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2강) 바른 길과 행위

by 신윤식 posted Mar 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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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7:1-7http://onlycross.net/videos/jer/jer-0701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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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설교>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켜서 여호와께서 임재 하여 계시는 거룩한 여호와의 집, 즉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성전 문에 서서 여호와께 예배하러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말을 거짓말이라며 믿지 말 것을 외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워서 이같은 말씀을 외치게 하신 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여호와의 성전으로 여겼던 유다 백성들이 성전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을 신앙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거룩한 여호와의 집이기 때문에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그 모든 것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 교인들의 생각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 교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예배당입니다. 목사들은 예배당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고 거룩한 성전이라고 하면서 예배당에 마치 하나님이 임재 하여 계시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라고 합니다

 

 

. 결국 예배당을 성전으로 여기는 교인들의 신앙은 자연히 예배당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예배당에 나와서 열심히 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채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전을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배당을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은, 굳이 눈에 보이는 성전이 참된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유다 사람들의 잘못된 신앙관을 책망하기 위해서입니다.

 

 

3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성전을 찾은 사람들은 그 길과 행위가 바르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길과 행위가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성전에 나와서 예배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신앙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전을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성전을 진심으로 하나님이 임재 하여 계시는 여호와의 성전으로 여겼다면 성전을 찾은 유다 백성들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회계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온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길과 행위가 바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가는 길과 행위를 살피지 않은 채 하나님을 찾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죄인 됨을 생각하지 않은 채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예배로 받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길과 행위가 바르지 못한 자신의 악함을 깨닫고 애통하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바라보며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가 살아있는 여호와의 성전인 것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성전에 나와서 제사만 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만 드리면 신앙생활을 했다고 여기는 현대 교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거짓된 것이고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5-7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유다 백성들에게 있어야 할 바른 길과 행위인 것입니다.

 

 

유다가 생각했던 바른 길과 행위는 성전 중심의 신앙입니다. 성전에서 제사하고 율법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바른 길을 가는 것이고 바른 행위 해당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을 철저히 시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른 길과 행위는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않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이 잊지 말아야 할 은혜의 정신이 살아있을 때 가능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유다에게 있어야 할 바른 길과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자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다면 그것은 고아와 과부 같은 약자에 대한 억압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아와 과부를 무시하고 억압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겠다며 성전을 찾는 것을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미 그들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하지 않는데, 그런 사람들이 천명이 모이고 만 명이 모여서 예배한들 하나님이 예배로 여기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의 의미를 알고 찾았다면 성전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로 감사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고 참된 신앙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보이는 성전이 신앙의 중심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배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자신을 제물로 삼아 드린 제사가 우리에게는 온전한 제사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예배당에 나와서 뭔가 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만약 예배당을 거룩한 성전이라고 하면서 예배당에서 행하는 모든 것을 신앙과 결부시키면서 열심히 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것이 곧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바른 길과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와이 관계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바른 길과 행위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소망하고 사는 것이 바른 길이고, 그같은 바른 길에서 예수님의 용서와 구원으로 감사하고 사는 것이 바른 행위인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만을 바라보는 바른 길과 행위에서는 약자에 대한 압제와 피 흘림이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아예 자신이 강한가 약한가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누구를 대한다고 해도 강자와 약자라는 차별적 시각으로 대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긍휼의 능력 안에 붙들려 있습니다. 긍휼의 능력으로 모든 죄가 용서된 사람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이같은 긍휼의 능력과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같은 신앙은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자를 압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자신이 누군가를 살피기 때문에 나의 나 됨을 잊지 않고 주께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있어야 할 바른 길이며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