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010.11.22 21:07

(4강) 불법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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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 2:1-7http://onlycross.net/videos/2the/2the-0201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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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설교>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던 어떤 문제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 문제가 어떤 것인가는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강림의 문제로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재림과 연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사상을 접함으로 인해서 마음이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재림을 중심으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입니다.

 

 

2절을 보면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재림이 이루어졌다는 말이 됩니다. 즉 예수가 재림했고, 내가 곧 재림한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말한다고 하기도 하고, 사도에게 들었다고 하기도 하고, 사도의 편지를 받았다는 말로써 자신들의 말에 신빙성을 더하고자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을 전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신비감을 더하고, 군중들로 하여금 의심하지 않고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이용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옷차림을 특이하게 하기도 하고 말의 억양을 바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도는 그러한 말에 미혹되지도 속지도 말라고 합니다.

 

 

3절의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을 보면 사도는 그 날, 즉 재림이 이르는 징조로써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일이 있기 전에 그 날은 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배교는 종교를 바꾼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독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실상은 하나님을 배반한 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배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교가 지금은 없습니까? 지금만이 아니라 배교는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입니다. 불법의 사람 역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부터 세상에 존재했습니다. 불법의 사람은 단지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불법의 사람이 그런 뜻이라면 주의 날이 이르지 않은 지금은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전혀 맞지 않습니다.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은 악한 세력을 뜻합니다. 즉 사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 역시 분명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이 사탄이 하와에게 접근한 결과가 아닙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 때부터 이미 세상에 존재했던 것이 불법의 사람인데, 그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불법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이 역시 불법의 세력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지금의 현실과 모순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타났다’는 말을 존재의 의미가 아니라 드러남의 의미로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법의 사람은 창조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세상에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불법의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하와도 자신에게 접근하는 존재가 악한 영인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불법의 사람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은 분명 사탄이 장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세상은 그러한 현실을 알지 못합니다. 사탄에게 장악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누구에게 장악되고 지배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생각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여길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탄이 자신을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법을 행하면서도 불법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또한 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배교한 자로 살고 있고,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행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불법을 행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척하는 것임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행하는 자신들을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겼지만 예수님에게는 사탄의 자식으로 보였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실상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실상을 낱낱이 드러내신 예수님께 분노하여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며 의로운 행위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불법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자신을 감추고 있기에 발생하는 현상들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부르지만 불법의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멸망의 아들에게 속고 있으면서도 속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 행위를 신앙의 근거로 삼고 행위에 의의 의미를 두면서 예수께 나오는 것이 곧 불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불법은커녕 참된 신앙으로 인정됩니다.

 

 

믿음을 도구 삼아 세상의 복을 얻고자 하는 것이 불법의 사람에게 장악되어 있는 사고방식임을 알지 못합니다. 세상에 목적을 두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곧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배신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 열심을 도구 삼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불법의 사람으로 인한 사고방식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불법의 사람이 아직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법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기 전에 그 날은 이르지 않습니다. 그 날이 이르면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합니다. 심판의 근거는 불법과 진리입니다. 진리에 순종한 사람은 생명으로, 불법에 순종한 사람은 사망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불법이었는지가 먼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그 날은 이르지 않는다는 것이 사도의 말입니다.

 

 

4절을 보면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고 말합니다.

 

 

불법의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것에 대항하여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이 신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세상이 사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대항하는 불법의 사람과 동일합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것이 피조물의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주인이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 활동하는 증거고, 불법의 사람에게 장악된 현실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불법이며 멸망에 해당되는 악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드러내실 때가 있습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을 하고 있지만, 세상으로 하여금 무엇이 불법인가를 알지 못하도록 막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세상은 자신의 본성에 의해 불법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자기 백성과 백성이 아닌 자를 구분하십니다. 백성에게는 진리를 알게 하시고 무엇이 불법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모든 희망을 두고 살게 합니다.

 

 

우리에게 위로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불법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거나 미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불법은 반드시 드러낼 때가 있고 오직 진리에 순종한 사람만이 생명에 들어가게 되는 그 날이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는 ‘언제’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리 안에 있다면 ‘언제’는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날이 언제 이루어지든 진리 안에 사는 것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날마다 진리를 소망하고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관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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