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019.02.09 15:46

(91강) 욥에게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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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42:7-9http://onlycross.net/videos/job/job-420709.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7.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8.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설교>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만 해결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셨음을 믿는 신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이 내가 아닌 예수님을 위해 배치해 놓으신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에 대해 사람들은 늘 반발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지금껏 하나님을 모든 주변 환경과 일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믿음이 아닌 세상 방식으로 신을 찾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부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예수님을 위한 인생, 예수님을 위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에 반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실상, 정체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내가 누구이든 신앙생활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모르고서는 예수를 알 수 없고, 예수를 알지 못한 신앙생활은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생략하고 건너 뛴 채 신앙생활만 잘하자라고 합니다. 결국 이들에게 예수님이 왜 오셔야 했는가?’의 문제는 관심 밖으로 팽개쳐질 뿐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욥기였습니다.

 

 

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욥과 친구들이 욥의 고난을 중심으로 하나님에 대해 논쟁했는데 하나님은 친구들의 말이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하다고 합니다. 욥의 말이 옳다는 것인데 이것은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나왔던 욥의 모든 말이 옳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친구들은 고난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합니다. 고난 없는 자신들을 고난 받는 욥과 비교해서 복 받은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욥이 어떻게 하면 고난 없는 상태로 회복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고 말할 뿐입니다.

 

 

이들은 욥의 고난을 죄에 대한 결과로 해석했고 바른 신앙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행위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에 대한 시각인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이해에서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은 비록 문자적으로는 그럴듯하다 해도 그 의미들은 옳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욥은 고난 받는 자로 하나님을 말합니다. 고난 받기 전부터 이미 죄에서 떠난 삶을 살았던 욥으로서는 고난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해 주기를 갈망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 받는 자에게서만 엿볼 수 있는 흔적입니다.

 

 

고난이 없는 친구들은 하나님을 만날 이유도 갈망도 없었습니다. 고난 없는 현재처럼 편하게 살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도 고난 받기 전에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갈망이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도 만나서 말씀을 들어야 할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고난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해 하나님을 만나기를 호소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하심에 의한 것입니다. 따라서 욥의 말이 옳다는 것은 그 말 자체가 옳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인간의 인간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옳다고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의 말이 옳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 욥이 말씀을 듣고 자신이 비천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으로 여실히 증거 됩니다. 하지만 욥이 옳은 것이 아니라 욥에게 고난이 있게 하심으로 비천한 존재인 인간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있음을 증거 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옳으실 뿐입니다. 즉 욥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붙들린 자로서 옳다고 인정되는 것입니다.

 

 

13장에 보면 바울은 하나님이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증언하셨다는 말을 합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우리아를 죽였던 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행위의 여부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조건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51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그대로 드러내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간섭에 의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의한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다윗을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내 마음에 맞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본질이 그대로 드러나는 방향으로 끌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질이 낱낱이 드러난 자리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현실에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욥이 이처럼 인간의 본질을 알게 되고 회개하는 자로서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1:21)라는 고백을 한다면 분명 그 의미는 달라질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이 주셨으니 가져 가셔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아예 가질 자격이 없는 자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을 우매한 자로 말씀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우매함을 그들에게 갚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으로 친구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내용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욥의 고난을 욥의 죄에 대한 결과로 여겼고 하나님은 욥의 죄를 욥에게 물으심으로써 고난을 주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9절을 보면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고 말씀합니다.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행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행했다 해도 그것이 의가 되어 그들의 구원 조건이 된 것이 아닙니다. 친구들은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고 기쁘게 받으시는 욥에게 존속 되서 하나님이 받으신 바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구원 방식입니다.

 

 

욥에로 가서 번제를 드리라 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욥은 의로 여기신다는 뜻이 됩니다. 욥이 의로운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비천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 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친구들이 욥에게 가서 번제를 드린다면 자신들을 욥보다 의로운 자로 여겼던 것이 어리석음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만난 욥이 입을 가리게 된 것처럼 욥에게로 간 친구들은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 받을 자는 욥이 아니라 자신들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 욥에게로 가서 번제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믿는 믿음의 의미를 말해줍니다.

 

 

우리가 십자가로 나아간다면 십자가에서 보게 되는 것은 자신의 죄와 죽음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믿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과는 전혀 상반된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와 죽음에서 우리의 어떤 행위로도 정당함은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로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욥기로 인해서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이나 의는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행함에 대해서도 자신의 선함과 의의 조건으로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나는 정당한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합니까?’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불만과 원망이 사라지지 않는 나 자신을 만날 뿐입니다. 그리고 확인하고 실감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Chapter 91

 

Go To Job

 

And it was so, that after the LORD had spoken these words unto Job, the LORD said to Eliphaz the Temanite, My wrath is kindled against thee, and against thy two friends: for ye have not spoken of me the thing that is right, as my servant Job hath.

Therefore take unto you now seven bullocks and seven rams, and go to my servant Job, and offer up for yourselves a burnt offering; and my servant Job shall pray for you: for him will I accept: lest I deal with you after your folly, in that ye have not spoken of me the thing which is right, like my servant Job.

So Eliphaz the Temanite and Bildad the Shuhite and Zophar the Naamathite went, and did according as the LORD commanded them: the LORD also accepted Job. (Job 42:7-9 KJV)

 

(Sermon)

 

We think it’s OK as long as the problem is solved in trouble. Yet, believers should think of something else in the knowledge of God’s involvement, which is that the world is not for us but the Lord Jesus, meaning that all things we experience in the world are the work God has planned for Him not us.

 

Our nature is always against such statement when hearing it because we believe in God as one who makes our environments and things better for us. Yet, we hate to acknowledge such belief is not of God but the way of the world, revealed in the mind that dislikes our life is for Jesus and the work of God for Him.

 

Nevertheless, we don’t want to think of who we are. It is our dominant thought that we don’t even need to know our identity, thinking we should just manage our life of faith well. Even though we can’t find Jesus Christ without knowing who we are and there is no life of faith without knowing Him, we tend to skip all of these and keep saying ‘good life of faith’, meaning we have no interest in why Christ had to come to the world. It is the Book of Job that shows us such problem of ours.

 

In Verse 7, it says, “And it was so, that after the LORD had spoken these words unto Job, the LORD said to Eliphaz the Temanite, My wrath is kindled against thee, and against thy two friends: for ye have not spoken of me the thing that is right, as my servant Job hath.”

 

Job and his friends argued about God, centering the afflictions. Yet, God says the words of the friends are not right as Job’s, meaning Job’s words are right, but it doesn’t mean all that he said is right.

 

His friends talked about God without affliction, so they were focusing on how Job can get out of the afflictions because they compared themselves with him, assuming they were blessed.

 

They concluded that Job was in the afflictions because of his sins, thinking God is punishing him to make him better. This is a man-centered understanding of God. Thus, although it may sound right, it is not.

 

On the contrary, Job spoke of God in the affliction. Since he had been living a godly life before the affliction, he couldn’t understand why he had to receive it. That’s why he badly wanted to hear from God for the reason. This is what we can see only from one who is in affliction.

 

His friends had neither desire nor reason to meet God because what they wanted was the peaceful life they were currently enjoying. Job was in the same condition as his friends before the affliction since he was fine in the life of faith, revering God and eschewing evil.

 

Here, we can learn that it is all done by the plan and will of God that Job came to resent and yearn to meet God due to the affliction. Thus, ‘Job’s words are right’ doesn’t mean the words themselves are right but his human nature revealed as God planned is right.

 

It is proven that he comes to repent in the realization of his lowliness when he meets and hears God. Yet, Job is not right but God, who gave Job the affliction and let Job testify all men, miserable, are living in the mercy of God, is right. In other words, Job is deemed right since he is being held by God for His work.

 

In Acts 13, Paul says God called David after His own heart. Since David took a wife of Uriah away from him and killed him, we can find that David was called such not because of what he did.

 

In Psalm 51, David confesses his sins and prays for God’s mercy. Keeping in mind that it is done by the intervention of God, ‘after God’s own heart’ is the result of the work of God. In other words, God made David fit for the heart of God.

 

What we can learn from such is that God leads us to the direction of revealing who we are. He opens our eyes to see who we are, who can’t live even a moment without Him at the seat of revelation of our sinful nature.

 

If Job had confessed 1:21, “"Naked I came from my mother's womb, and naked I will depart.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s taken away; may the name of the LORD be praised” in the know of himself, what he said would mean right because he would mean he knows he deserves nothing.

 

Yet, in 42:8, God says, “So now take seven bulls and seven rams and go to my servant Job and sacrifice a burnt offering for yourselves. My servant Job will pray for you, and I will accept his prayer and not deal with you according to your folly. You have not spoken of me what is right, as my servant Job has."

 

God says Job’s friends are foolish, but He says He won’t deal with their folly, revealing what they know of God and the life of faith is wrong. They thought Job’s affliction was the result of his sins, punished by God.

 

In Verse 9, it says, “So Eliphaz the Temanite, Bildad the Shuhite and Zophar the Naamathite did what the LORD told them; and the LORD accepted Job's prayer.”

 

Eliphaz, Bildad and Zophar did accordingly. Yet, God was pleased with Job, meaning what they did doesn’t make them righteous. They were accepted through Job, considered righteous by God. This is the way of the cross.

 

That God told them to go to Job and offer burnt offerings means Job is righteous. It is not that Job does righteous acts, but that it is right that he realizes his lowliness, repents, and seeks God's mercy.

 

Therefore, when his friends go to Job and offer the burnt offering, they will realize that it was a foolishness to think of themselves as more righteous than Job. In the end, as Job, who met God, was shut up, his friends who went to Job would have nothing to say. Knowing that they were the ones who should have been in the affliction, not Job, is why they should go to Job and offer burnt offerings. This tells the meaning of faith on the cross.

 

If we go to the cross, what we see on the cross must be our own sin and death. If we believe in the cross, we come to be aware of the fact that our attempt to please God by our devotion is wrong. Rather, it simply reveals the truth that we can not claim our own righteousness with any of our acts as we see ourselves in sin and death.

 

What we learn from the Book of Job is that there is no goodness or righteousness that God recognizes from us. Therefore, we can not argue for any kind of behavior in terms of our own goodness and righteousness. It means that we can not say, 'Why am I going to have to go through such difficulties since I am right?' Nevertheless, we only meet ourselves who can’t stop resenting and complaining against God. There, what we can be sure and realize is that we have nothing to say before the suffering of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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