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2.04.15 13:06

(6강) 예수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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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7http://onlycross.net/videos/nuk/nuk-0201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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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설교>

 

◉ 성경이 증거 하고자 하는 것 ◉

 


예수님의 탄생기사는 4복음서에서도 유독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그 내용 또한 서로 상이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게 된 것을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로마 백성과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호적하라고 영을 내린 것 때문으로 말합니다.

 

 

당시 갈릴리 나사렛에 있던 요셉도 아구스도의 영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던 마리아와 함께 호적 하러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감으로써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고 말한 것처럼 누가는 예수님이 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구유에 뉘인 것으로 말함으로써 당시 요셉의 가족이 짐승의 우리에 기거하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마 2:11절의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는 내용을 보면 마태는 구유나 짐승의 우리는 말하지 않고 그냥 집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성경을 관심 있게 읽으시는 분들은 이처럼 상이한 내용에 대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은 서로 역사적 사실을 일치시킴으로써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에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증거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저자들 또한 자신들이 깨닫게 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증거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신자는 성경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사실인가 아닌가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고고학이나 역사학 등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의 역사적 배경을 안다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남겨두신 이유는 하나님이 택한 자기 백성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이 말씀을 거부하고 듣고도 깨닫지 못하게 함으로써 심판에 있게 하기 위함인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즉 성경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임을 확인하고 믿는 것이 우리의 생명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보이는 세계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세계에 집착할 이유는 없습니다. 보이는 세계를 믿고자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 확인을 통해서 성경의 내용이 사실임을 믿는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 것은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생명의 세계를 깨닫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역사적 사실 확인이나 과학적 증거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이 은총으로 주신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무조건 사실로 믿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 상이한 내용에 대해 신자가 어떤 입장으로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 베들레헴 탄생의 배경 ◉

 


누가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누가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본문을 기록하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의 관심은 예수님의 탄생이 역사적으로 사실이라는 것을 증거하려고 한다기보다는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호적을 하라는 아구스도 황제의 영으로 인해서 나사렛이 아닌 베들레헴에게 탄생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됩니다.

 

 

아구스도가 그 같은 영을 내린 것은 인구조사를 통해서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면 돈을 목적으로 한 아구스도로 인해서 나사렛에서 태어날 뻔 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일까요? 그렇게 되면 미가서의 말씀 성취는 아구스도에 의한 우연한 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 성취는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집니다. 따라서 아구스도가 내린 영은 말씀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보이는 세계 안에서 아구스도가 내린 영은 단지 로마 황제가 행한 역사에 속한 일일 뿐입니다. 세상은 누구도 그 일이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예수님이 베들레헴으로 옮겨가심으로서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 또한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말씀 성취를 위해서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게 하신 것만은 아닙니다. 베들레헴은 룻기에 등장하는 나오미와 보아스의 고향이기도 하려니와 보아스의 자손이며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인 다윗왕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동네로 일컬어지는 곳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을 예언하시고, 그곳에서 예수님이 탄생하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따라 오신 다윗 자손임을 증거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 세상의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 ◉

 


이처럼 우리가 역사라고 말하는 세상의 일 속에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보이는 일을 가지고 섣불리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말할 수 없으며, 우리의 삶에 대한 판단도 할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며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과연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세상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예수님께 속한 자와 세상에 속한 자로 구분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흘러간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세상의 모든 역사가 주관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보면 마치 가진 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가진 자들은 세상의 온갖 것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다가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곳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없는 자들에게 세상은 겨울의 찬바람처럼 매섭기만 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세상을 사는 것이 힘들기만 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보면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말하기가 싫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신자 된 우리에게 세상이 어떤 짐과 고통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그것은 생명이신 예수님께 속한 자와 세상에 속한 자를 구분하여 나누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을 흔드심으로써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 같은 자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드러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흔드신다고 해도 주를 바라보는 믿음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창 3:15절에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후 세상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으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함으로써 뱀, 즉 사탄에게 장악되어 살아가는 죄의 존재들에게 희망은 여자의 후손임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여자의 후손을 세상에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인간이 소망하고 바라볼 것은 여자의 후손이 오시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는 약속이 이루어짐으로써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생명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증거하는 예수님의 탄생기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증거합니다. 이 약속 안에서 신자는 더 이상 죽음에 갇힌 존재가 아닙니다.

 

 

세상이 가진 자들에게만 좋은 곳으로 생각된다면 세상을 예수님의 오심을 기준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가진 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면 모두가 사망에 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눈에 보인 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그 심령에 살아있는 신자라면 세상이 어떻게 흔들리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하는 것을 삶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마음에 둘 것입니다. 보이는 세상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실망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며 결국 마지막에 이루실 일이 무엇인가에 마음을 두면서 예수님을 아는 자로 살아가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둘 것입니다.

 


◉ 예수님의 탄생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 ◉

 


7절에 보면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시면서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나실 집 한 채 준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은 겨우 짐승의 우리며 구유였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여호와이레’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셨다’는 뜻인 ‘여호와이레’를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한 것을 준비해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 어떤 하나님을 생각할까요? 분명히 내가 원하는 것을 미리 준비해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준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위해 준비한 것은 짐승이 우리며 구유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육신의 편안함이 아니라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증거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짐승의 구유에 누이심으로 세상의 사람은 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높아짐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높아지는 것에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아짐에 생명이 있음을 깨닫고 낮은 자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좇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의 탄생에 구유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뤄 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자기만 바라보는 인간의 욕망에 의한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마지막까지 예수님께 붙들어 놓기 위해 일하십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라는 고백과 함께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애통이 있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 세상의 모든 일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여호와이레이신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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