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8.10.06 14:36

(73강)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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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설교>

예수님은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5:39절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5:46절에서는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고도 말씀합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이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으며,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경하는 모세가 기록한 내용, 즉 모세오경도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예수를 말하고 예수께로 인도하기 위한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 성경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율법에 등장하는 내용도 하나 같이 예수님을 증언하고 예수께로 인도하기 위한 이유와 목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안식일, 할례, 십일조, 그 외에 실천해야 할 규례로 알고 있는 모든 내용들로 인해서 예수님이 증거 되고 증언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자기 신앙을 과시하고 보여주기 위한 방법과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대사회였고 지금의 기독교입니다.

 

 

무엇을 하든 그것으로 나는 이만큼 하는 신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언한다는 성경의 존재 원칙을 무시하고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소위 주일성수와 십일조,. 기도, 성경 읽기, 봉사 헌신 등등의 모든 것이라는 점에 대해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도 인간의 영광과 연결되어 있고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 역시 인간의 영광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상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문제가 자기 신앙을 과시하고 자랑하고자 하는 자기 영광과 연결되어 드러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조차 실천을 통해 자기 신앙을 자랑하거나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용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로 드러나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라고 강조하는 것이 지금의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경건하고 정당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 것을 가르치는데 그러한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주장이 옳다면 유대주의자들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 자들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삶이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기독교가 유대주의자들의 신앙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습니다. 그로 인해 신앙이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에서 벗어나 인간이 중심이 되고 인간의 영광을 위한 길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행동과 실천을 앞세워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는 실상입니다.

 

 

우상 제물의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중요할까요? 우상에 대한 지식이 있으니 거리낌 없이 먹는 것입니까? 아니면 기독교의 전통을 따라 먹지 않는 것입니까? 이러한 생각이 곧 복음의 의미와 성령의 일하심은 사라지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옳은 행동을 함으로써 자기의 옳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 남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옳은 행동이 자기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12장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지를 묻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12:11-12)라고 답하시고 한쪽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십니다.

 

 

유대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안식일 규례를 어기지 않고 지키는 것이 자기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것이 곧 자기에게 영광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유익, 즉 손 마른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자기 유익이 먼저였을 뿐입니다. 이러한 유대주의적 발상이 고린도 교회의 우상 제물 문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것입니다.

 

 

유대주의적 발상은 우리에게서도 드러납니다. 모든 일들이 나의 이름과 자랑과 영광으로 드러나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바울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우리 본성에는 맞지 않는 아주 생소한 내용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만한 착한 일을 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해서 세상으로부터 믿는 사람답다’‘교회답다라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일까요? 착한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의 착한 행동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영광 되는 특정한 행동은 애당초 없습니다. 이것부터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신자의 삶은 유대주의자의 실천적인 삶,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의 착함과 뒤섞여 모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되는 행동이 없다면 우리의 어떤 실천과 행함도 하나님께 영광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말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것이 나의 영광으로 돌아와 내가 높여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고 나의 영광은 전적으로 차단될 수밖에 없는 해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의도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영광은 하나님께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인간이 존재하기 전에도 하나님은 영광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인간이 창조되어 존재한 후부터 인간에 의해 영광을 받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닌 것입니다. 때문에 이미 영광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우리가 교회에서 듣고 배운 지식이나 상식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것입니다.

 

 

벧전 5:10절에 보면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신자의 영광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것을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그리스도 밖에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자기에게 영광이 되는 것을 찾고 그것으로 자기를 보여주고 높임 받고자 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믿음 밖에 있는 불신자일 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이고 존재하심이고 계시이며 하나님의 구원이기에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운명이고 인생의 전부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없는 나는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영광에서 단절된 죽음의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통속적인 말로 듣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가 중요하다는 말이 쉽게 들린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듣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가 중요하다는 것보다는 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확인될수록 나라는 존재는 더욱 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이러한 신자가 그리스도에게만 마음을 두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2:10-11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인생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유익, 나의 영광을 위해 살아왔는데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로 살았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원수 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아픔과 은혜가 되어 내 안에 있게 되면 나의 나 된 것은 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의 주인이 그리스도로 교체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다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내가 존재하며 따라서 구원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완성으로 된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자기 유익과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옛 본성의 행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은혜만을 의지하게 하는 죄의 자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죄를 짓지 않고 선을 실천해야 할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어기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율법을 지키고 실천하는 그들의 신앙이었고 그러한 신앙에 철저함으로써 자기에게 영광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유대주의적 발상과 방식은 누군가를 넘어지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32,33절에서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라고 말합니다.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은 다른 이를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되지 말라는 뜻인데 중요한 것은무엇이 거치는 자에 해당되는가?’입니다. 이것을 우상 제물의 문제에서 생각해 보면 우상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신앙이다라든가 우상 제물은 먹지 않는 것이 옳다라며 옳고 그름을 따져 다른 사람을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행동을 하게 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되는 행동을 막음으로써 신자답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거치는 자가 되는 것, 즉 걸림돌이 되는 것을 교회 일을 훼방하거나 목사의 말에 반대하는 것으로 말한다면 바울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오히려 교회 일에 적극 협조하고 목사의 말에는 무조건 순종하는 것을 좋은 신앙으로 가르치는 것이야 말로 거치는 자에 해당된다는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결국 현대 교회에서 거룩으로 위장한 채 거치는 자로 존재하는 무리의 중심에는 목사가 자리한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구원의 능력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사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둘 대상은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로 교제하며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 서로를 유익하게 할 관계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능력이 그리스도이며 구원이 그리스도께 있다면 비록 우리가 죄를 멀리하기 위해 힘을 쓰고 그로 인해 흠 없는 자로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구원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윤리적으로 사는 것 때문에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예수를 믿는 것 같지만 믿지 않는 불신의 길에 있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자로 살자에 걸려 넘어지는 결과가 됩니다. 선한 자로 살고 죄를 멀리하고 좋은 신앙인이 되자는 당연한 말들이 사실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로 자리하는 것입니다.

 

 

우상 제물을 먹는 것도 먹지 않는 것도 선이 되지 못합니다. 한 날을 거룩한 주일로 지키는 것도 날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날에 매이지 않는 것도 선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행위로 여기는 모든 것에 선은 없다는 뜻입니다. 선한 일은 예수 안에서만 가능한데 그것은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았기에 공로는 다만 주께 있음을 믿고 자신을 자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 선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신자자기를 위해 사는 자로 부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모든 삶에 하나님과 무관한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자기 영광을 위해 주어진 삶은 없습니다. 나의 신앙, 나의 선함을 위한 삶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음 받은 이유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겠다는 것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취지이기 때문에 예수 안에 부름 받은 것으로 이미 영광에 속한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리 자기 영광을 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자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 이루신 완성의 세계로 부름 받았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다 이루신 주의 은혜, 부족함이 없는 완성의 세계를 증언하라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부족한 것이 아니고 원하는 삶이 아니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영광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부름 받은 것으로 영광의 세계를 사는 것입니다.

 

 

  • 에끌레시아 2019.01.13 12:33
    은연중에 남을 비판하며 살아왔던 지난 날을 돌아보게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날마다 죄가운데 빠져 살아가는 우리가 어떠한 행함만 바라보며 남을 판단하며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 내 의대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한치앞도 알 수 없는 우리 인생 가운데 끝까지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해내시는 하나님의 열심만 사모하며 살아가는 내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은혜받고 돌아갑니다. 한 주동안 살아감에 늘 힘이 되시는 주님만 의지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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