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018.11.09 13:39

(78강) 기다릴 뿐이라

조회 수 220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욥 35:9-16http://onlycross.net/videos/job/job-350916.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9.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10.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1.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2.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14.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15.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설교>

욥을 향한 엘리후의 말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의 말처럼 들립니다. 그만큼 논리적으로 옳고 신앙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점에서 욥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라고 말한다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의롭다고 주장하는 욥이 더 교만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하면 욥에 대한 엘리후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의 죄에 대한 분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욥기는 그렇게 단순하고 간단하게 이해될 수 있는 성경이 아닙니다.

 

 

9,10절에 보면 엘리후가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라고 말합니다.

 

 

재앙으로 인해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호소하지 않는 욥을 빗대어 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에 대한 우리 이해를 기준하면 엘리후의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신자라면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신앙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자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며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그 뜻이 인간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뜻과 계획에 의해서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1:11-12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모든 일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된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자발적 의사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뜻은 한순간도 자기사랑에서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는 자신을 경험하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자기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엘리후의 말은 인간의 신앙에 초점을 둔 것일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욥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앙의 이유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이 엘리후에게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23:2-3절에 보면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23:8-9절에서는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라고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의 억울함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욥의 한탄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에게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 역시 연약한 신앙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만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욥처럼 자기 문제로 인한 답답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은 신자라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대개의 신자들이 자기 문제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며 도움을 구하는 것은 막연한 기대감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찾고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고 해서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엘리후의 말에는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교회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 삶이 어렵고 힘들 때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는 분이기에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듣고 응답하신다는 다분히 희망적인 말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로 합당한 생각인지부터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욥기는 우리는 이러한 생각으로 끌어가기에 충분한 내용의 성경입니다.

 

 

왜냐하면 욥기는 복을 받아 누리기에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던 한 인간의 실패와 몰락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환경의 회복 역시 조건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욥의 상황을 인간이 갖추어야 할 신앙의 조건과 연결하여 해석하면서 욥을 비난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 신앙이 아닌 종교로 흘러갈 수 있는 위험성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욥기가 주는 유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13절을 보면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엘리후의 이 말 역시 우리가 현대 교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엘리후는 헛된 것을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은 부르짖음으로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악인이 교만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것은 헛된 일일 뿐이며 하나님은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돌아보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 역시 논리적으로는 잘못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만으로 말미암은 악인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시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15:8절에서도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는 말을 합니다.

 

 

엘리후는 자신을 의롭다 하는 욥을 악인의 교만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욥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해도 볼 수도 만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욥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돌아보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의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깨끗해야 하기에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의 잘못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자리하고 있는 죄 문제를 간과하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회개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만 해결됩니다. 그것도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에 의해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있는 죄를 보는 신자라면 자신을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아 할 자로 보게 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자신을 보게 되면 살려 주십시오가 아니라 왜 살게 하십니까?’라는 의문으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내용이라고 한다면 죄에 대한 바른 시각이 있을 때 드러나는 신앙은 기존의 기독교 신앙과는 전혀 다른 생소하고 낯선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후가 자신을 의롭다 하는 욥을 악인의 교만으로 여긴다면, 그에게 의로움은 자신을 의로운 자로 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이 의롭지 않다는 것은 엘리후에게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엘리후는 욥의 악함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신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로 나오는가를 생각했어야 합니다. 잠언서의 말대로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정직한 것은 눅 18장에 등장하는 세리처럼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볼 수도 없는 자신의 부끄러움과 불쌍함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면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라고 말합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욥의 말을 들어 보면 욥이 하나님을 기다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엘리후의 말대로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말을 했다면 그 의미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한 기다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다림은 헛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간이 납득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을 시인하도록 일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에 인간의 무가치함과 불쌍함을 알도록 일하십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는 일의 성취에 대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Chapter 78

 

You Must Wait For Him

 

By reason of the multitude of oppressions they make the oppressed to cry: they cry out by reason of the arm of the mighty.

But none saith, Where is God my maker, who giveth songs in the night;

Who teacheth us more than the beasts of the earth, and maketh us wiser than the fowls of heaven?

There they cry, but none giveth answer, because of the pride of evil men.

Surely God will not hear vanity, neither will the Almighty regard it.

Although thou sayest thou shalt not see him, yet judgment is before him; therefore trust thou in him.

But now, because it is not so, he hath visited in his anger; yet he knoweth it not in great extremity:

Therefore doth Job open his mouth in vain; he multiplieth words without knowledge. (Job 35:9-16 KJV)

 

(Sermon)

 

The word of Elihu for Job sounds like a prophet, logical and faithful, which Job ought to pay attention to. Job would rather sound like arrogant since he considers himself righteous. In this sense, Elihu’s fury toward Job is understandable because it is of Job’s sin. Yet, the Book of Job is not that simple to interpret.

 

In Verses 9 and 10, he says, “By reason of the multitude of oppressions they make the oppressed to cry: they cry out by reason of the arm of the mighty. But none saith, Where is God my maker, who giveth songs in the night.”

 

It could be seen that Job isn’t crying to God for help although he is suffering from the afflictions. In our common sense, Elihu is not wrong to say that because we think believers should ask God in predicament by faith.

 

Even though it is right that believers are to seek God for help in prayer by faith, they ought to make sure what the purpose of the creation of God is: for God or for men.

 

According to Ephesians 1:11-12, the purpose of the work of God is the glory of God. There is none in the world of men but God. Thus, believers should put their wills on God’s.

 

However, it can never be done by our will voluntarily. Since our will is never off our self-centered love, we always find ourselves against the will of God. That’s why our prayer should be that the will of God is done unto us.

 

In other words, we ought to ask God for the glory of God, not for ours. In this aspect, we can find that the word of Elihu is man-centered’s. Anyway, Job would rather know the reason of the afflictions than ask God for help, which might seem unfaithful to Elihu.

 

In Job 23:2-4, Job says, “Even to day is my complaint bitter: my stroke is heavier than my groaning. Oh that I knew where I might find him! that I might come even to his seat!”

 

He also says in Job 23:8-9, “Behold, I go forward, but he is not there; and backward, but I cannot perceive him: On the left hand, where he doth work, but I cannot behold him: he hideth himself on the right hand, that I cannot see him.”

 

He thought he would solve his problem if he met God, but he couldn’t find Him anywhere, which makes him lament. It might be true that he sounds unfaithful when we think of the fact that God is alive and always with us. Yet, can we dare to say that we meet God? Can we meet God when we are in frustration like that of Job?

 

It is true that we must admit that we can’t meet or see God. Nevertheless, believers seek and pray to God for their problems, which is nothing but uttering their wish lists out of luck. From this point of view, it might be wrong to say that Job is unfaithful because he didn’t ask God for help in his difficulties. In this sense, we can learn that there is a fault in Elihu’s words.

 

We can often hear preachers say to pray and seek God when we have hardships. They make themselves sound hopeful, saying God is so sincere that He answers the prayer of His children, not ignoring them.

 

Yet, we need to ponder if such understanding is of faith and suitable for creatures, by the will of God and plan. The Book of Job is good enough to make us think of such thoughts.

 

It presents us the failure of a seemingly perfect man in faith and the recovery, which also has nothing to do with his conditions. Nonetheless, the people around him interpret his situations connected to virtues of believers, ending up criticizing him. That’s why it is beneficial for us to read the Book of Job that we learn the danger of how our life of faith becomes a mere religion.

 

In Verses 12 and 13, it says, “There they cry, but none giveth answer, because of the pride of evil men. Surely God will not hear vanity, neither will the Almighty regard it.”

 

What Elihu said in the verses can also be heard in the modern Christianity time to time. He says vanity is of crying in pride. In other words, God would never hear nor take care of the cry of the evil in pride because it is all vain. It is logically correct because it is obvious that God hears not sinners in pride.

 

Even in Proverbs 15:8, it says, “The sacrifice of the wicked is an abomination to the LORD: but the prayer of the upright is his delight.”

 

Elihu defines Job as the evil because he considers himself righteous. He wanted to say that Job can’t see nor meet God because God wouldn’t hear nor take care of the evil. As I have spoken earlier, this is a common thought among christians in the modern Christianity. That’s why they say they have to cleanse themselves by repenting for their sins to be heard by God.

 

What Elihu is missing here is that he forgets the matter of sin, between God and man. The sin problem can’t be solved by man but by the blood of Jesus Christ. The sin doesn’t disappear but is covered by His blood.

 

Therefore, what believers are to be aware of is themselves who deserve the judgement of God when they see their sin in the relationship with God. Such awareness makes them say, “why would Thou save me, such sinner?”, not, “save me.” If it is the content of faith, faith, which is presented in the right understanding of sin, seems foreign, strange and different from our common sense of faith.

 

If Elihu sees Job as the evil because he considers himself righteous, Elihu’s idea of righteousness is that Job doesn’t see himself as the righteous. That is, Elihu is unrighteous to God as well. Thus, he should have thought of himself, knowing all men are evil before God, instead of Job’s unrighteousness. It is because God is pleased with the prayer of the righteous as the Book of Proverbs says and the righteous is the one like the publican in Luke 18 who knows he doesn’t even deserve to look up to heaven in the awareness of his shamefulness and pity before God.

 

In Verse 14, he says, “Although thou sayest thou shalt not see him, yet judgment is before him; therefore trust thou in him.”

 

In fact, as we have heard Job so far, we can’t say that Job has waited for God. Yet, if Job had waited for God as Elihu said, it would mean that Job waited for God to hear what he wanted to hear from God.

 

However such waiting is vain because it is not the point of God that He wants us to understand the work of God. God works to make His people confess His Son, which is the glory of God. That’s why He leads His people to the knowledge of their valuelessness and misery. Therefore, believers ought to wait for the fulfillment of the work of God, that is, knowing the love of God!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08 욥기 (92강) 욥의 결말 신윤식 2019.02.16 4686
607 욥기 (91강) 욥에게 가서 신윤식 2019.02.09 804
606 욥기 (90강) 욥의 회개 신윤식 2019.02.02 1671
605 욥기 (89강) 다 내 것이니라 1 신윤식 2019.01.26 15926
604 욥기 (88강) 그리하면 신윤식 2019.01.19 771
603 욥기 (87강) 욥의 대답 신윤식 2019.01.12 1048
602 욥기 (86강) 하나님의 자유 신윤식 2019.01.05 841
601 욥기 (85강) 들나귀의 자유 신윤식 2018.12.29 992
600 욥기 (84강) 네가 아느냐 신윤식 2018.12.22 968
599 욥기 (83강) 네가 신윤식 2018.12.15 2001
598 욥기 (82강) 여호와와 하나님 신윤식 2018.12.08 4906
597 욥기 (81강) 하나님의 명령 신윤식 2018.11.30 921
596 욥기 (80강) 엘리후의 하나님 신윤식 2018.11.24 858
595 욥기 (79강) 엘리후의 하나님 신윤식 2018.11.17 740
» 욥기 (78강) 기다릴 뿐이라 신윤식 2018.11.09 2205
593 욥기 (77강) 옳은 듯 옳지 않은 신윤식 2018.11.03 905
592 욥기 (76강) 엘리후의 요구 신윤식 2018.10.27 721
591 욥기 (75강) 전능자의 공의 신윤식 2018.10.20 831
590 욥기 (74강) 엘리후의 정의 신윤식 2018.10.13 1018
589 욥기 (73강) 중보자와 대속물 신윤식 2018.10.06 769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