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3강) 제사보다 사람

by 신윤식 posted Mar 1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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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7:8-20http://onlycross.net/videos/jer/jer-07082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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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17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노를 이 곳과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설교>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자기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유대인들이 ‘하나님은 제사 드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님에 대한 착각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제사는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일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신앙행위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신앙 행위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교인들이 신자 됨을 충실히 예배드리는 것에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유대인들에게 제사는 이스라엘 됨의 증표였고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대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 안에 들어가게 되면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 1:13절만 봐도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은 제사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제사와 제물에 대해 진노하시며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은 나의 제사와 제물을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바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착각입니다. 이러한 착각에 빠져서 하나님이 자기 열심을 보시고 복을 주실 것을 기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제사나 제물 자체를 가증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나 제물이 가증한 것이라면 애당초 제사 규례를 세우지 말았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제사가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 문제가 있기에 그가 드리는 제사와 제물 모두를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그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이 제사를 거절하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는 것은 제사의 문제가 아니라 제사 드리는 사람, 즉 가인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히 11:4절에서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아벨에게는 믿음이 있었고 가인에게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자신의 믿음 없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벨과 자신의 제사를 동일한 것으로 여긴 것이고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에 대해 분노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제사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자신들을 구원 받은 자로 여겼습니다.

 

 

선지자는 이러한 유다를 향해서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8절)는 말로 책망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구원 받은 민족이다’라는 말이 무익한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실 때 유다는 구원 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지 않은 자들이었고 멸망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9절을 보면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살았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제사는 드렸을지라도 그들의 삶은 말씀에서 벗어나 있었고 오로지 자기중심으로 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제사하는 것으로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가증한 일이라고 하시고, 하나님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여기는 것이라고 책망하십니다.

 

 

유다가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한 자로 제사를 드렸다면 그 제사는 형식만 있는 제사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제사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 문제 있는 자로 하나님께 나와서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용서로 감사하는 신앙고백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제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제사 드리는 사람의 속 중심을 보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현대 교인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신앙은 뭔가 열심히 행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데도 자신의 열심을 신앙의 증표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착각에 빠진 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성전으로 여기는 예배당에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면 되는 줄로 압니다. 나 같은 자가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말씀의 정신을 따라 오직 주를 위해 살아가는 삶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온통 나에게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어리석은 자의 착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 된 자에게 중요한 것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악한 자신의 실체를 깨닫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을 수 없고 멸망이 마땅한 자신의 현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같은 자신의 실상을 볼 수 있어야 제물이 흘리는 피를 보면서 피 흘려 죽어야 하는 것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대신 흘린 제물의 피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지금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살아있는 것이 제물이 흘린 피를 자신이 흘린 피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속중심을 보신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인한 감사와 기쁨이 있는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이것이 신자 됨이고 구원 받은 백성인 것입니다.

 

 

유다가 우상을 섬긴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른 결과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천국 갈 수 없는 나를 천국에 있게 하신 그 은혜를 알았다면 세상에서의 복을 위해 이방신을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 은혜 아래 있으면서도 그 은혜가 어떠한가를 모른 채 세상만 보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고 답답한 현실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