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0.10.18 14:20

(109강) 행한 대로 갚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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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27-28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6272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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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설교>

 

◎ 믿음과 행함의 문제 ◎

 

기독교인에게 믿음과 행함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혼란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성경은 분명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말도 성경 전반에 언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는 구절을 중심으로 자기 행함을 근거로 해서 믿음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행함을 근거로 해서 믿음을 확인하고자 할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행함의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어느 정도로 행해야 믿음에 의한 행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습니다. 또한 그 기준을 누구도 세울 수가 없습니다.

 

 

가령 자식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해 놓았는데 아는 사람의 자식이 큰 병에 걸려서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돈을 빌리러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등록금으로 마련한 돈을 내 놓아야 합니까? 아니면 돈이 없다고 하고 돌려보내야 합니까? 여러분이 생각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에 의한 행함일 것 같습니까?

 

 

돈을 빌려주면 사랑을 행했다는 것으로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내 자식이 대학을 포기해야 합니다. 빌려주지 않으면 대학은 보낼 수 있겠지만 사랑을 행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의 아이가 결국 돈이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죄책감은 더해질 것입니다. 아마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괴로워하고 후회도 하겠지요.

 

 

한 예로 말씀을 드린 것이지만 행함의 문제에 들어가면 이런 혼란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어느 정도 행해야 믿음에 의한 행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그 기준을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행함을 무시하고 믿음만 강조할 수도 없습니다. 행함을 무시하고 믿음만 강조한다면 믿음을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행함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행함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행함의 문제에서 크게 오해하는 것은 행함을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믿음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실천에 의해 증거된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행함의 기준이 없는데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를 행함으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윤리와 도덕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윤리와 도덕은 함께 사는 사회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서로 지켜야 하는 질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윤리 도덕적 수준의 행함은 인간에게 있는 양심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일 뿐입니다.

 

◎ 행함에 대한 이해 ◎

 

27절을 보면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온다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로 가시고 다시 세상에 오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것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시겠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말씀 때문에 구원은 믿음으로 되지만 심판은 행위에 따라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에는 큰 모순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이미 심판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믿음이 없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을 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심판의 여부는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로 규정되는 것이지 행함에 따라 심판과 구원이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행함이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말씀을 행함에 따라 심판을 하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과연 어떤 행함이 심판에 해당되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행함을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실천, 그리고 종교적인 활동으로 이해한다면 과연 어떤 행함이 구원에 해당되고, 어떤 행함이 심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물음부터가 이미 복음의 정신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구원에 해당되는 행함은 율법을 완벽히 이루는 것인데, 그것은 이미 자기 욕망에 파묻혀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세상에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행함은 없다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에 어떤 행함이 구원에 해당되고 어떤 행함이 심판에 해당되느냐는 물음은 복음과는 상관없는 것이 됩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한 행함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수준에서 이해한다면 우리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서 서로 부딪히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난 주일의 말씀을 배경으로 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행함을 윤리와 도덕, 그리고 종교적 실천으로 이해한다면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행함과 믿음이 아닌 행함을 구분할 분명한 기준을 세울 수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한다면 분명한 기준이 생깁니다.

 

 

25절을 보면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한 행함의 기준입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한 행함은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한 것과, 주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구분됩니다. 다시 말해서 누가 자기 목숨을 구원하기 위해 살았고 누가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로 살았는지 그 행함을 따라 갚으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세상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버린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하늘의 왕권을 가지고 오셨을 때 생명으로 갚아주시고,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오직 자신을 위해 살면서 예수님을 버린 사람은 하늘의 생명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말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실천을 무작정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이라는 자기 유익을 위해서 행하는 것이라면 믿음과 상관이 없는 것이고, 오히려 생명을 잃은 것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실천이 있으면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잃으면 찾는다고 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잃는 실천을 해야 합니까? 실천을 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합니까? 기독교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는 나라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죽는 것이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잃는 실천입니까?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한 실천이라면 우리는 지금 한가롭게 예배당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잃어야 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중동지역으로 가서 예수를 외쳐야 하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같은 실천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함을 육신적 활동, 실천으로 이해하지만 예수님이 말씀 하신 ‘행한 대로’라는 말씀은 구체적인 행동을 의미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을 잃어도 좋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신자라면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고, 그것이 곧 예수님이 오셨을 때 생명을 얻는 행함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신자의 삶에 분명 영향을 끼칩니다. 세상은 오직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만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내가 손해를 본다고 해도 예수님이 증거되는 길로 이끌어 가는 것으로 그 믿음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것은 우리가 행한 것을 하나하나 모아 두었다가 마지막 때 그에 따른 보상, 또는 심판으로 갚으신다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행함에는 믿음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욕망에 의한 행함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에 의한 선한 행함과 욕망에 의한 악한 행함을 따로 분리해서 모아 두었다가 선은 선으로 갚으시고 악은 악으로 갚으신다는 것입니까? 그러면 믿음에 의한 행함도 있고 욕망에 의한 악한 행함도 있을 때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이처럼 행함을 실천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의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믿음으로 산다는 것 ◎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믿음은 신자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 길로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신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을 자신이 가야할 인생으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신자가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것이 행함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도 성령이 임하고 믿음이 그를 다스렸을 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목숨을 잃은 순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살리고자 하는 인생길을 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욕망이 있고, 이 욕망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내 목숨을 살리는 길로 가게 합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죽근 살든 관심이 없고 오직 내가 사는 길에만 마음을 둡니다. 자기 부인은커녕 나의 잘남과 나의 성공, 나의 이름을 드러내고 높이는 것을 더 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이것을 우리 힘으로 어쩌지를 못합니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해결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내 안에서 나를 장악하고 있는 욕망을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문제는 욕망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우리가 부인해야 할 악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겠다는 것을 탐욕, 욕망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어 하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부흥시켜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겠다는 것도 인간의 탐욕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이루는 믿음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 모든 것을 부인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도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신자의 기도입니다. 내가 살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내가 죽고 예수님의 이름이 증거되고 예수님이 살기 위한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이고 믿음에 의해서 나타나는 행함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지키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자존심입니까? 아니면 체면입니까? 혹은 명예입니까? 예수 안에서 그 모든 것은 다만 부인되어야 할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 안에서 나의 자존심이나 체면, 명예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가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자기 자존심을 위한 싸움으로 나가지 않게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좋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이기는 헛된 싸움에 빠져들지 않게 합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자신 또한 부인되어야 하고 죽어야 할 존재로 여기면서 예수님이 증거되는 것에만 모든 마음을 두게 합니다. 이것이 믿음에 의한 행함입니다.

 

 

따라서 믿음과 행함은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행함이며 행함이 곧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믿음이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행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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