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7 11:19

왕상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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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왕상 3:28)

 

솔로몬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 있는 왕으로 손꼽히는데 그 지혜를 증명한 것으로 유명한 것이 두 창기의 아들로 인한 재판 사건이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해석 또한 뒤죽박죽이다. 대개는 사건을 해결하는 솔로몬의 능력을 지혜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법정에서 판사의 판결이 지혜롭다고 생각되면 솔로몬의 재판이라고 호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재판 사건의 내용을 보면 지혜의 재판으로 호들갑 떨기에는 뭔가 한참 부족하게 보인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복잡하고 난해한 사건도 해결하는 능력의 인물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유전자 검사만으로 간단히 누구의 아들인지 가려낼 수 있는 지금의 시대에서는 사실 우리를 놀라게 할 내용도 아니다. 오히려 어쩌면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는 방법으로 아이의 어머니를 가려낸 것에 대해 비난이 있을 수도 있다. 진짜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거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칼로 아이를 둘로 나누라는 것은 잔인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이의 어머니를 가려낸 것을 지혜로 말하기가 미흡하다고 생각했는지 세상에서 죄인으로 취급되는 두 창기의 재판을 무시하지 않고 성의있게 해결해주는 것에 중점을 두기도 한다. 왕이 약자를 무시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해서 억울한 자가 없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로 인한 재판이라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세상의 재판은 돈 많고 힘 있는 자에게만 성의를 보이는 편인데 솔로몬의 재판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 지혜의 의미와 가치를 두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에 지혜의 의미를 두는 것보다는 나은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는 약자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 또한 솔로몬의 재판으로 증거되는 지혜에서 멀어져 있다. 약자를 무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 자체가 지혜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세상의 도덕과 윤리도 약자 편에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솔로몬의 지혜는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솔로몬에게 없는 지혜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따라서 이스라엘은 솔로몬이라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서 두 창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16:10)라고 말하는 것처럼 솔로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즉 지혜 앞에 나와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 다스림을 받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가를 두 창기에 대한 솔로몬의 재판을 통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솔로몬의 재판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나 약자의 재판을 무시하지 않는 왕의 인품에 시선을 두고 보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솔로몬의 재판으로 드러나는 지혜의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재판에 등장하는 두 여자가 창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죄 가운데서 저주받을 존재로 규정된 창기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지혜의 다스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두 창기는 사흘을 간격으로 아들을 해산하였는데 한 창기가 밤에 누워 자다가 아들을 죽게 하고 대신 다른 창기의 아들을 바꿔치기하여 자기 아들이라 주장한다. 결국 아들을 빼앗긴 창기가 자기 아들을 찾아 달라고 솔로몬 왕에게 호소하게 된다. 두 창기가 함께 지혜 앞에 서 있지만 아들을 뺐은 창기는 끝까지 자기 것을 주장하고, 빼앗긴 쪽은 자기 것을 찾기 위해 지혜에게 호소하고 도움을 구하는 상황이다.

 

 

솔로몬은 아이를 둘로 나누어 각각 두 여자에게 주라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한다. 그리고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라 하고 어머니가 아닌 여자는 내 것도 네 것도 되지 않게 나누라고 한다. 이처럼 각기 다른 반응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결국 지혜로 인해서 사랑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분별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로 증거되는 내용이다.

 

 

어머니의 처지에서는 칼로 아이를 나누라는 것은 불의한 판결이라고 항의할 수 있다. 아이의 어머니를 돕는 지혜로운 판결이라고 할 수 없고 자기 것도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창녀 때문에 아이가 죽어야 하는 불합리한 일이기에 어머니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항변하지 않고 아이를 잃는 길을 택한다. 어머니에게 아이는 곧 자기의 전부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기를 포기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어머니가 아닌 여자는 억울할 일이 없다. 어차피 자기 아이가 아니니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나누라고 한다. 내 것이 되지 못한다면 네 것도 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악한 심보로 나에게는 없는데 타인에게 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가 아닌 자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죽은 자기 아이를 살아있는 아이와 바꿔치기한 창녀의 속성이며 지혜 없이 사는 인간의 실상이다.

 

 

아이와 어머니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은 어머니가 생각지도 않았던 자기를 포기하는 길로 가게 한다. 이처럼 아들 때문에 기꺼이 자신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사랑의 능력이며, 이 사랑을 아이의 죽음으로 증거 하는 것이 솔로몬의 재판으로 보여주는 지혜다. 창기에게 본래 있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을 주심으로 있게 된 사랑의 힘이다.

 

 

솔로몬은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누가 진짜 어머니인가를 밝혀내는 것이 중점이 아니다. 사랑으로 자기를 포기했는데 아들과 창기인 어머니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것이 솔로몬 속에 있던 하나님의 지혜의 판결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의 죽음으로 누가 아들과 참된 관계에 있는지를 판결하신다. 소유가 아니라 아들 때문에 자기를 포기하는 길로 가게 하는 사랑이 있는 그들이 성도라는 것이 지혜로 인한 분별이다.

 

20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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