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018.12.29 15:53

(85강) 들나귀의 자유

조회 수 99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욥 39:5-12http://onlycross.net/videos/job/job-390512.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5.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7.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8.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9.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11.그것이 힘이 세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를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12.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설교>

우리가 매일 접하고 살아가는 자연세계는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독자적인 법칙에 의해서 변화를 반복하며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따라서 자연의 모든 움직임은 하나님이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을 움직이시는 분이 따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물론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인간 또한 자연 안에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간과합니다. 그래서 자연만물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간섭과 개입으로 존재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독자적인 존재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상대하고자 합니다. 욥처럼 나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이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연 만물에 해가 있고 달이 있고 별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할은 다르고 각기 다른 법칙에 의해 존재한다 해도 중요한 것은 독자적인 힘이 아니라 법칙을 세우신 분에 의해 움직이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자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일들이 수없이 발생합니다. 산 염소가 새끼를 치고 암사슴이 새끼를 낳는 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이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살아가는 가운데서도 산 염소는 아무런 지장 없이 새끼를 칠 것이고 암사슴 또한 새끼를 낳을 것입니다.

 

 

산 염소가 새끼를 낳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암사슴이 낳은 새끼가 다른 맹수에게 잡혀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라고 항변하지 않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짐승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왜 안되는 것입니까? 동일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연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나는 안됩니다.’라는 방식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자기를 위해서 독자적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5,6절에 보면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들을 들나귀의 집으로 삼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들나귀가 자유롭게 뛰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위한 자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득을 위해 이용할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들에 자유롭게 있는 들나귀를 보는 인간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들나귀를 길을 들여 가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들소도 길을 들여 자신을 위해 일할 가축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세상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마음대로 이용해도 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어리석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간섭하시는 자연 아래서 자연과 함께 살면서도 자연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21:10-11절에 보면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는 이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세상 현실과 지진과 기근 등의 자연 현상들이 보여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왜 문제를 주는가만 항변하기에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욥의 고난도 욥에게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비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을 정도로 철저한 신앙생활이 있었다 해도 욥은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 가운데서 살고 자연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을 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처럼 욥이 그동안 하나님과 자신에 대해 오해와 착각 가운데 있었다는 것이 고난으로 인해서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의 고난은 욥에게 인내를 가르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더욱 성숙하고 훌륭한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욥으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인가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난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함으로써 욥이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9-10절을 보면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들소를 보면 잡아다 외양간에 두고 이랑을 갈게 하고 써레를 끌게 하면서 자기를 위해 일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다시는 들나귀, 들소를 보면서 하나님이 자유하게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자연에서 정작 하나님은 보지 않는 인간의 악함입니다. 이 같은 악함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자기 백성을 용서의 은총 안에 있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나귀를 자유하게 하신 것처럼 자기 백성을 진리 안에 있게 하시고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신자를 길들여서 교회에 거하게 하고 교회의 필요에 맞게 이용하면서 교회를 위해 일하게 만들려고 한다면 그것은 심판 아래 있는 세상의 현실이 교회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신 진리 안에서 자유 하는 신자라면 자신을 길들이기 위해 지껄이는 소리들에 대해서는 비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하시고 부르시고 하나님을 위해 백성 되게 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신자 됨의 어느 한 부분에도 목사를 위하거나 교회를 위해 존재하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만 보는 인간이 교회를 위한 교인으로 길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고난이 있으면 죄 때문이라고 하면서 십일조를 하지 않거나 목사에게 반대하거나 헌신하지 않는 죄를 언급합니다. 이것이 죄를 도구로 하여 사람을 길들이려고 하는 것이며 세상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다르시는 현장으로 보지 않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들나귀가 자유롭게 다니는 것도, 들소가 사람에게 길들이지 않고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는 모든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보고 겪는 모든 자연의 일들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되어집니다. 그래서 자연에서 하나님의 진노도 볼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살게 한 대로 살지 않는 우리의 죄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을 주시면 고난 가운데서 살면 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우리에게서 저주와 심판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산 염소는 산 염소고, 들나귀는 들나귀고, 나는 나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왜곡된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이러한 왜곡된 사고방식으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한다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신자가 들에 자유롭게 다니는 들나귀, 모든 짐승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게 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도무지 신자로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은 어디계신가?’라고 묻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의 극치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고난이 없는 평안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지함을 깨닫게 하시고 죄인이라는 사실에 붙들려서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께만 희망을 두게 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이 믿음의 내용으로 채워진 그가 바로 성령이 함께 한 신자입니다.

 

 

우리는 평소 자연은 나의 삶에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산염소가 새끼를 낳는 것이나 들나귀가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 우리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모든 자연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 결코 인간을 위해서 인간 중심으로 역사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자연을 알면 나 중심으로 살고자 하는 죄를 보게 되고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를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Chapter 85

 

The Free Wild Donkey

 

Who hath sent out the wild ass free? or who hath loosed the bands of the wild ass?

Whose house I have made the wilderness, and the barren land his dwellings.

He scorneth the multitude of the city, neither regardeth he the crying of the driver.

The range of the mountains is his pasture, and he searcheth after every green thing.

Will the unicorn be willing to serve thee, or abide by thy crib?

Canst thou bind the unicorn with his band in the furrow? or will he harrow the valleys after thee?

Wilt thou trust him, because his strength is great? or wilt thou leave thy labour to him?

Wilt thou believe him, that he will bring home thy seed, and gather it into thy barn? (Job 39:5-12 KJV)

 

(Sermon)

 

The world of the nature, in which we are living, is kept and changed in repetition, which human can’t get involved in. Nevertheless, the nature doesn’t work by itself. There is God in the nature, by which we can see God is reigning all the movements. In other words, we should remember there is the One moving the nature.

 

Of course, christians admit this truth, believing God, the Creator, is ruling over the universe. Yet, we might forget that we are part of it. Thus, although we think the nature, including us, exists by God’s intervention, we would dare to deal with God independently. Job, saying, ‘God, why are you giving me such afflictions?’, represents all of us in such attitude.

 

In the nature, there are the sun, the moon, and many stars, but they exist neither for themselves nor by themselves. They may be in different functionality and principle, but the thing is that they are all by the One, who established all the rules, and testify the Creator, God.

 

Likewise, there are so many things going on in God’s control that we don’t know and we don’t even want to know. The birth of a wild goat and a doe is one of many. The animals give birth to their babies without any interruption while we are busy taking care of our own business.

 

The wild goat might die while giving a birth. The doe might be eaten by a beast. Yet, we don’t complain about it by saying, ‘God, why are you doing this to them?’ because it is none of our business and we think it is natural to them.

 

Then, why not to us? Thinking that we are also the creatures of God, one’s idea, ‘I don’t care about what happens to the nature, but bad things shouldn’t happen to me’, reveals that one would deny the government of God and be apart from God.

 

In Verses 5 and 6, it says, “Who hath sent out the wild ass free? or who hath loosed the bands of the wild ass? Whose house I have made the wilderness, and the barren land his dwellings.”

 

God made the wilderness the house of the wild ass, being free. Thus, their running freely is the will of God in His pleasure. Yet, human perspective toward the nature is different, which is for human advantages, not for God.

 

What would we think of when we see the free donkeys in the field? It is probably to tame them and make them domestic animals. We would domesticate the wild ox, plowing the land for us. We wouldn’t look at the nature for the one existing for God, but for our own sake. Thus, our foolishness may be that we can’t see the wrath and judgement of God through the nature even though we are living in it.

 

It is the reality of the world in Luke 21:10-11, “Then said he unto them, Nation shall rise against nation, and kingdom against kingdom: And great earthquakes shall be in divers places, and famines, and pestilences; and fearful sights and great signs shall there be from heaven.” All the natural phenomena show us that we, people in the world, are the problem itself. However, instead of seeing our problem, we are busy protesting against God, ‘why are you doing this to me?’

 

Therefore, Job’s affliction plays a role to tell us that there is a problem in Job. Although he was perfect in the life of faith, revering God, he was in his sin, not seeing the wrath and love of God as he was living in the nature. Likewise, his affliction digs out the fact that he had been in misunderstandings of God and himself.

 

Thus, the affliction given to Job is for neither his patience nor growth in faith, but to tell him of how ignorant he is. The work of the reason of God’s giving him the affliction brings him to the repentance.

 

In Verses 9 and 10, it says, “Will the unicorn be willing to serve thee, or abide by thy crib? Canst thou bind the unicorn with his band in the furrow? or will he harrow the valleys after thee?”

 

It means that we, human, have the mind that we would like to use the wild ox for our advantages, holding it to the furrow with a hardness and tilling the valleys behind us. We wouldn’t think God made them free in the wilderness. This is our evil nature that we wouldn’t see the work of God in where God is governing. Jesus Christ came to the world to die for such people like us for the forgiveness of God.

 

As God made the wild donkey free, He made His people free in the truth. This is the grace of God. Nonetheless, if preachers would tame christians for their name’s sake, the reality of the world is vividly revealed at churches. If one is appreciating the freedom given by God, one ought to laugh at the words of such taming for sure.

 

Believers are the ones, chosen by God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to be the people of God. In such status, there is nothing of their existence for preachers or visible churches. Sadly, men, self-centered, would make others for their name’s sake.

 

That’s why preachers would point out one’s sin such as less devotion or less offerings when one is in difficulties. This is the world to tame people by using their sin as a tool for their advantages, which is the evidence of the darkness of the world, not seeing the intervention of God.

 

Freely running donkey in the wilderness and oxen not tamed by men are all the will of God for Himself. What we experience in the nature is also the work done by God. Thus, we should perceive the wrath of God and see our sinful nature, living against God’s will. When God gives us affliction, we are to live in it but we wouldn’t want to, from which we had better deserve the curse and judgement of God. It is such good news that the Lord Jesus Christ came to the world for such sinners like us.

 

‘The wild goat is the wild goat, the wild ass is the wild ass, and I am I’ is nothing but the distorted thought toward the nature. What is it good that we live the life of faith in such distorted mind? If believers are the ones who realize the work of life through the nature, the ass and ox, we have to admit that we have never been the believers. It is our extreme ignorance and foolishness that we say, ‘where are you, God?’, as we are living in the world, where God is showing us His work.

 

Thus, we find that it is the love of God that we come to know the Lord, shedding His precious blood on the cross in the awareness of our foolishness, the sinful nature. Those whose mind is full of such truth can be called believers with the Holy Spirit.

 

We think we have nothing to do with the nature in our daily lives. How would it be related to us anyway? However, all the things in the nature were proclaiming to us of who God is, meaning the work of God is never meant to be for us. That’s why believers come to know the grace of God, forgiving our sin, self-centeredness, in the true perception of the natur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08 욥기 (92강) 욥의 결말 신윤식 2019.02.16 4686
607 욥기 (91강) 욥에게 가서 신윤식 2019.02.09 804
606 욥기 (90강) 욥의 회개 신윤식 2019.02.02 1671
605 욥기 (89강) 다 내 것이니라 1 신윤식 2019.01.26 15926
604 욥기 (88강) 그리하면 신윤식 2019.01.19 771
603 욥기 (87강) 욥의 대답 신윤식 2019.01.12 1048
602 욥기 (86강) 하나님의 자유 신윤식 2019.01.05 841
» 욥기 (85강) 들나귀의 자유 신윤식 2018.12.29 992
600 욥기 (84강) 네가 아느냐 신윤식 2018.12.22 968
599 욥기 (83강) 네가 신윤식 2018.12.15 2001
598 욥기 (82강) 여호와와 하나님 신윤식 2018.12.08 4905
597 욥기 (81강) 하나님의 명령 신윤식 2018.11.30 921
596 욥기 (80강) 엘리후의 하나님 신윤식 2018.11.24 858
595 욥기 (79강) 엘리후의 하나님 신윤식 2018.11.17 740
594 욥기 (78강) 기다릴 뿐이라 신윤식 2018.11.09 2205
593 욥기 (77강) 옳은 듯 옳지 않은 신윤식 2018.11.03 905
592 욥기 (76강) 엘리후의 요구 신윤식 2018.10.27 721
591 욥기 (75강) 전능자의 공의 신윤식 2018.10.20 831
590 욥기 (74강) 엘리후의 정의 신윤식 2018.10.13 1018
589 욥기 (73강) 중보자와 대속물 신윤식 2018.10.06 769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