상의 윤리, 도덕, 그리고 법을 선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생존과 존재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도구이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선악을 판단할 시각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할 결론입니다.

 

 

우리가 항상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 왕이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않은 것도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하여금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이르신 말씀을 응하게 하신 것으로 말씀합니다(15).

 

 

그렇다면 우리가 르호보암의 행동을 선악으로 판단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일, 즉 하나님이 행하시고 간섭하신 일을 선, 또는 악으로 판단하는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현재가 하나님을 향한 자기 믿음과 열심에 비해 부당하다고 느껴지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불의하다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9:13-14)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미움은 일방적입니다. 인간의 행위와는 무관하기에 자기중심인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고 미움입니다. 그래서 욥도 재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혼란스러워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판단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모든 일에는 불의가 없다는 것이 바울의 증언입니다.

 

 

말씀을 응하게 하신다는 것은 말씀이 이루어지는 성취, 즉 언약 성취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모든 일은 말씀의 성취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백성을 대하는 것이나 그로 인해 백성이 왕을 배반하는 모든 일이 인간의 평안과 행복이 아니라 말씀, 언약 성취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선함은 말씀이 응하게 되는 성취의 여부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인간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 언약이 아니라 자기에게로 향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이기에 백성들과 르호보암을 두고 누가 옳은지 그른지, 누가 선하고 악한지를 따질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인간의 기본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중심인 완고함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성경을 낯설어합니다. 인간을 무시하고 오로지 언약만을 증거하는 성경 이야기를 들으면 여지없이 인간의 완고함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저주받은 인간다움을 외면으로 드러내는 것이 성경입니다. 인간에게 말씀이 투입되어 인간을 계몽하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전부인 인간 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말씀을 응하게 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인간에게 살아있는 것은 죄입니다. 죄가 살아있음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의 선함을 고집하고 자랑합니다. 이러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죽은 자로 고백하게 하고 십자가로 이루신 주의 의를 감사하게 하는 것이 말씀이며, 말씀이 응하여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