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010.04.05 08:44

(15강) 위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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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3:1-4http://onlycross.net/videos/Colossians/col-030104.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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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 3:1-4)

 

 

<설교>

기업은 매일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제품을 사용할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으면 그것으로 제품은 실패가 되기 때문에 조사와 연구를 거듭하면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고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한 제품이 만들어 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다른 모습으로 변형이 되고 발전되어 생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에서도 마치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제품을 개발하고 변형 하여 생산하는 것처럼 믿음을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변형시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인데 여러 가지 다양한 믿음들이 생산되고 있고, 교회는 교회의 발전에 유리한 믿음이 어떤 것인지 고르고 있는 세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믿음을 기준하여 다른 믿음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1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2절에서도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아마 대개의 신자들은 ‘신자는 세상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 즉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즉 위의 것은 하늘에 있는 천국으로 이해하고, 땅의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으로 이해함으로써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바울은 그런 의미로 말하지 않습니다.

 

 

1절에 시작되는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의 내용과 연결하는 접속사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따라서 1,2절의 내용은 앞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이해를 해야 합니다.

 

 

본문 앞의 내용은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율법적인 문제, 신비적인 체험문제, 금욕적인 문제에 대한 것들입니다.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거짓 선생들이 믿음을 율법적이고, 신비적이고, 금욕적인 것으로 연결하여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 내용을 배경으로 위의 것, 땅의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바울이 말한 땅의 것은 세상의 것을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바울은 그런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적인 실천을 신앙으로 여기고, 신비적인 체험을 신앙의 증거물로 여기며 체험을 믿는 것. 그리고 금욕적인 실천을 신앙의 경건으로 이해하는 것을 땅의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땅의 것이라는 말은 위로부터 주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땅의 것, 즉 인간이 만들어 내는 믿음과 위로부터 주어진 믿음은 다를 수밖에 없고, 하나님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믿음에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믿음에 대해서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위에서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땅에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은 아무리 고상하게 보이고 신앙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에 눈을 돌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직 보이는 세상을 지향할 뿐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신앙이 과연 어디를 지향하겠습니까? 땅일까요? 하늘일까요? 당연히 땅을 지향하는 신앙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열심히 실천하고 믿으면 복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에 의해 생산된 신앙은 세상을 향한 인간의 탐심을 근거로 해서 만들어 진 종교적 신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신앙을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인간, 즉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이것이 탐심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이 탐심에 의한 것인데, 그 탐심의 중심에 있던 것은 하나님 같이 되고 싶어 하는 하와 자신이었습니다. 이런 인간에 의해 태어난 모든 인간도 탐심을 가진 자로 태어날 수밖에 없고, 인간이 수시로 드러내는 것도 바로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악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한 탐심에 의해 만들어진 신앙이기에 그 신앙이 지향하는 것은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율법적인 실천과 행함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보상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신앙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땅의 것입니다.

 

 

신비적인 체험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비적인 체험을 통해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고, 성령을 받았고, 은사를 받았다는 그 모든 것을 신비적인체험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신앙에 대해 만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신앙을 가진 자신을 지향하는 욕망이기에 땅의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금욕적인 생활도 스스로 경건을 실천하고 경건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자기 구원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또한 자신을 지향하는 욕망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땅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주어진 신앙은 인간을 지향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지향할 뿐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땅의 신앙과 위의 신앙이 어떻게 다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땅의 신앙도 그리스도를 지향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땅이 신앙이 그리스도를 지향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땅의 신앙에서는 ‘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고 열심히 헌신 했으니 고통보다는 복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신앙은 예수님을 지향하면 지향할수록 복을 누릴 가치도 자격도 없는 것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지금 주어진 것으로도 감사할 뿐이고, 또 하나님이 가져가신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헛된 것이고, 인생은 안개와 같은 것이며, 영원한 것은 하늘에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에 모든 소망을 예수님께 두게 됩니다. 이것이 하늘에서 주어진 신앙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신앙은 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지향하던 모든 것이 탐욕일 뿐임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의 피 흘림이 아니면 생명에 들어갈 수 없는 인간임을 보게 할 뿐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자기 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복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위의 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이 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을 한 후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러한 위의 것을 말하지 않은 교회는 없습니다. 아무리 엉터리 교회라고 해도 ‘위의 것은 없다 땅의 것만 있고 땅의 것이 최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위의 것을 말하면서 한가지 덧붙이는 것은, 땅에서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땅에서 믿음으로 잘 살아야 위의 것, 즉 천국도 들어가고 복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한 것이 있어야 받는다’는 것은 땅의 사고이고, 인간이 만들어낸 땅의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으로는 ‘한 것이 없이 받는 은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기 위해서는 헌신해야 하고, 내어 놓아야 하고, 바쳐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땅의 것과 상관없는 것이 위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율법적인 실천이나 신비적인 체험, 금욕적인 경건생활 등, 우리가 신앙의 최고 덕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 모아도 위의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신자가 신앙의 덕목을 보인다면 그것은 뭔가 받기 위한 실천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위의 것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위의 것을 증거하는 도구이기에 나타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은 예수님 한분에게만 국한된 내용이 아닙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하는데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즉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가 되었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누리는 모든 것을 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가 주와 함께 하늘 보좌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위의 것은 곧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자리인데, 하늘의 영광은 우리의 실천이나 체험이나 경건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서 우리를 산 자가 되게 하고, 그로 인해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광에 거하게 됩니다. 따라서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생각하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가 어떻게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가를 생각한다면 ‘믿는 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실천이 있어야 신앙이다. 말씀의 은사만 가지고는 안된다. 체험의 은사도 있어야 한다’는 말에 미혹되지 않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3,4절에서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신자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즉 이미 주의 영광에 하늘의 생명에 참여 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현대 교회는 이 관계를 무시합니다. 십자가로 이루신 관계를 믿기보다는 인간의 실천과 노력으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고 유지하려고 할 뿐입니다.

 

 

신자는 위에 속한 사람입니다. 땅의 원칙이 아니라 위의 원칙을 따라 살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그것이 생명이신 그리스도께 마음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마음을 두면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족함이 없는 자기 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마음을 두면 조바심이 나고 낙심도 합니다. 그래서 실천을 안하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매이게 됩니다. 신자의 영광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위로부터 주어진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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