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019.01.19 15:28

(88강) 그리하면

조회 수 156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욥 40:10-14http://onlycross.net/videos/job/job-401014.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

11.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12.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13.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둘지니라

14.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설교>

인간은 부족한 존재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여기에서 위험한 함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 함정에 빠져서 인간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함께 성경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함정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개선하여 채우면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성화입니다.

 

 

기독교가 가르치는 성화는 인간이 노력 여부에 따라서 그 성품이나 인격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인데 결정적인 문제는 사람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결국 죄 아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성화 되었다 해서 죄를 이기는 인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 되어도 저주 아래 있는 지옥 갈 존재일 뿐이라면 과연 성화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것은 로마서만 주의 깊게 봐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현실을 거부하고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 마음에 드는 현실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진짜 현실이 무시 되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을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고 영광과 영화를 입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우리 자신을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고 영광과 영화를 입은 자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것으로 자신에게 넘치는 노를 비울 수가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하나님은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둘지니라”(11-13)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노가 넘칠 때 그 노를 비우게 할 것은 없습니다. 인간성으로도 성품으로도 안됩니다. 사람의 인품이 교만한 자를 낮아지게 할 수 없고 악인을 짓밟을 힘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자신을 옳다고 하는 욥에게 욥의 옳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14절에서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너는 너의 의와 너의 옳음으로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낮출 수 있는가?’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면 너희 옳음으로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욥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욥이 자신을 옳다고 주장한다 해도 그 옳음은 자신에게 넘치는 노조차도 비울 수 없는 쓸모없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욥이 고난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고난을 받아야 할 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스스로를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나는 옳고 지금까지 죄를 범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왜 고난이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나님에 대해 할 말이 있게 된 것입니다.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알게 되면 죄에 대한 처벌에 대해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죄에 대한 당연한 처벌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게 되는 말이 있다면용서해주십시오’‘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는 탄원이 전부일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에게 죄 있음을 아는 자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욥은 죄를 모르는 자였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한 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떠난 자로 사는 일에 온 힘을 다했을 뿐입니다. 누구든 이러한 신앙생활을 한 자신을 죄 있는 자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고난에 대해 할 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생활에도 옳다고 생각되는 것이 많습니다. 봉사, 헌신, 구제, 선교 등등 모든 것을 선하고 옳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실천에 대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왜곡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눈치 채지 못합니다. 자신의 행하는 일들을 보면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판단할 뿐입니다.

 

 

그런데 욥처럼 고난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 답을 욥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불평과 항변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했습니다’‘착하고 양심 바르게 살았습니다’‘남에게 나쁜 짓 한 것 없습니다는 것들이 하나님께 할 말 있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너의 신앙생활로, 착하고 양심 바르게 산 것으로 넘치는 노를 비울 수가 있느냐? 그럴 수 있다면 너의 신앙, 너의 착함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인정하겠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우리가 그 어떤 선행을 쌓는다 해도 그것으로 우리 안의 노조차 다스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우리의 현실인데 그런 인간이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내릴 결론은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착함과 의를 쌓은 인간이 된다 해도 구원될 수 없는 자로 나와야 합니다. 그럴 때 라는 말이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불의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욥이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42:3)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40:4절에서 욥은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천함을 보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고 능력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부족한 것을 개선하고 보충하여 좀 더 선한 존재로 나오기를 원하시거나 그런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천한 존재가 되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비천한 자리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봐야 할까요? 당연히 우리 자신의 비천함입니다. 신앙생활 잘하고 착하고 선하게 살았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칭찬과 인정받기에 충분한 조건이 되는 것들이지만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살아가면서 매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착하게 사십니까? 잘 하신 것입니다. 교회 일을 외면하지 않고 여러분이 하실 일이 있으면 하십니까? 그것도 잘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비천함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고 차별의 기준도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주어진 현실에 대해 항변할 자격이 없는 이유입니다.

 

 

여전히 여러분의 선함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착함과 옳음을 인정해 주기를 원합니까? 그런 마음이 있다면 다시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나는 나의 착함과 선함으로 노를 비울 수 있는가?’하나님은 그리하면 여러분의 착함과 선함을 구원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시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현실이 되기에 가능하다면 착함과 선함을 위해 힘쓰시고 자랑하셔도 됩니다. 자랑할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능력이 아님을 아신다면 예수님의 선하심과 의만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하시고 죽으신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일 뿐이고 인간은 실패자라는 것을 실감하십시오. 실패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보십시오.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하고,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불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불의함에 의한 악한 생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가를 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는데 그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일에 관여하시고 간섭하심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계신다면 세상에 되어지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거나 억울하다고 할 것은 없습니다.

 

 

어떤 일이건 무조건 맹목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시고 관여하시는 것이 세상일이라면 신자인 우리는 어떤 일에서든 하나님이 부르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현실을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Chapter 88

 

If So

 

Deck thyself now with majesty and excellency; and array thyself with glory and beauty.

Cast abroad the rage of thy wrath: and behold every one that is proud, and abase him.

Look on every one that is proud, and bring him low; and tread down the wicked in their place.

Hide them in the dust together; and bind their faces in secret.

Then will I also confess unto thee that thine own right hand can save thee. (Job 40:10-14 KJV)

 

(Sermon)

 

Many people say humans are scarce beings, but there is a pitfall in the idea, resulting in the reality that many are trapped there, away from the Bible with the misjudgment of human beings. The trap is that you can become a more mature human by filling in the missing parts and filling them with improvements. It is sanctification that people in this trap claim.

 

One of the crucial problems that the modern Christianity teaches is that there can be a positive change in personality depending on the effort of the person, but no matter how much one has changed it can’t be changed that one is still being under sin. If it is just being a hell under the curse, what is the meaning of sanctification?

 

It is the human reality that we can easily find if we pay attention to the Book of Romans. Yet, the real reality that the Bible says is ignored because we reject the reality of the Bible and try to make what the Bible says our favorite reality.

 

In Verse 10, it says, “Deck thyself now with majesty and excellency; and array thyself with glory and beauty.”

 

I’m not sure exactly how to adorn with majesty and excellency and clothe with glory and beauty, but let's say that we have mobilized all of the world to dress ourselves in dignity and honor, and in glory and honor. Could it be that we could empty the wrath we are in?

 

God says regarding this in Verse 11 to 13, “Unleash the fury of your wrath, look at every proud man and bring him low,look at every proud man and humble him, crush the wicked where they stand.Bury them all in the dust together; shroud their faces in the grave.”

 

There is nothing that will make us empty the wrath when it overflows. It is neither by personality nor character. The person’s character can not bring down the proud, nor can it tread on the wicked. What God is saying is that He asks Job, who thinks himself right, what he can do with his own righteousness.

 

In Verse 14, it says, “Then I myself will admit to you that your own right hand can save you.”

 

In other words, ‘if you can empty your wrath and bring a proud man down, I will admit that you are righteous’, implying that no matter how righteous Job is, he can’t even control his own fury, which is absolutely useless.

 

Why Job couldn’t understand the afflictions was that he thought he had sinned that much, meaning he thought he was righteous. He had something to say against God like ‘why do I have to deserve it since I have been doing my best serving God?’

 

If one is aware that one has sinned, one comes to be speechless of the punishment because one knows God is just. If one has something to say, it will be, ‘forgive me’ or ‘have mercy on me.’ It may be all that one could say.

 

In this sense, Job is the one who doesn’t know what sin is. All that he was doing before the afflictions was doing his best to revere God and eschew evil while told perfect and righteous by people. There would be no one who would see oneself a sinner in such life, causing Job to have something to say against God.

 

Likewise, there are many things we think are righteous in the life of faith such as helping others, devotion, charity, missionary and so forth. We believe doing such acts may please God. Even though it is a distorted view of God, we can’t recognize it, assuming we are fine while looking at ourselves.

 

What if we, then, received what Job received? The answer can be found in Job. That is all complaints and protest against God. Such thoughts, ‘I have lived for God’, ‘I have done my best being good in my conscience’, ‘I haven’t done anything wrong to others’ make us have something to say against God.

 

To such people like us, God is asking, ‘if so, can you empty your own wrath?’, and saying, ‘if you can, I will admit that your goodness can save yourself.’ What would you answer to God? I am sure no one would say anything to God.

 

Thus, our conclusion is to come to God as the one who God views we are. That is the one that can’t be saved despite all goodness and righteousness. Only then, can we realize our saying, ‘why me?’ to God is our foolishness and ignorance from our unrighteousness.

 

When Job comes to realize this, he says in 42:3, “Who is he that hideth counsel without knowledge? therefore have I uttered that I understood not; things too wonderful for me, which I knew not.”

 

In 40:4, he said, “Behold, I am vile; what shall I answer thee? I will lay mine hand upon my mouth.”

 

It is the power of God that makes him perceive his lowliness and confess who he is. In other words, God makes us neither make up nor improve ourselves.

 

We hate to be a lowly being. That is why Jesus Christ came to a low place. Then what should we see from Him? Of course, it is our own lowliness. It is pointless to live well, doing good in the life of faith. Although it is enough for people to praise and acknowledge us, but all we are and do come short of the glory of God. We should be able to check this every day as we live.

 

Do you all live well? It is good. Do you have anything to do without ignoring the work of the church? That is also good. However, it does not change our lowliness at all. It is not something that we can be proud of ourselves or makes us different from others either. This is why we can’t complain against God for what is given to us.

 

Do you still want to claim your goodness? Do you want God to recognize your goodness and right? If you have such a mind, ask yourself again. 'Can I empty my anger by my goodness and righteousness?' God says that He will recognize your goodness and righteousness as having the power of salvation.

 

 

If this is possible for you to become a reality, you can brag and boast for goodness and righteousness because it is worth it. Yet, if you know that it is not the power of salvation, forget all but the goodness and righteousness of Jesus Christ.

 

Realize that Jesus Christ, who said, “it is finished”, is the only power of salvation and man is a failure. Try to look at the world at the seat of loser. We will find all things that can not be understood, frustrated, and unjust are not of God's unrighteousness, but of our evil thoughts. God is the One who makes us realize how ignorant we are.

 

It is not faith to acknowledge the existence of God. It is not faith either if one acknowledges God's existence but doesn’t acknowledge God’s involvement and intervention of all things in the world. By faith, there is nothing for one to say done unjustly or incomprehensibly because one knows all is of the work of God.

 

 

It does not mean that any thing is blindly accepted as God's work. If God is there and the work and involvement of God is the work of the world, then we must not forget that we, as believers, are in the relationship with God as the people of God because it is the true reality. Living such reality is faith!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08 욥기 (92강) 욥의 결말 신윤식 2019.02.16 5391
607 욥기 (91강) 욥에게 가서 신윤식 2019.02.09 1466
606 욥기 (90강) 욥의 회개 신윤식 2019.02.02 2230
605 욥기 (89강) 다 내 것이니라 1 신윤식 2019.01.26 16897
» 욥기 (88강) 그리하면 신윤식 2019.01.19 1568
603 욥기 (87강) 욥의 대답 신윤식 2019.01.12 1748
602 욥기 (86강) 하나님의 자유 신윤식 2019.01.05 1962
601 욥기 (85강) 들나귀의 자유 신윤식 2018.12.29 1785
600 욥기 (84강) 네가 아느냐 신윤식 2018.12.22 1585
599 욥기 (83강) 네가 신윤식 2018.12.15 2695
598 욥기 (82강) 여호와와 하나님 신윤식 2018.12.08 5526
597 욥기 (81강) 하나님의 명령 신윤식 2018.11.30 1540
596 욥기 (80강) 엘리후의 하나님 신윤식 2018.11.24 1466
595 욥기 (79강) 엘리후의 하나님 신윤식 2018.11.17 1467
594 욥기 (78강) 기다릴 뿐이라 신윤식 2018.11.09 2912
593 욥기 (77강) 옳은 듯 옳지 않은 신윤식 2018.11.03 1613
592 욥기 (76강) 엘리후의 요구 신윤식 2018.10.27 1423
591 욥기 (75강) 전능자의 공의 신윤식 2018.10.20 1504
590 욥기 (74강) 엘리후의 정의 신윤식 2018.10.13 1648
589 욥기 (73강) 중보자와 대속물 신윤식 2018.10.06 826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