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1.01.16 19:29

(121강) 천국과 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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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9:10-12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9101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설교>

 

◉ 예수님이 말씀한 이혼 사유 ◉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곧 행복을 창출한다는 논리 아래 서로 마음에 이끌리는 상대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때문에 결혼으로 행복하지 못한다면 자기 행복을 위해 이혼을 하기도 하는 것이 지난주에 말씀드린 허술한 인간의 사랑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혼은 쌍방의 합의로 이루어집니다. 만약 어느 한쪽이 이혼을 거부한다면 결국 소송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 경우 소송을 당한 쪽에 이혼에 합당한 중대한 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유대 사회에서의 이혼 문제는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결혼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 받습니다. 이것은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 3:16)라는 성경을 근거하여 아내를 향한 당연한 요구사항으로 존재했습니다.

 

 

당시 아내는 남편에게 재산의 일부였고, 자식을 낳아 가문을 유지하는 도구였으며 남편의 즐거움을 위한 노리개처럼 취급 받았습니다. 당연히 아내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남편이 아내를 싫어한다면 적당한 이유를 대어서 율법대로 이혼증서를 써서 두 명의 증인 앞에서 아내에게 주어 쫓아 버리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아내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아내는 철저하게 남편을 위한 존재였으며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는 버림받을 행동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남편의 미움을 받지 않아야 했고 철저하게 남편에게 종속되어 복종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9절)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사유는 오직 음행뿐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신자는 남편이나 아내가 음행을 했을 때만 이혼을 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남편이 자기 마음대로 아내를 버리는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지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문제까지 포함하여 말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 현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이혼 사유를 오직 ‘음행’하나로만 규정한다면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이라며 크게 반발할 것입니다. 이혼 사유에는 음행 외에도 구타, 도박, 술이나 마약 중독 등등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가정을 계속 유지할 수 없는 심각한 원인을 제공한다면 이혼은 합당하다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오직 음행이 있을 때만 이혼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오해한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앞서 말한 대로 지금의 부부와 당시 유대 사회에서의 부부 관계가 달랐다는 사실에도 유의를 해야 합니다.

 

 

◉ 천국이 거부하는 인간 ◉

 

 

하지만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이혼이 정당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오직 음행한 이유 외에는 이혼을 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해 왜 반발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 행복에 장애가 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혼은 자기 행복을 찾기 위해서인데, 음행한 이유 외에 이혼하지 말라는 것은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꾹 참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불행한 삶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입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말씀에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10절)는 말로 반발을 합니다. 제자들도 아내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유대인의 개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싫어지면 율법대로 이혼증서를 써서 주고 버리면 율법에 대해 전혀 문제될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음행의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들면 간음, 즉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어기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율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고 보기 싫다고 해도 음행을 하지 않았다면 버리지를 못하고 계속 함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편의 입장에서는 자기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아내에게 그같이 해야 한다면 차라리 장가들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더 좋겠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아내를 버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는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속성이며 천국은 이러한 속성을 철저히 거부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말에 대해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11,12절)라고 말씀하시는 의미도 결혼의 문제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속성과 천국의 문제에 중점을 둘 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지 말라는 말씀을 타고난 자 외에는 받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받는 자는 하나님에 의해서 타고난다는 것입니다.

 

 

◉ 이해할 수 없는 성경의 결혼관 ◉

 

 

왜 사람은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자기 행복 위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혼을 하는 것입니다. 즉 이혼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 자체가 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죄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다면 이혼 하겠다는 생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7:32-34절에 보면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결혼관에 비추어 보면 이 말씀이 이해가 될까요? 남편은 아내를 기쁘게 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기쁘게 해야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현대인이 꿈꾸는 가정이 이런 것이고 신자 역시 이런 가정을 이루어서 본이 되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 만들기’라는 세미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아내를 기쁘게 하고 남편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이 갈린 것으로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결혼의 의미가 부부의 행복에 있지 않고 머리 되신 주님을 섬기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이런 결혼을 생각하겠습니까? 결혼을 해서도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런 마음이기 때문이 남편이나 아내가 내게 기쁨이 되지 않으면 이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행복을 위해 사는 인간은 천국 역시 자신의 행복을 통해 만끽하려고 하게 됩니다. ‘가정이 천국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말의 의미 역시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가정이 화목한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가정이 천국이 되려면 남편을 기쁘게 하지 못한 아내는 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고자’라는 말을 하십니다.

 

 

◉ 예수님과 고자 ◉

 

 

고자는 남자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요즘은 남자의 성기능 장애로 인해 자식을 낳을 수가 없으면 입양을 하면 되고, 또 남자의 그런 결함은 단순히 하나의 장애로 여기지만 유대 사회에서 고자는 부정한 존재로 취급받습니다.

 

 

신 23:1절에 보면 ‘고환이 상한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규례가 있습니다. 이 규례로 인해 고자는 유대 사회에 함께 할 수 없는 부정한 자로 취급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자 되었다는 것은 남자로써 비참한 처지가 됨을 의미합니다.

 

 

고자는 결혼을 통한 인간의 행복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행복은커녕 비참한 처지가 된 사람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본다면 참으로 불쌍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자를 통해서 천국을 말씀하십니다. 이 천국은 모든 사람이 받을 수가 없고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만이 받을 수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란 고자로 선택 되어 태어난 사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선택되어 신자로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이들 신자는 천국이 육신의 행복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비참한 자리에 있을 때 진정한 천국을 알 수 있음을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고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인위적으로 고자가 되어 자기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시 이방종교에는 신을 섬기기 위해 고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자가 되어 가정을 이루지 않고 신만 섬기는 것을 거룩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고자 되는 것이 신을 향한 자기 열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고자로 인한 인간의 비참과 낮아짐에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거룩과 구원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고자가 아닌 것입니다.

 

 

반면에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고자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천국을 이루시고 천국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스스로 고자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비참함과 낮아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이 길을 누가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까? 자기를 위해 살고, 자기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 길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로 받아들일 뿐이고 천국 역시 행복한 세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예수님이 가신 스스로 고자 된 길, 즉 십자가의 길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길은 어머니의 태로부터 고자 된 사람들만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신자들만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고자를 예수님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은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는 욕망이 그것을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 유익을 위해 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천국을 위해서 스스로를 비참함과 낮아지는 길로 밀어 넣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신자입니다.

 

 

왜 사는 것이 무거운 짐이고 결혼 생활이 힘들까요? 바로 우리에게 있는 죄의 속성 때문입니다. 내 행복을 위주로 살아가는 속성 때문에, 내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것 때문에 삶이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보지 못합니다.

 

 

천국은 스스로 고자 된 주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자신의 악함을 깨달은 낮아진 마음일 때 받아들이게 됩니다. 육신의 행복이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고자 되게 하시면서 스스로 고자 되신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으로 기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로 인해 감사하는 그것을 천국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자신이 고자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천국을 알 수 있는 타고난 자에 해당되는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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