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010.11.01 09:22

(1강) 사도의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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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 1:1-4http://onlycross.net/videos/2the/2the-01010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설교>

세상에는 사탄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사탄의 활동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자가 사탄의 활동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탄이란 존재를 의식하지 않거나, 사탄에 대해 오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은 사탄을 단순히 악한 영으로만 생각합니다. 인간을 꾀어서 악한 일을 하게 하는 존재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악한 사건들이 사탄이 활동하고 있는 흔적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신자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즉 교회를 다니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을 사탄의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신앙생활 잘하면서 선하게 살아간다면 사탄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같이 사탄의 활동을 감지합니까? 과연 무엇으로 사탄이 활동하고 있는 세상임을 감지하십니까?

 

 

사탄은 사람들에게 인간이 기대하는, 인간의 욕망과 일치된 메시야 관을 심어 놓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생각하는 메시아와 일치되지 않는 것은 거부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세상에 다른 예수가 등장하고 거짓선지자가 나타나며 참된 복음이 배척을 받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복음이 배척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핍박을 받는 현상을 보면서 신자는 사탄의 강력한 활동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믿음의 길이 순탄하고 평안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헛된 상상이고 환상일 뿐입니다. 사탄이 활동하는 세상은 결코 믿음에 대해 호의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사상과 이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거부하는 인간의 악함의 결과입니다.

 

 

지금도 믿음의 길에는 핍박이 있습니다. 물론 초대교회가 받았던 핍박과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와 법이 국가마다 다르기 때문에 핍박의 양상 또한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동일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진리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진리를 말하나 인간의 기대와 일치되지 않는 것은 진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길에서 진리를 따르는 신자에게는 필연코 주어질 수밖에 없는 핍박입니다. 이러한 신자의 길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첫 번째 편지를 보낸 후 핍박이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이 더욱 강하게 핍박을 한다고 해도 신자에게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면서 흔들리지도 낙심하지도 말라는 권면을 위해 두 번째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3,4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말한 대로 사도가 처음 편지를 보낸 후 데살로니가 교회의 핍박은 더욱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를 향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사도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일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일은 믿음이 더욱 자라고 서로 사랑함이 풍성한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가 되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이 도무지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풍성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환란과 핍박을 받는다면 그것은 분명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낙심하거나 자포자기한 심정이 될 수 있고 편한 길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오히려 믿음이 자라고 서로 사랑함이 풍성해진다는 것은 세상을 거꾸로 사는 것과도 같습니다.

 

 

믿음이 자라는 것은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핍박이 심해졌는데도 불구하고 흔들림이 없이 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 믿음을 책임지고 계신 결과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도는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풍성한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된 것이고,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 교회에서 친히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의 감사와 자랑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해 감사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자랑합니다. 기쁨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도가 옥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옥에 갇힌 것까지도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도는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내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편하고 풍족한 인생을 원할 뿐이고 하나님의 일도 그런 방향으로 되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잘되는 일에는 감사하고 힘든 일에서는 낙심할 뿐입니다. 항상 감사와 불평이 반복되고 자랑과 낙심 또한 반복합니다. 매일 같이 변덕을 부리면서 하나님이 아닌 나를 바라보며 삽니다. 이것이 우리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믿음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볼 때 믿음은 힘없는 자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 것을 가질 수 없어서 신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나약한 모습일 뿐입니다. 또한 믿는다고 해서 잘되는 것도 아니기에 믿음은 자랑의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내게는 믿음이 있다’고 소리를 지르고 자랑한다고 해도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박해와 환난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초라한 몰골이라면 조롱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다고 하고, 믿음을 존귀하다고 하면서 믿음의 사람이 되고 믿음이 주어진 것을 나의 잘됨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믿음을 진심으로 존귀한 것으로 여긴다면 믿음이 있는 나를 잘된 것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자신의 잘됨으로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세상의 시각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우리들은 그러한 자랑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때때로 믿음을 부끄러워합니다. 내 놓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내놓을 것이 없어서 부끄럽습니까? 무엇을 내 놓고 자랑하고 싶습니까? 신자가 내 놓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를 죄에서 건지셨고 영원한 생명에 속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항상 죄 가운데서 허덕이며 살아가는데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매일 붙드시고 지키시며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로 살게 합니다. 이같은 예수님의 함께 하심으로 인해서 신자는 영광의 세계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마지막의 순간에 서서 세상을 보고 우리 자신을 본다면 예수님이 항상 함께 하시며 사탄이 활동하는 세상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우시고 지켜 주시면서, 항상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도록 일하시는 예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고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에 마음을 두고 높아지는 것이 삶의 이유가 된다면 항상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돈을 손에 쥐었다고 해도 순간 더 많은 돈을 꿈꾸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살린다고 생각합니까? 돈입니까? 물론 돈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이 있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없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생존의 근거는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신대로 살면서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존귀한 것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설사 극심한 환난이 주어진다고 해도 환난을 보기 보다는 환난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눈에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려서 박해와 환난에서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믿음이 전부고 삶의 중심이며 감사와 자랑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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