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010.03.07 18:32

(11강) 하나님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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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2:1-5http://onlycross.net/videos/Colossians/col-020105(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골 2:1-5)

 

 

<설교>

‘비밀’은 비밀을 알고 있는 쪽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도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비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상관이 없는 불신자도 예수가 누구신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알려 줘서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세상으로부터 듣고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사도의 말은 잘못되거나 과장된 말일까요? 아니면 사도 당시에 그리스도는 아무나 알 수 없는 비밀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전파되어 모두가 알게 된 것입니까? 그런 것이라면 성경의 내용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경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이라고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사도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다면, 분명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따라서 지금 세상이 안다고 하는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셔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과 입을 통해서 전달되어진 다른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롬 16:25-27절을 보면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라는 말을 합니다.

 

 

이 구절에서도 사도는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의 글로 나타내신바 된 것으로 말합니다. 또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고 알게 하신 것은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자는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를 안다고 하면서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알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26절을 보면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을 하나님께서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내셨다고 말합니다. 아무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성도들에게만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성도는 하나님이 비밀을 나타내실 정도로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라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누구에겐가 알려준다면 그것은 그와 아주 가까운 관계를 의미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엡 2:12-13절에 보면 이방인인 우리는 원래 언약 밖에 있는 사람이어서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에 있었는데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로 하여금 더욱 풍성히 예수를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이며 복입니다.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는 말씀 앞에서 어떤 말이 거짓으로 드러나는가 하면 할례를 행하고 절기를 지키는 등 인간의 열심과 실천으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이 신자라면 신자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힘써야 할 부분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있다면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운 관계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대할 때마다 여러분께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은 신자로서 성경에 충실해지는 것입니다. 신자가 성경에 충실하고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신자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에 마음을 둔다면 복음에서 벗어난 말의 허점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자신의 상식과 지식에 맞는 말이면 모두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결국 복음이 아닌 말에 속게 되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거짓된 말에 속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깨닫는다면 다른 그리스도를 전하는 모든 말을 분별하게 될 것이고 속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 역시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신자와 사도의 얼굴을 보지 못한 모든 신자들에게까지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기 위해 힘을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자이기에 성경을 믿는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성경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아시고 믿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성경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거나 아예 성경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신자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마음을 두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어떤 교묘한 말에도 속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의 신앙적 열심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자신을 하나님과 더욱 가까운 관계로 나아가게 하고 복을 받게 한다는 것이 기독교 전부가 외치는 말이라고 해도 성경이 그것을 말하고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아닌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가 되기 위해 힘쓴다면 그것은 현재 자신은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가까운 관계가 아니기에 자신의 노력으로 가깝게 되어서 하나님의 복을 받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기도하고 성경 보기에 힘쓰는 것, 또한 교회에서의 헌신과 봉사를 외치는 것, 선교와 구제를 강조하는 이 모든 것이 앞서 말한 의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사도의 말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가 되었다면 더 이상 개선되어야 할 관계는 아닙니다. 즉 그리스도로 피로 이루어진 화목의 관계가 조금 부족하고 틈이 있어서 그 부족함과 틈을 우리의 노력과 정성을 추가해서 메워야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내용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그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이 담긴 실천으로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가 되고자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를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고, 그러한 나를 십자가의 피로써 구원하셨음을 아는 것일까요? 물론 그러한 앎도 포함이 됩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된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의 존귀함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영원한 생명이 될 수 없는 세상의 것에 대해서는 헛됨을 보게 되고, 대신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지식이 모든 보화에 해당된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복을 얻기 위해서 따로 실천해야 할 행동은 없는 것입니다. 신자의 행동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을 증거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나야 할 뿐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신자의 믿음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시간이 얼마가 되었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나를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게 했습니다’라는 고백의 믿음에는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기도를 몇 시간하고 성경을 몇 장 봤다는 것으로 차별되는 것이라면, 사도가 처음부터 그것을 언급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깨달으며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과 부요를 아는 것으로 이미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로써 차별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생들의 말의 시각에서 보면 믿음에는 차이가 있게 됩니다. 할례를 행한 사람과 행하지 않은 무할례자의 차이가 있고 절기를 지킨 사람과 지키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게 됩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주일을 지킨 사람과 지키지 않은 사람, 세례를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안에서는 그 어떤 차이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화목의 관계에 있게 하고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로 끌어가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면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고 말합니다.

 

 

질서 있게 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행함을 말합니다. 바울은 할례 자체가 잘못된 것이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 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율법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있는 자처럼 되었고,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도의 행동은 일관성이 없고 질서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도는 유대인을 얻고, 이방인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질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행하는 것이 질서 있는 행함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착한 일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자신의 착함과 행동을 보지 않고 날마다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를 믿는 자로 살아갈 뿐입니다. 이것이 질서 있게 행하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된 신자의 행함입니다.

 

 

성경은 신자가 무엇을 행하든 그 행함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함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행하는 그것을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지식으로 인해서 이미 모든 보화를 가진 자이기 때문에 세상의 복을 추가로 받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사도가 골로새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기 위해 힘쓴 것과 목사가 교회에서 힘써야 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사는 목사 자신이 원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깨달아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의 감사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는 그 마음으로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도 보지 말고 여러분 자신도 보지 말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십시오. 왜냐하면 교회도 여러분 자신도 여러분을 풍성한 기쁨으로 채워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아는 것이야 말로 가장 복된 것입니다. 이 앎이 여러분을 풍성한 기쁨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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