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010.03.29 21:32

(14강) 순종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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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2:16-23http://onlycross.net/videos/Colossians/col-021623.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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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골 2:16-23)

 

 

<설교>

세상은 믿음을 복과 연결하여 생각합니다. 즉 믿음의 근본 목적을 세상에서의 복과 내세의 구원에 두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신을 믿는 것은 자기 믿음을 가지고 신에게 접근하는 것일 뿐이고 이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참된 믿음은 인간의 믿음으로 신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주어진 믿음이 택한 자기 백성을 주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이처럼 믿음이 하늘에서 주어져야 하는 것은 인간이 고안해 낸 믿음은 오직 인간을 지향할 뿐 하나님을 지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믿음과 하늘에서 주어진 믿음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드러납니다. 인간의 믿음은 인간의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행함을 고안해 내게 됩니다. 인간의 정성을 나타낼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고안하면서 그것을 신앙이라는 명목으로 실천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러한 자기 실천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은 복으로 보상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늘에서 주어진 믿음은 인간의 노력과 열심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의의 행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의 행함입니다. 때문에 참된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예수님의 행하심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하면서 자기 행함에 대해서는 부인하게 합니다. 이것으로 참된 믿음과 인간의 믿음이 구분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의 믿음은 인간의 정성을 나타낼 수 있는 최선의 행함을 고안합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세 가지로 말합니다. 그 세 가지는 율법의 실천 문제, 신비적인 체험 문제, 금욕의 실천 문제입니다. 이 세 가지는 지금의 교회가 신앙으로 가르치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 절기나 초하루, 안식일 문제는 모두 율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유대 사회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곧 신앙이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지금의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지 않고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신앙이 없는 것으로 비판을 받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율법의 행함을 신앙으로 여긴 것은 율법이 주어진 이유, 율법의 역할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면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는 말을 합니다. 장래 일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실 일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절기, 월삭, 안식일, 이러한 율법적 의식과 날들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고,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몸이 되는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림자의 역할은 끝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오신 지금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되는 것이기에 여전히 그림자를 놓지 않고 붙드는 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은 그림자를 실체로 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들은 새로운 생명의 나라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생명의 나라는 평안과 안식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비록 몸이 세상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기도 하고 병들고 죽는 길을 가고 있지만, 그 영혼은 이미 아들의 나라로 옮긴바 되었고 새로운 영광의 몸으로 부활한다는 약속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안식에 거하게 된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미리 보여주는 것이 절기고 안식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신자는 예수님이 하신 일에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는 절기나 안식일과 같은 날과 의식이 없어도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안식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실체는 무시하고 그림자를 붙드는 것이 됩니다.

 

 

할례도 율법이 말하는 것처럼 몸에 하는 것이 진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할례가 진짜입니다. 할례는 육신의 관계에서 태어났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인간의 육신적 관계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된 할례입니다.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아야 할 자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 새로운 사람이 된 이것이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몸에 할례를 행해야 신자라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고 다시 사심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절기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거나 율법적인 것을 내세우면서 실천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실체는 팽개치고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복음과 상관이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8절에서는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신비적인 체험을 신앙의 체험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신비적인 것에 매우 약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아직도 신비적인 것으로 뭔가를 보여주시고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면서 흔하지 않는 신비적인 체험을 열망하고 그것을 신앙으로 높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체험이 없는 것보다는 신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체험을 하는 것이 특별한 은사가 주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신비적인 체험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찾으려고 합니다. 꿈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천사가 자신에게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자신이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환상을 봤다고 하는 것도 신비적인 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또는 기도하고 안수할 때 사람이 넘어가는 것을 성령의 역사로 말하기도 합니다. 골로새 교회에도 겸손을 의도적으로 꾸며서 나타내는 사람이 있었고, 꿈이나 환상으로 천사를 봤다고 하면서 천사를 높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의도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천사를 본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본 것을 의지하여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본 것을 과장을 한다면 그것은 자기가 보고 체험한 것을 굉장한 것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굉장한 것을 보고 체험한 자신의 신앙을 대단한 것으로 나타내고 싶은 욕망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겸손을 꾸며내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겸손을 가장하여 자신을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나타내고 싶어 하는 욕망인 것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헛된 것으로 말합니다.

 

 

사도는 이것을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19절)라는 말로 경계합니다.

 

 

신앙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인데 자신이 보고 체험한 신비적인 것을 의지한다면 그것이 곧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그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하고 경건을 꾸며 낸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신자는 예수님에게서 공급되는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에 거한 자로 자라가기 때문입니다.

 

 

21절에는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금욕적인 것을 신앙으로 가르치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금욕적인 생활이 곧 경건한 생활이고, 경건이 곧 신앙이며, 따라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좋고 하나님과도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금욕과 고행을 실시한다고 해도 끊을 수 없는 것이 욕망입니다. 그래서 23절에 보면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고 하는 법정이라는 승려도 결국 무소유의 인간이 되어서 자유와 해방을 맛보기를 원하는 욕망에 매어 있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자기를 향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것이고, 이 욕망은 어떤 고행과 수고와 열심을 다 동원해도 끊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인간은 육체의 것으로는 생명을 향해 단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것, 즉 우리가 보고 체험하고 실천하고 만들어 내는 그 어떤 것도 우리 안에서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죄를 막는데 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로부터 나오는 것을 붙들고, 그것을 신앙으로 과장되이 드러내는 그 모든 것이 헛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론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복음입니다. 복음이 아닌 것에 순종하지 말고 생명이신 복음에만 순종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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