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010.03.22 19:56

(13강) 십자가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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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2:8-15http://onlycross.net/videos/Colossians/col-020815.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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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 2:8-15)

 

 

<설교>

15절에 보면 사도는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십자가로 이긴 상대가 통치자와 권세입니다. 통치자와 권세는 세상을 다스리는 힘을 가진 권력자입니다. 그런데 그 권력자를 십자가로 이기셨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를 믿는 신자로써 지금의 현실에서 ‘십자가로 이긴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현실에서 믿음이 승리하고 십자가가 승리하는 일들이 있던가요? 기독교를 욕하던 사람이 십자가를 전하자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굴복하는 일들이 있던가요? 물론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것은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은 십자가를 전해도 무시하던 자는 여전히 무시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통치자와 권세를 이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통치자와 권세는 자신의 힘을 믿고 삽니다. 그들은 자신보다 더 강한 힘이 등장하지 않으면 머리를 숙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굴복하려면 십자가가 그들보다 더 강한 힘으로 등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와 같은 힘을 전혀 발견할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십자가로 이기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통치자와 권세를 이기신 힘이고 권력이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그러한 힘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세상적인 시각에 보면 십자가는 오히려 약자의 위치에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즉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 앞에 세상의 통치자와 권세자가 무릎을 꿇은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통치자와 권세는 빌라도이고 제사장과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알았을 때 자신들이 행한 죄를 고백하면서 회개하고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을 감추려고 무덤을 지키던 군사를 매수하여 시체를 도둑맞았다는 거짓말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또 다시 잡아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십자가로 이기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십자가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승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세상의 권력에 패배한 채 세상에서 쫓겨나는 일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도가 십자가로 이기셨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승리, 즉 물리적인 힘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그런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또 다시 곤란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15절)라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십자가로 인해서 통치자와 권세가 조롱을 받고 구경거리가 된 적이 있었습니까?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신자가 핍박을 받고 조롱거리가 된 일만 허다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당시에도 동일합니다. 바울조차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일들이 허다했지 않습니까? 한번이라도 세상의 권력이 바울이 전한 복음 앞에 굴복하고 조롱거리가 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당당하게 십자가의 승리를 말하고, 십자가 앞에 세상의 권력이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따라서 신자가 사도가 전한 십자가의 복음을 알게 되면 사도와 같은 승리의 기쁨에 참여하여 진정한 승리자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는 어떤 의미에서의 십자가의 승리를 말할까요? 승리라는 말은 싸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싸움이 어떤 싸움인가를 알아야 사도가 말한 십자가로 이기셨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십자가가 승리가 되는 싸움은 세상에서의 싸움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세상의 싸움은 타인보다 더 강한 힘을 소유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승리자가 되는 것이지만, 십자가에는 그런 싸움이 없습니다. 만약 십자가가 그런 싸움의 현장이었다면 예수님은 힘없이 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늘의 천군 천사를 부르셔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이 생각하는 승리다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권력에 붙들리셨고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죽으셨습니다. 세상의 힘에 힘으로 대항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만약 힘으로 대항하셨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싸움 또한 힘에는 힘으로 대항하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앞서 말한 대로 예수님은 죽지 않았어야 옳습니다.

 

 

예수님은 칼을 가지고 예수님을 붙들러 온 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버린 베드로에게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싸움은 힘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힘과는 상관없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승리 역시 힘과는 상관없는 승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힘없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로 이기신 승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의 힘에 의해 힘없이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세상의 힘이 참된 힘이 아님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승리입니다. 참된 힘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예수님만이 사망에 갇힌 자를 살리는 참된 생명이 되심을 증거하는 십자가라는 사실을 증거하신 것이 승리입니다.

 

 

죽은 자에게 생명이 되는 십자가의 참된 힘 앞에서 통치자와 권세의 힘은 구경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영원한 사망에 갇힌 자에게는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헛된 것이고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죽은 자의 세계 안에서는 힘으로 인정받겠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헛된 것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 되는 참된 능력이 무엇인가를 알고 십자가를 믿는 신자에게는 세상의 힘을 자랑하고 힘으로 신자를 굴복시키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참된 생명이 되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드러난 것은 세상의 힘은 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이 십자가에 의해서 발각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 싸우신 것입니다. 죄를 폭로하시고 참된 힘이 무엇인가를 증거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싸움이었기에 십자가가 예수님의 승리인 것입니다.

 

 

요한1서 5;4,5절을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처럼 신자는 힘이 아니라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힘도 생명이 되지 못함을 알기 때문에 힘을 얻기 위한 싸움을 어리석은 것으로 보게 되고 다만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존귀하게 여기며 살아갈 뿐입니다. 세상이 힘을 자랑하고 힘을 과시한다고 해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그리스도가 생명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삽니다. 이것이 신자의 승리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가 참된 생명임을 믿는 신자에게 ‘예수 믿고 복받자’는 말은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십일조가 복이 되고 열심과 실천이 복이 된다는 말 또한 속이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8절을 보면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철학은 인간을 지향하는 학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무엇인가?’로 출발합니다. 오직 인간에게 집중하고 인간을 알려고 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도가 말하는 철학은 복음을 인간을 지향하는 말로 바꾸어 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복을 받고 잘 될 것이다’라는 말들이 모두 인간을 지향하는 철학적 사고에서 나오는 말들이고 헛된 속임수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인간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지향하는 복음이라면 ‘십자가로 이기셨다’는 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죄를 드러내면서 세상의 그 어떤 힘도 죄를 해결하는 힘이 될 수 없고 오직 십자가만이 죄를 해결하는 참된 능력이며 힘이라는 것을 증거할 뿐입니다.

 

 

신자는 십자가 안에서 죄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안에서는 모든 인간은 죽은 자로 평가됩니다. 죽은 자가 권력을 가지고 힘을 가진들 변함없이 죽은 자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사모할 것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는 참된 생명이라는 것이 십자가 안에서 드러납니다. 이 생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세상에서의 자기 존재를 확고하게 하는 것에 모든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야 말로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부패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이 곧 죄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서는 인간이 육신으로 행하는 그 어떤 것도 의가 되지 못합니다. 이 말은 육신으로 행하고 행하지 않는 문제들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거나 구원에서 탈락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신자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참된 할례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가 참된 생명이 되심을 믿기 때문에 세상의 힘을 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로 감사하고 그리스도가 충만이심을 믿을 뿐입니다. 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곧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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