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야곱의 허리

by 신윤식 posted Nov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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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1-7http://onlycross.net/videos/exo/exo-0101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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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2.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4.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5.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6.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설교>

출애굽기는 창세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구성 순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신 일, 즉 언약의 연결성을 말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가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여줍니다.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연관이 있습니다. 창 5:13-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섬기며 괴롭힘을 당할 것이고, 그 후에 하나님이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징벌하시고 아브라함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것이 창세기에서 세워진 언약이고 그 언약이 그대로 실행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출애굽기인 것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언약의 연결 관계에 있는 것이고 이것은 창세기와 출애굽기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에 대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가장 바르게 드러낼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약을 말할 때마다 다가오는 의문은 ‘하나님은 왜 굳이 언약이라는 방식을 일을 하시는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도 생각해 보면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자손을 이방에 객이 되게 하셔서 그 나라를 차지하고 자자손손 그 땅에서 살게 하실 것이라면 야곱의 가족을 그곳으로 이주하게 하시는 일이 타당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언약은 객이 된 곳에서 사백 년 동안 그들을 섬기고 괴롭힘을 당하게 하다가 하나님이 그들을 징벌하여 큰 재물을 나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나오게 하실 것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이주하지 않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큰 재물은 굳이 이방에 객이 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한 언약 이해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뜻, 이 모든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하나가 인간에게는 불필요하고, 불리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약은 하나님 중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을 위한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풍요와 복지를 위한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언약이기에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시간적 간격은 약 350년입니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이 야곱, 즉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하셨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말씀하시고 일하신 것이 없기에 침묵의 기간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가만히 계신 것은 아닙니다.

 

 

7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고 말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했다는 것은 자연적 성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 아래 되어진 일을 말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자연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간섭, 섭리를 외면하고 눈에 드러난 것만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자연적 성장으로 보일 뿐이지 배후에는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따라서 350년 동안 이스라엘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강하게 되고 온 땅에 가득하게 된 것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일하신 결과인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세상의 되어진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서는 자연적인 것도 없고 우연한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선지자가 부름 받아 일하는 구약시대나 사도들이 부름 받아 일하는 시대와는 다르다고 생각되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증거로서의 시각적인 기적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조차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다만 관념에 자리한 신으로 대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단지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고 그 피를 믿는 자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증거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신자는 외부적인 조건이나 체험, 상황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믿음의 여부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일하심을 얼마든지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강하게 됨으로 애굽에게는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하나님이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초점을 두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본문에서 중요한 구절은 5절입니다.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는 이 구절에서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말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야곱의 자손을 무엇 때문에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야곱의 허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엉덩이 위 부분의 허리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얍복강에서 야곱이 천사와 씨름할 때 천사에 의해 어긋난 허벅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본문의 허리와 천사가 친 허벅지가 동일한 단어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근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창 35:10-11절에서도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고 말합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허리는 고통의 의미로 남아있습니다. 뼈가 어긋난 신체적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무너진 것으로 인한 고통을 뜻합니다. 따라서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하나님에 의해서 힘이 무너지는 고난 속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리를 절게 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신 것도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의해서 힘이 무너진 것을 경험한 자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은 힘을 추구하는 인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서의 장자권을 사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물려받고자 하는 것과 이삭을 속여서 축복을 받아내고 라반의 집에서도 자신의 술수로 많은 재산을 축척하는 것들 하나하나가 힘을 갖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야곱이 천사로 인해서 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이름이 이스라엘로 불리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야곱의 허리에서 나오는 사람이라는 말은 야곱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새롭게 되어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언약에 의해 언약 백성으로 존재하는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처럼 힘을 믿고 힘으로 경쟁하는 나라가 아니라 힘이 무너진 가운데서 하나님의 전능하심만 의지하는 존재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힘과는 무관한 분으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힘을 주실 분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힘과 권세로 죽음에 붙들린 우리를 구속하셔서 생명의 나라에 있게 하시는 분으로 믿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인정하는 힘을 위해 예수를 찾는 것은 믿음이 아니며 언약 백성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 있는 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면 그것이 곧 힘이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 힘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해 갑니다. 이것이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