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010.02.08 21:30

(7강) 복음의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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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1:21-23http://onlycross.net/videos/Colossians/col-01212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 1:21-23 개정)

 

 

<설교>

사도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고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죄사함을 얻었다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신자는 아들 안에서는 흠없는 완전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이기 때문에 복음을 기쁜 소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고 그분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그분이 하신 일만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그 일로 인해서 우리에게 되어진 일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으로 인해 되어진 신자의 존재됨을 생각하며 그것으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끊임없이 뭔가 되기 위해 힘씁니다. 신자도 그냥 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고,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로 사는 것이고,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복을 받고, 세상에서는 칭찬의 대상이 되고 싶은 이기적인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을 해서 실천을 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신자는 이미 예수님의 피로써 하나님 앞에 흠없는 완전한 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22절의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는 말씀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완전한 자로 세움을 받은 것이 그리스도 안의 신자인데, 여전히 뭔가 되고자 한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일보다는 말씀을 실천하는 자신의 행함이 더 믿음직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3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일꾼은 복음의 종으로써 복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자기 유익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일꾼은 기독교와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외국에 나가고, 기독교라는 이름을 걸고 무슨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교회에서 어떤 일을 맡아 일하는 사람을 복음의 일꾼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꾼이라고 하면 우리는 일하는 사람을 연상합니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음의 일꾼이라는 말에서도 복음을 위해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만약 기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자신이 그동안 한 일이 헛일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겠지요?

 

 

지금의 교회를 보면 일꾼이라는 말을 이런 의미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일하면 반드시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속아서 보상을 기대하고 열심히 자신의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고통이 주어진다면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기대한 것이 무너지면 실망과 함께 화가 나고 반발심이 생기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니까요?

 

 

그러면 사도는 자신을 복음의 일꾼이라고 말하면서 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있을까요? 바울은 보상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보상 안받아도 좋습니다’가 아니라 일한 것이 없는 자에게 보상은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일꾼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복음을 위해 일하고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롬 4:4-6절을 보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라는 말을 합니다.

 

 

만약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힘을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의로운 자로 여기겠다’고 하신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은혜가 아니라 자신이 일한 것에 대한 보수로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일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은혜일뿐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하늘의 복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님의 수고와 희생의 결과임을 말합니다. 신자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움 받은 것 또한 우리가 착하게 살고 말씀을 실천한 결과가 아니라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결과입니다.

 

 

‘내가 착하게 살았고 말씀을 실천했지만 그에 따른 보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나는 착하게 산 적도 없고 말씀을 실천한 적도 없습니다. 이런 나를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하신 예수님의 피가 고마울 뿐입니다’라는 이것이 진심으로 복음을 아는 신자인 것입니다. 바로 이 복음을 나타내는 자로 사는 것이 복음의 일꾼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일꾼으로 살면 복을 받고 잘됩니다.’라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빙자한 거짓 선생의 말일 뿐입니다.

 

 

복음을 말한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노력한 결과를 빼놓지 않습니다. 복음을 위해 신앙으로 살면 하나님이 분명히 복을 주신다는 거짓된 말로 많은 사람을 미혹합니다. 이러한 미혹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사도가 전한 복음 위에 서는 것입니다.

 

 

 사도가 전한 복음이 과연 복음으로 산 것에 대한 보상이 약속되어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복음이 과연 세상에서의 형통과 복을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가 전한 복음에 없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복음이고 사단의 말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복음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셨고, 그로 인해서 흠 없고 책망할 자로 세움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이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사도의 복음은 그리스도를 말할 뿐, 인간의 수고와 노력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그에 따른 보상 또한 말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복음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애당초 인간이 기대하는 것은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움을 입는다는 것보다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복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흠없는 자로 세움 받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하신 일이 그것뿐이라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흠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움을 입는다는 것보다는 이 땅에서 누리는 복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누구든 세상에서의 복을 원하지만, 신자는 세상의 것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의 가치는 세상에서만 통용될 뿐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에게만 통하는 것이 세상의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세상의 것은 쓰레기일 뿐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는 말로 증거했습니다.

 

 

신자는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일 뿐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풍성함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신자는 복음에 거하여 사는 것으로 충분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증거하며, 복음으로 살아가는 그것이야 말로 복음의 일꾼으로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미 일한 것도 없이 의로운 자로 여김을 받고 있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움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 또한 기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삶에 어려움이 있어도 분노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일꾼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이 여러분의 믿음으로 열심히 수고하고 일해서 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의 수고와 희생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살게 하시고 믿음에 있게 하시는 것이지 우리의 수고나 노력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믿음에 흔들리지 않는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복음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충만입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복음으로 인해 부족함이 없는 자로 사는 것이 복음 안에 사는 것이고, 그것이 복음의 일꾼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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