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0.06.14 08:07

(91강) 보화, 진주장사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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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44-46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3444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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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 13:44-46)

 

 

<설교>

 

◎ 일상의 생활에 들어와 있는 천국 ◎

 

일반적으로 천국을 ‘신비’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천국은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이상적인 나라, 즉 유토피아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슬픔과 눈물이 없는 완벽한 행복만이 있는 나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재림 하신 후에 완벽하게 드러날 영광의 나라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분명 현재와는 다른 나라일 수밖에 없고,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인지는 육의 인간인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세상에 임한 천국입니다. 현재적 천국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적 천국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오해로 인해서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일상과 다른 특별한 체험으로 기대하게 되고, 결국 우리의 일상에 이미 들어와 있는 천국은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자신의 일상생활을 신비롭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같이 계속되는 생활이고 신자만의 특별한 삶이 아닌 모든 사람과 동일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매일 동일하게 반복되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삶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러한 삶에 천국이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 비유를 보면, 전혀 특별한 체험이 아닌 당시 유대인들의 일상생활을 비유의 도구로 사용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나 곡식과 가라지 비유는 농사를 짓는 평범한 삶을 담고 있고, 겨자씨 역시 희귀한 씨가 아닌 유대인들의 생활에 함께 하는 흔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비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그리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이야기, 이 모두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생활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생활을 도구로 삼아 천국을 말씀하시는 것은, 세상에 임한 천국은 시각적으로나 체험적으로 특별하게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 하시는 의도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유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면 일상이라고 말하는 삶에 천국이 함께 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고, 특별한 체험과 시각적인 증거물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삶이 가능해 질 것입니다.

 

 

◎ 보화 비유 ◎

 

먼저 예수님은 천국을 밭에 감춰진 보화로 말씀합니다. 천국을 밭에 감춰진 보화로 비유 하시는 것은, 천국이 보화라는 가치성을 갖고 세상에 들어와 있지만 세상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묻혀 있어서 볼 수 없는 은폐의 방식으로 들어와 있음을 의미합니다.

 

 

천국이 세상의 가치관에 합당한 가치성을 갖고 세상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나 있다면 세상은 천국을 얻기 위해 예수를 부르고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밭에 감추어진 보화는 밭에 보화가 있음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임한 천국의 실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보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이 보화로 인정하는 것과 성경이 말하는 보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보화에서 자기 행복을 기대합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가치 있는 것을 보화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학 2:6,7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한 모든 나라의 보배는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할 보배이며 이는 곧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벧전 2:4절에서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 일컫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보배를 보배로 여기지 않고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벧전 2:7)라는 말씀처럼 버려도 되는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이 구절들을 본다면 밭에 감춰진 보화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감춰져 있는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배를 찾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보배를 찾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가 보배를 찾기 위해서 남의 밭을 파헤친 것이 아니라 보배가 그에게 드러난 것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그러한 방식으로 다가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힘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스스로를 드러내심으로 예수님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보배를 발견한 그 사람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삽니다. 보배를 발견했으면 보배를 들고 가면 되는데 왜 밭을 샀을까요? 남의 밭에 있는 보배를 가져가는 것이 옳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밭을 살 때 밭에 보배가 있음을 밭주인에게 말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보배를 얻기 위해 밭을 샀다는 것은 뭔가 애매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양심이나 도덕적인 문제와는 연관이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주인에게 밭에 감춰져 있는 보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 자체가 이미 도덕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보배를 발견한 사람의 태도를 통해서 예수님이 보배임을 알게 된 신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말씀하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보배만 들고 갔다면, 그것은 보배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보배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보배의 가치를 앎으로써 상대적으로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가치 없게 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가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심으로 보배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보배의 가치를 알았다면 상대적으로 가치 있게 여겼던 모든 것들의 가치성은 자연히 하락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것은 여전히 자기 소유로 남겨 놓고자 하면서 보배만을 차지하고자 하는 것은 욕망의 시각으로 보배를 바라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대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자신의 것에 애착을 가진 욕망 그대로 예수를 찾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생명이 되신 보배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채워주는 보배로 여기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보배가 아니라 밭을 샀을까요? 그 이유 역시 비유를 통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은 보배로 오신 자신을 세상에 들어와 있고, 세상에 감추어져서 세상과 함께 하고 있는 분으로 말씀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보배임을 아는 신자에게 세상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예수님이 들어와 계시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보배를 얻기 위해 밭을 산 사람에게 밭은 농사를 잘 지어서 많은 곡식을 수확하고 부자 되는 소망을 갖게 하는 땅이 아닙니다. 밭에 보배가 감추어져 있음을 알지 못한 사람에게 밭은 단지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땅이지만, 보배가 감추어져 있음을 안 사람에게 밭은 부자 되기 위한 용도가 아닙니다. 밭을 살 때부터 부자 되기 위한 목적은 없었습니다. 밭이 자신에게 무엇을 주든 상관없이 밭에 보배가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신자의 시각이어야 합니다.

 

 

비록 보배로서의 가치가 드러나지 않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분으로 감추어져 있지만, 적어도 신자에게는 보배로우신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이 자신에게 무엇을 주든 상관없이 자신에게는 드러나 있는 보배로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배로 인해 밭을 산 사람의 마음이지 않겠습니까? 신자에게 보배로우신 예수님에 대한 이 마음이 있다면 그의 모든 생활은 주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천국입니다.

 

 

◎ 진주 장사 비유 ◎

 

진주 장사 비유는 보화 비유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던 장사꾼이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자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진주를 샀다는 내용이 보배를 사기 위해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산 사람의 내용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44절에서는 천국을 밭에 감춰진 보화로 말하지만 45절에서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좋은 진주가 천국이 아니라 진주를 구하던 장사꾼을 천국으로 얘기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를 진리, 또는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신자로 이해하게 되면 신자가 곧 천국이라는 해석이 되는 것이고, 진리 또한 신자가 구하고 찾으면 찾게 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성경과는 맞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천국으로 오신 예수님은 세상에 대해 감추어져 있으며 그 가치 또한 세상은 알 수 없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셨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인 당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예수님이 진리이시고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에 예수님을 알아보고 자신의 소유 전부보다 더 가치 있는 분으로 여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천국을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로 비유하시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기 백성을 찾으시는 예수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 6:39절을 보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는 아버지께서 주신 백성이 있고, 그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아버지의 뜻에 있습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님은 아버지가 주신 택한 자를 찾으시는 분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 18:12-14절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는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택하신 자기 백성을 좋은 진주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분으로 오셨고, 좋은 진주를 만나게 되면 자기의 모든 소유, 즉 예수님의 목숨까지 내 놓으시고 택한 백성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숨까지 내어 놓으시기까지 하시면서 사신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시면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예수님이 천국으로 우리 곁에 이미 들어와 계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이미 하나님의 보배로, 진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찾을 필요가 없는 보배였기 때문에,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보배를 보배답게 취급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기다리는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일상생활을 변화시키는 분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상생활에 들어와 계셔서 세상이 볼 때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분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은 천국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을 구하시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원하는 진주를 구했을 때 그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바로 그와 같은 마음으로 자기 백성을 찾으시고, 찾으시면 존귀하신 그 목숨을 값으로 치르시고 찾은 백성을 사십니다.

 

 

그가 바로 여러분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신자 됨이 예수님의 피 값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만으로 천국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일상생활이야말로 천국이기 때문에 이것이 신비로운 삶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생명의 부활이 신자로 하여금 신비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행복의 조건을 갖춘 일상생활이 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지만 남는 것은 실망과 한탄과 불만과 원망뿐입니다.

 

 

반면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보화라는 것을 알게 된 신자는 보화가 감추어진 밭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밭에서 다른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보화가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이러한 깊이로 나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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