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018.11.17 15:58

(79강) 엘리후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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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36:13-16http://onlycross.net/videos/job/job-361316.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3.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15.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16.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설교>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인간은 죽음의 존재이며 하나님은 생명, 즉 살아계시는 분임을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의 존재가 살아계신 생명이신 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AB를 위해서 한 일이 있다면 BA가 한 일로 인해 도움을 받았거나 유익이 된 것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인간의 어떤 일이 하나님께 도움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도움 받지도 않으시고 하나님께 도움이 될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해 한다는 것은 자기의 일을 정당화하기 위한 인간의 주장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한다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금을 한다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구제하고 선한 일을 한다는 모든 것이 인간의 주장일 뿐 실제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위한 일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명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하지만 결국 남기고자 하는 것은 자기 이름이고, 자신의 행함이며 자기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엘리후 또한 자신의 말을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하여 욥으로 하여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의도는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2-4)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친구는 동일하게 욥의 고난의 이유를 죄로 해석했습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의로운 자였다면 하나님이 재앙을 줄 리가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행위를 선악으로 구분하고 그에 합당한 보응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시각에서의 해석입니다.

 

 

엘리후는 엘리후 나름대로 욥의 고난을 해석합니다.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7,8)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의인이라 할지라도 환난으로 인한 고통에 매이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 엘리후의 시각입니다.

 

 

물론 이유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9,10)라고 말하는 것처럼 의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은 교만한 행위가 있기에 그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귀를 열어 하나님의 교훈을 듣게 하시고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한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에 대한 엘리후의 해석입니다.

 

 

욥의 고난에 대한 엘리후의 해석은 세 친구들에 비해서 좀 더 고상하고 성경적인 것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고난을 단지 죄 때문으로 몰아가는 것은 현실과도 어긋나며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행위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단편적이고도 유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의인이라 해도 교만할 수 있고, 하나님은 그를 가르치고 돌이키기 위해 고난을 주실 수 있다는 논리는 인간의 행함이 아닌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34:12)는 말로 욥의 고난이 하나님의 불의나 악을 행하시는 것이 아님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아마 엘리후는 그처럼 하나님에 대해 변호하는 듯한 자신의 말을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엘리후는 하나님을 인간의 변호를 필요로 하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증거를 하고 그 증거를 들은 인간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거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엘리후는 크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욥으로 하여금 의롭다고 말한 자신의 교만을 인정하게 하고 고난 또한 자신을 가르치고자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인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착각입니다.

 

 

엘리후가 등장하지 않았다 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욥이 계속해서 자기의 의를 주장한다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으로 존재하십니다. 인간이 악을 행하든 교만하든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하실 뿐입니다. 엘리후가 이것을 알았다면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말 또한 하나님께는 아무런 영향이 없음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그 말이 능력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돕는다거나 누군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극히 성경적이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복음을 내용으로 하는 말을 한다 해도 그 말을 하는 우리가 옳다고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말을 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말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돌이키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엘리후가 세 친구와 동일하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언급하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3,14절에서 엘리후는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엘리후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은 불의한 자를 살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욥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에 대해 분노를 쌓고 원망하면서도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이 곧 불의한 것이며, 하나님은 불의한 그가 비록 젊다고 해도 살려두지 않으신다는 말을 합니다.

 

 

엘리후가 이런 말을 하는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이 속히 자신의 불의함을 인정하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엘리후의 말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되고, 따라서 엘리후 역시 능력이 있는 자로 부각될 수 있는데 욥은 여전히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불의한 인간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말함으로써 욥을 돌이키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욥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간파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16절의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는 말을 보면 엘리후의 한계가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후 역시 인간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곤고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욥에게 적용하여 욥 또한 환난에서 넉넉한 곳으로 이끌어 내시고 그의 상에 기름진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 욥이 환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으로 말함으로써 자신의 불의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기를 촉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욥의 고난을 육신의 문제로만 보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욥도 세 친구도 엘리후도 하나님으로 인한 복을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의 복은 하나님이 욥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하신 것이지 욥이 누렸던 자식이나 재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모든 이유와 원인을 욥에게 주어진 것에서 찾았던 것이고, 인간들 또한 욥이 잃어버린 것들이 회복되는 것에 복의 의미를 두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몸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몸의 고난과 문제로 인해 당황하고 흔들리게 된다 해도 우리에게 생생히 살아있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자리한 그가 바로 신자입니다.

 

 

Chapter 79

 

Elihu’s God

 

But the hypocrites in heart heap up wrath: they cry not when he bindeth them.

They die in youth, and their life is among the unclean.

He delivereth the poor in his affliction, and openeth their ears in oppression.

Even so would he have removed thee out of the strait into a broad place, where there is no straitness; and that which should be set on thy table should be full of fatness. (Job 36:13-16 KJV)

 

(Sermon)

 

Is it possible for a man to do something for God? Think of the fact that men are dead beings and God is a living One, the life. What would a dead being be able to do for a living One? If ‘A’ did something for ‘B’, there should be something good for B done by A. In other words, if there were something a man did for God, God should have been benefited by that.

 

Yet, God wouldn’t receive any help from men and there is nothing benefiting God done by men. If so, ‘doing works for God’ is nothing but to justify what we do. Preaching the gospel, offering our offertory, helping and doing good for the needy to glorify God are all claims of men, not actually pleasing God.

 

Therefore, we have to know it is a mere claim of ours that we do something for God to justify what we do. We say we’re doing for God, but it is actually for expanding our own names and increasing our own values. In this aspect, we can find that Elihu as well is justifying his words under the name of ‘doing for God’ to win over Job.

 

Such intention of Elihu can easily be seen in Verses 2 to 4, “Suffer me a little, and I will shew thee that I have yet to speak on God's behalf. I will fetch my knowledge from afar, and will ascribe righteousness to my Maker. For truly my words shall not be false: he that is perfect in knowledge is with thee.”

 

Job’s three friends concluded the cause of the afflictions with Job’s sins, saying there would be no reason for God to give him such time if he had no sins. This is men’s interpretation of men’s works, dividing good and bad, which God pays back accordingly.

 

Elihu interprets Job’s afflictions in his own understanding. He says God gives hardships to even the righteous in Verses 7 and 8, “He withdraweth not his eyes from the righteous: but with kings are they on the throne; yea, he doth establish them for ever, and they are exalted. And if they be bound in fetters, and be holden in cords of affliction.”

 

Of course, there is a reason for him to say that. He says even the righteous have transgressions, so God lets them know it and return from iniquity in Verses 9 and 10, “Then he sheweth them their work, and their transgressions that they have exceeded. He openeth also their ear to discipline, and commandeth that they return from iniquity.”

 

He sounds more elegant and biblical than Job’s three friends. Interpreting the cause of afflictions with sins only may sound unrealistic and a little childish because it is only man’s point of view for God’s work. Compared to that, Elihu seems better because he focuses on the work of God and teaching, not the work of man.

 

That’s why he says God is not doing anything wicked in 34:12, “Yea, surely God will not do wickedly, neither will the Almighty pervert judgment.” He probably sees himself say something for God. If so, it is nothing but that he sees God who needs help and advocacy from man.

 

However, God doesn’t need such. It is not to glorify God nor treat God as He is that one testifies God and others admits God after hearing one. In this sense, Elihu has a big misunderstanding that he is doing for God that he is making Job admit the fact that he is in pride and God is teaching him of that in God’s omnipotent work.

 

Even if Elihu hadn’t appeared, God would be God and even if Job had persisted in his righteousness, God would be God. No matter what men do either doing evil or being proud, God is nothing but God, doing His work. If Elihu knew it, he would notice whatever he says wouldn’t affect God’s work.

 

It doesn’t mean we don’t need to say anything about God but whatever we say of God wouldn’t help God or change others.

 

Thus, we can’t be justified righteous with what we say, either biblical or testifying Christ. It is because God is the One, giving us the words to say, using us as a tool to call His people and converting them. In this sense, we can say although Elihu says the omnipotent God like Job’s three friends, he is ignorant of what the power of God is.

 

In Verses 13 and 14, he says, “But the hypocrites in heart heap up wrath: they cry not when he bindeth them. They die in youth, and their life is among the unclean.”

 

What he wanted to emphasize on is God wouldn’t let the unrighteous live, meaning that God would let one die in one’s youth as one piles up one’s wrath against God in affliction, not asking God for help like Job.

 

We can understand why Elihu is saying such. He wants to be acknowledged as a wise man among them by making Job admit his fallacy, but Job wouldn’t give up on his innocence. Thus, he is telling Job that God wouldn’t let the unrighteous survive, attempting to persuade Job. However, we find all Elihu is saying is from the ignorance that Job is in the relationship with God.

 

We can see his limitation in Verses 15 and 16, “He delivereth the poor in his affliction, and openeth their ears in oppression. Even so would he have removed thee out of the strait into a broad place, where there is no straitness; and that which should be set on thy table should be full of fatness.”

 

He is also in man-centered view for the interpretation of the work of God, ending up saying the poor are delivered from affliction and brought to the table of fatness, applying the work of God for Job. It is to urge Job to ask God for salvation by admitting his sins. He is viewing the matter of Job’s in fleshly way, solving it.

 

From such point of view, it is not wrong to say that no one among Job, his three friends and Elihu knows God’s blessings truly. The blessing of God for Job is that God is holding Job in the relationship with Him, not what he had or enjoyed. Yet, Satan as well as the men sought it from what is given to Job.

 

Here is what we mustn’t forget. Even though we are shaken by what is visible since we are fleshly beings, we must remember God is still holding us in the relationship with Him. Believers are the ones, having that in mind by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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