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010.01.26 14:12

(5강) 사도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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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1:15-23http://onlycross.net/videos/Colossians/col-011523.wmv

<본문>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 1:15-23 개정)

 

 

<설교>

말씀드린 대로 사도가 거짓 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혼란이 있게 된 문제 때문에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쓰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혼란을 해결하고 교회를 평안하게 만들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이 앞서야 하는데, 사도의 서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즉 교회 문제 해결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을 두고 서신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의 서신에는 거짓 선생들을 추방하고 바울의 복음만을 믿어서 교회를 안정되게 하라는 의도의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 복음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면, 먼저 참된 복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이 복음에 맞지 않은 것은 틀린 것이니까 받아들이지 말 것이며,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은 모두 교회에서 추방하라는 말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복음을 지키는 교회가 된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복음을 지킨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이단 사상은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에 나오는 복음만 참된 복음으로 인정하고 있으면 복음을 지키는 것이 되는 것일까요?

 

 

골로새 교회의 문제처럼 믿음만으로는 안되고 할례도 행해야 하고 절기도 지켜야 구원받고 복 받는 참된 믿음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당신은 복음도 모르고 믿음도 없는 사람이오. 믿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린 피를 믿는 것으로 충분합니다’라는 말을 하면 그것이 복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 복음이 아닌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줘야 합니다. 행여 자신의 말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그것 때문에 인간관계가 불편해 질 수 있음을 염려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복음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복음에 대해 우리가 빠질 수 있는 함정과 착각에 대한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어둠에 갇혀서 빛을 빛으로 보지 못하고 오히려 어둠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야 말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이며 죽는 것이 마땅한 존재임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생명이심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역할입니다. 즉 복음을 안다는 것은 복음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인 됨을 알게 되었고, 죄인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피가 곧 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복음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복음이 자신을 책망하고 무너뜨리는 자리로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지식을 갖고 있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만약 사도가 거짓선생들의 말이 잘못된 것임을 가르치기 위해서 복음을 전했다면 골로새 교회는 바울의 복음을 잘 배워서 다른 복음을 가려내고 분별하게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께로 인도 받는 일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거짓 선생의 잘못된 말에 대해 먼저 언급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은혜의 충만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그 뜻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18,19절을 보면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사도 바울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골로새 교회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이 만물의 으뜸이라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이것을 몰라서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빠져 혼란이 생긴 것입니까?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시고 만물의 으뜸이라는 것은 거짓 선생들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앎이 바탕이 된 삶을 살아가는가에 있습니다.

 

 

신자가 십자가를 입이 닳도록 말한다고 해도 정작 삶이 십자가의 정신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흘러간다면 그는 십자가를 아는 신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만물의 으뜸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 앎이 바탕이 된 삶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같은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쉬지 않고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신자는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 거하게 된 신자는 이미 그 자체로 충만의 상태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안에 있는 신자에게 부족함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자의 충만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도 돈 없는 것이 약점이 되거나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 세계가 예수 안이라는 충만의 세계입니다. 신자가 잘나서 충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의 은혜가 곧 우리의 충만으로 우리를 채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자가 개인적으로 열심히 행함으로써 믿음이 좋아지고, 열심히 하지 않아서 믿음이 나빠지는 것이라면 그것을 충만의 세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예수 안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3,14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사형수에게 사면보다 더 기쁘고 가슴 벅찬 소식은 없습니다. 사면이라는 말은 사형수를 그동안의 어둠과 두려움의 세상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죄 없는 새로운 빛의 세상을 열어준 것이 됩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고 아들 안에서 죄 사함을 얻었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이처럼 아들 안에서의 기쁨이 그 심령을 채우고 있는 것이라면, 그 사람에게 세상의 일들은 사소한 것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이것이 충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시로 이 충만의 세계를 벗어나 살아갑니다. 그래서 세상이 사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실감하면서 세상이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말하면서도 복음에 머물러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실상입니다.

 

 

골로새 교회가 예수 안의 충만의 세계에 머물러 살았다면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와 절기도 지켜야 한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죄 사함 받고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믿음이 있다면 자신은 예수님의 피로 부족함이 없는 충만의 세계에 들어와 있음을 믿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의 말로 인해 교회에 혼란이 있는 것은 교회가 예수를 말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예수 안의 충만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세계는 충만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 충만의 세계는 예수 안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의 세계에서는 믿음의 대가로 따로 받을 것이 없습니다. 이미 부족함이 없는 충만의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주어진 복입니다. 그런데 이 충만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복음으로 인해 혼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말처럼 할례나 절기 등, 인간이 열심히 행하고 실천하는 것이 있어야 더 믿음다워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기도하고 성경보고 십일조 하는 열심이 우리의 믿음을 더욱 충만한 상태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행하지 않는 것과 행하는 것이 동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말하나 예수 안의 충만을 알지 못한 무시입니다.

 

 

만약 사도가 잘못된 복음이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그 복음의 지식을 기준해서 거짓 선생을 추방할 것을 가르쳤다면, 바울의 말에 순종하여 거짓 선생을 추방하는 것으로 교회의 문제가 해결될 수는 있겠지만 골로새 교회는 그리스도 안의 충만의 상태에 있지 못한 자신들의 문제는 보지를 못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골로새 교회가 그리스도께로 인도받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일은 기대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의 충만에 머물러 살아가지 못하는 골로새 교회의 문제를 보게 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골로새 교회에 전한 복음입니다.

 

 

21-23절을 보면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진심으로 복음이 되려면 하나님과 원수된 자신을 봐야 합니다. 할례를 하든 절기를 지키든 무엇을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과 화목될 수 없는 인간의 실상을 안다면 우리의 화목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말 그대로 신자에게는 전부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판단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나의 죄인 됨을 보게 하면서 십자가 앞에서 죽은 자가 바로 내 자신이라는 것을 보게 하고, 화목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가 나를 생명이신 아들의 나라로 옮겼음을 믿게 합니다. 이 믿음이 신자를 복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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