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010.11.08 09:02

(2강) 하나님의 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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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 1:5-12http://onlycross.net/videos/2the/2the-01051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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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설교>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극심한 환난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말대로 하자면 의인이 고통을 받고 악인이 형통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현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편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고통과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이 계속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이럴 수가 없다’는 생각이 우리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유는 핍박과 환난이 계속되는 데도 불구하고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교회에 역사하신 결과로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우리의 생각이나 기대와는 다르게 세상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교회에 핍박과 환난이 있게 하시는 것일까요? 7절을 보면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라는 말을 합니다.

 

 

사도는 장차 주께서 세상에 나타나실 때 환난을 받는 신자에게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합니다. 이 말대로 한다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 위해 교회에 환난과 핍박이 있게 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환난과 핍박은 복음의 길을 가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신자로 하여금 환난의 길을 가게 하심으로써 마지막 때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편안한 삶을 누리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말은 관심 밖의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편안한 삶의 방편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고, 복음은 이런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의 안식을 원합니다. 하나님을 부르며 구하는 것도 세상에서의 안식입니다. 세상에서 안식을 누리다가 죽어서 천국에 가서도 안식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가 말한 하나님은 환난을 받은 자에게 안식으로 갚으시는 분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때 나타날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윤리적으로 사는 것이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것을 착하게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예수 믿는 것은 별것 아닌 것이 됩니다. 신앙이 이런 차원의 것이라면 굳이 예수를 선택할 필요 없이 동서양의 성현들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처럼 윤리적인 삶이나 세상에서의 복과 천당에만 초점을 두는 신앙은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할 뿐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서는 마음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는 신자는 형통하게 하고 신자가 아닌 사람은 힘들게 사는 것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죄인은 벌을 주고 의인은 상을 주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그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상을 보면 하나님의 공의는 상실되고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어찌 보면 뒤죽박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잘살고 못사는 것이 원칙과 기준이 없습니다. 착한 사람이 잘 살고, 악한 사람이 벌 받는 원칙도 아닙니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말한다는 것이 곤란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것이 사도가 말한 대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때에 환난 가운데 있던 믿음의 사람들에게 안식으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복음을 거부하는 것으로 믿음의 사람을 핍박했던 자들은 영원한 고통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핍박과 환난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은 복음을 거부하게 되어 있고,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의 힘을 믿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에 복음을 던졌을 때 환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은 것이 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앙현상을 확인하려면 기독교인들의 궁극적인 관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를 보면 됩니다. 아마 자기 자신에게 모든 관심을 두고 산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외적인 열정을 본다면 예수님을 향한 믿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고 있을 뿐입니다.

 

 

매주 몇 차례 행해지는 교회에서의 설교 내용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인들의 관심사에만 편중하여 세상에서 잘되는 것에 집중된 설교로 가득합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사건에 마음을 둘 수는 없습니다. 종말론적 구원사건에 마음을 두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으로 인한 핍박과 환난은 다만 고통일 뿐이고, 따라서 가급적 회피하고 싶어 할 뿐입니다. 이런 사람이 복음을 바르게 증거할 수 없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의 자신의 삶에만 집중한다면 예수님이 나타나심으로 이뤄질 참된 현실에 대해서는 마음이 가지 않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인들이 자기와 자기 교회에 관심을 집중함으로 인해서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오심에 대한 관심을 놓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의 기다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뤄질 생명과 영광의 세계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까? 만약 이런 문제에 대해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구경꾼의 자세로만 있는지도 모릅니다.

 

 

구경꾼으로 살아도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의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구경꾼의 자세로 있으면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신자가 누릴 수 있는 기쁨과 감사와 넘치는 열망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가난함입니다.

 

 

7절 중간부터 보면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형벌을 받을 자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영원한 멸망의 형벌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이루실 참된 현실을 바라보면서 이 말씀을 대하면서도 덤덤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이뤄질 일임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무엇일까?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멸망의 형벌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하나님이 이루실 종말론적 사건임을 믿는다면 이런 마음은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이나 복음을 복종치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불신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고 복음에 복종한다고 여기는 우리들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몰랐던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다고 하지만 복종치 않은 자들이었던 것처럼, 그런데도 그 같은 자신들의 실체를 까맣게 몰랐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복음에 복종하는 것은 내가 부인된 자로 십자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나의 죽음을 보게 됩니다. 죽은 자에게서 나올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공로를 의지하고 감사하는 것이 복음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피가 있는 자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고, 피가 없는 자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로 갚으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 공의는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어서 세상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것에 마음을 두기보다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세상에 행하실 하나님의 공의에 마음을 둘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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