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2010.09.20 22:30

(15강) 주의 날

조회 수 465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살전 5:1-11http://onlycross.net/videos/1The/1the-05011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설교>

성경에는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기사와 함께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는 재림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늘로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종말론적인 삶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이 신자의 삶에 계속 이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오심을 믿고 기다린다고 하면서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것은 종말론적인 삶이 아니란 것입니다. 또한 이들에게 재림은 관념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셨을 때 세상에서 벌어질 일에 대해 마음을 두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세상에서 벌어질 일은 심판입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벌어질 참된 현실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밤에 속한 자들처럼 어둠에 취해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재림이 곧 세상의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연히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 오시는가?’에 집중되기도 합니다. 성경이 재림의 시기와 때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지 가능하면 그 시기와 때를 알고 싶은 마음을 덮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재림의 시기와 때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기와 때를 알면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요? 결국 그것은 재림의 때를 알지 못하는데, 그때까지 제멋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 이름을 올려놓고 제 멋대로 살다가 재림의 때가 되면 구원받을 수 있는 신앙으로 원위치 하겠다는 생각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재림이 있기 전까지는 세상을 평안하고 안전한 곳으로 바라보는 것이 됩니다. 즉 재림 전의 세상은 평안이 있고 안전하지만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부터 평안과 안전이 사라지고 심판의 환난이 시작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도로 시기와 때에 대해 관심을 두는 것은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인 삶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주 안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이지 주 밖에서 내 멋대로 살다가 예수님이 오실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주 안으로 들어오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주 안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의 의도와 생각에 따른 결과가 아닙니다. 주 밖에서 살던 사람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주 안에서 들어가서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삶은 평소의 삶이 재림을 의식하며 사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항상 세상을 보면서 세상에 취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무엇이 재림을 믿는 신자의 삶인가를 물으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하늘로 가신 예수님은 하늘로 가셨기에 지금 현재는 자신과 결별되어 있는 분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여전히 자신과 함께 하시는 분으로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신자에게 세상은 평안한 곳도 아니고 안전한 곳도 아닙니다. 심판에 의해 멸망을 받을 곳이기 때문에 세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는 것도 이 같은 종말론적인 삶, 재림 신앙을 배경으로 해서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재림을 자신의 생전에 경험할 수 있는 긴박한 일로 믿었습니다. 그러한 신자가 우리처럼 세상 것에 대해 강한 소유욕을 가질리는 없습니다. 재림이 이루어지면 세상의 모든 것은 심판을 받게 되고, 소유라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얼마든지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소유에 집착하고 내 것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잊고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삶만 생각하기 때문에 좀 더 평안하고 안전한 삶을 구축하기 위해 소유를 늘리려고 하는 것이고, 소유에 집착을 하기 때문에 내 것을 서로 통용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예수님을 나와 함께하시는 분으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와 함께하시는 분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소유를 믿는 것이고, 소유를 통해서 삶의 안정을 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기독교인의 행함을 근거로 자신을 신자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앙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수님 밖에서만 빙빙 돌다가 결국 예수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끝날 것입니다.

 

 

신랑을 기다렸던 열 처녀 가운데 다섯 처녀만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나머지 다섯은 들어가지 못했지만, 들어가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가 신랑을 기다리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같이 기다렸지만 미련한 처녀는 기름을 예비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빨리 신랑을 맞이하고 자기의 일을 하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혼인잔치에 들어간 다섯 처녀에게 자신들을 위한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것만이 자기들의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더 예비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름을 예비한 처녀들에게는 신랑이 언제 오든 당황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 오시든 맞이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4-6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신자가 깨어 정신을 차려 사는 것이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않은 빛의 아들로 사는 것이고, 깨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잊지 않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밤에 속한 자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허황된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다닌다면 재림은 거부하지 않고 인정하겠지만, 그들 역시 재림을 먼 훗날의 일로 밀쳐놓고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을 세상에서의 자신의 일로 여긴다면 그 또한 밤에 속한 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7,8절을 보면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고 말합니다. 호심경이나 투구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전쟁장비입니다.

 

 

재림을 잊고 세상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세상이 힘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돈과 권력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한 길로만 나아갑니다.

 

 

하지만 재림을 믿는 신자는 세상의 것이 결코 힘이 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돈이나 권력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줄 힘은 될지 몰라도, 재림이 있고 심판이 있게 되면 그 모든 것은 안개처럼 사라질 것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알고 삽니다.

 

 

그래서 힘을 가지기 위한 자기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오실 예수님을 증거하고 전하기 위한 도구로 여길 뿐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의 현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고, 장차 이루어질 것까지 아는 자의 삶이기 때문에 지혜라고 하고,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이고, 정신 차려 깨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종말론적 의식입니다. 그리고 종말론적 의식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을 왜 헛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심판의 때에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능력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것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음으로 주만 바라보면서 구원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그것이 주 안에서 안전하고 평안함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신자로 부르신 것이 세상의 편안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라는 착각은 버리십시오. 9절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기위해서 부르시고 세상에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마치 세상에 힘 되는 것이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구원한다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정신 차려 깨어서 주의 날을 생각하며 그 날에 구원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세상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게 됩니다. 이것이 주의 날을 잊지 않은 신자의 종말론적인 삶입니다.




List of Articles
날짜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2010.01.01 공지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성경강해(이전 설교) 은석교회 19793
2014.02.23 351 에베소서 (3강) 신령한 복 신윤식 4204
2014.02.16 350 에베소서 (2강) 은혜와 평강 신윤식 4726
2014.02.09 349 에베소서 (1강) 사도된 바울 신윤식 4949
2011.01.09 348 빌레몬서 (3강) 화해의 길 신윤식 4806
2011.01.02 347 빌레몬서 (2강) 믿음의 교제 신윤식 4725
2010.12.26 346 빌레몬서 (1강) 그리스도로부터 신윤식 4735
2010.12.19 345 데살로니가후서 (8강) 떠나라 신윤식 4699
2010.12.12 344 데살로니가후서 (7강) 미쁘신 주 신윤식 4648
2010.12.05 343 데살로니가후서 (6강) 전통을 지키라 신윤식 4797
2010.11.28 342 데살로니가후서 (5강) 거짓 것을 믿음 신윤식 4876
2010.11.22 341 데살로니가후서 (4강) 불법의 사람 신윤식 4989
2010.11.15 340 데살로니가후서 (3강) 강림과 영광 신윤식 4735
2010.11.08 339 데살로니가후서 (2강) 하나님의 공의 신윤식 4905
2010.11.01 338 데살로니가후서 (1강) 사도의 자랑 신윤식 4475
2010.10.25 337 데살로니가전서 (19강) 사도의 기원 신윤식 4919
2010.10.18 336 데살로니가전서 (18강) 하나님의 뜻 신윤식 5077
2010.10.11 335 데살로니가전서 (17강) 하나님의 뜻 신윤식 5161
2010.09.27 334 데살로니가전서 (16강) 신자다움 신윤식 4699
2010.09.20 » 데살로니가전서 (15강) 주의 날 신윤식 4656
2010.09.13 332 데살로니가전서 (14강) 예수 안에서 자는 자 신윤식 5529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26 Next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