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010.02.22 11:23

(9강)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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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1:24-29http://onlycross.net/videos/Colossians/col-012429(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4-29 개정)

 

 

<설교>

 

인간은 왜 실천과 행함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까요? 실컷 복음을 말하고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결론은 항상 실천과 행함으로 끝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결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복음을 말하고 십자가를 말했다는 것 때문에 복음적인 설교라고 생각하지만 복음과 십자가는 언제나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를 향해 끌고 갈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의의 문제를 예수님에게만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역시 조금이나마 의를 갖춘 정당한 사람으로 서고자 하는 의도 때문에 ‘이론만 가지고는 안된다. 실천이 있어야 진짜다’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과 ‘아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비교하면 후자의 말에 마음이 더 끌릴 것입니다. 하고자 하는 의욕을 일으키는 것도 전자의 말보다는 후자의 말이 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너나 할 것 없이 실천과 행함을 외치는 것입니다.

 

 

사도가 말한 복음은 우리에게는 생명입니다. 단순히 교회 일에 열심히 있는 신자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생명임을 알고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 힘을 다해서 믿고 의지하는 자로 살 것을 외치는 것이 사도의 복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안에서는 ‘과연 안다는 것만으로 될까? 아무리 안다고 해도 실천이 없으면 그 앎은 진심으로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식과 지식에 의하면 그 생각이 분명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정보를 머리에 가지고 있는 수준을 아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런 수준의 뜻이 아닙니다. 뉴스를 보면서 대통령의 동정에 대한 정보가 머리에 입력되는 수준을 가지고 대통령을 안다고 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26,27절을 보면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그리스도를 비밀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밀은 누군가가 알려주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도록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는 그리스도를 만대와 만세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으로 말합니다.

사도의 말대로 만대와 만세로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인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도에게 나타났다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도만 알 수 있고 성도가 아닌 사람은 알 수 없어야 마땅합니다.

 

 

또한 교회 안의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성도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교회 안에서도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의 말대로 하나님의 성도만 알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세상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교회를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예수가 그리스도로 불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고,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정보 정도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의 사람들도 성경 지식에 대한 수준 차이는 있을지 언정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왜 그리스도를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세상이 다 아는 것은 비밀일 수가 없고, 하나님의 성도가 아닌 사람도 아는 그리스도라면 역시 비밀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도가 말하는 앎은 그리스도에 대한 정보가 입력된 수준의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안다고 해도 그 앎이 동일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도에게만 나타난 비밀이 그리스도라면, 그래서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의 성도만이 알 수 있다면 세상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는 모두 가짜고 잘못된 정보고 지식이라는 뜻이 됩니다. 즉 ‘예수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세상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이 아닙니까?’라는 것으로는 그리스도를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인간은 죄인이고 지금 당장 심판을 받아 죽어도 마땅한 존재임을 아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오셔서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을 예수 안에서 화평의 관계가 되게 하셨음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인간의 실천과 행함을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실천과 행함은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 개선에 전혀 효과가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앎에 의해서 신자는 자신의 행함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 안에서 의의 복으로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신자의 삶입니다. 이런 앎을 두고도 ‘아는 것으로 안된다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 가능할까요?

 

 

성경을 보면, 특히 시편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실천해야 한다’는 주장에 빗대어 생각해 보십시다. 여호와가 선하시고 인자하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으로 실천해야 한다면, 그리고 이것을 엄청난 지진의 피해를 입은 아이티의 사람들에게 요구한다면 과연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아는 앎으로 가능합니다. 여호와가 왜 선하시면 인자하신 분인가를 알게 될 때 감사는 자연히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즉 실천의 문제가 아니라 앎으로 인해 나타나는 자연스런 열매입니다. 아이티의 국민이 겪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자신들에게 함께 하고 있음을 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는 가능합니다. 이것을 신자에게 실천으로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신자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앎으로는 넘어진 상태에서의 감사는 절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나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나의 생명과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인해 넘어져 아픔이 있으면서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실천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앎의 역사고 능력인 것입니다. 감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행함의 결과가 아니란 것입니다.

 

 

28절에 보면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움 받는 것을 신자의 실천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가 신자를 완전한 자로 세운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인간의 실천과 행함을 믿음에 더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나은 신자로 서고자 합니다. 때문에 실천과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할례를 말하고 절기를 말하는 것은 할례와 절기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이고, 거룩한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연히 거룩해진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주장 아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가 자리할 곳이 있을까요? 피의 은혜는 다만 형식적인 것으로만 존재할 뿐 칭송받는 것은 인간의 실천과 행함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실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의를 말하고 십자가의 용서도 말하지만, 결국 인정되고 칭송 받는 것은 인간의 실천이고 행함인 것이 지금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움 받았습니다. 사도의 이 복음은 한 치의 모자람도 없이 완벽합니다. 이 복음 안에서 신자가 불안해 할 것은 없습니다. 신자의 실천과 행함이 부족해서 완전한 자로 세움 받는 일에 지장이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이 말을 미심쩍어 하는 것은 안다는 말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성령의 지혜고 역사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알게 된 신자는 앎에 의해 다스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앎이 신자를 다스리며 항상 믿음의 길에서 진리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설사 고통과 아픔의 일이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앎은 지식의 수준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몇 가지의 정보가 입력된 수준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그러한 지식에 의해 나올 것은 실천과 행함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알고 믿는 앎이 아니라 넘어진 자를 도와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잘못된 신에 대한 지식 아래 있기 때문에 결국 실천과 행함을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앎은 우리가 습득해서 채울 수 있는 지식이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의 역사로 인한 지혜가 곧 앎입니다. 그래서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앎이 신자에게는 능력이고 힘이 되어서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신자의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다가 우리에게 나타난 바 된 비밀이신 그리스도께 우리 마음이 향하고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풍성함이 신자가 누릴 복임을 알고 그 복에 마음을 두면 됩니다. 그리고 그 복으로 감사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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