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7 11:21

히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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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6:4-6)

 

기독교인의 관심은 아무래도 구원의 문제로 향한다. 그래서 믿음도 자기 구원에 중점을 두고 생각하게 되고 구원받기 위해서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로 고민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독교에는 구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두 신학이 있다. 하나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 구원을 받았다 해도 낙오하여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최종적으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믿음을 지키며 거룩한 삶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히 6:4-6절이다.

 

 

반대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과 부르심을 구원의 근거로 말한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신자로 부르셔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예수를 믿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믿는 자의 문제로 인해 구원이 취소된다면 하나님의 선택과 신실하심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취소됨이 없이 절대적으로 실행된다는 뜻으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 번 받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자기의 죄를 경시하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고 우려한다. 예수의 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으니 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신자의 거룩한 삶에 염두를 두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구원이 취소되고 탈락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라는 구절을 내세워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 아니라 많은 다른 구절을 근거로 삼기도 하지만 지금은 구원에 대해 혼란을 주기에 충분한 히 6:4-6절의 뜻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일단 결론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것이나 영원하지 않고 탈락할 수 있다는 주장 모두 잘못되었다. 사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 구원의 취소는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말이 맞는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런데도 두 주장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성경을 인간의 구원에 중점을 두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는 시각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취소되지 않는 영원한 구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고, 오늘 묵상 구절은 구원받았다 해도 취소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결국 두 주장 모두 성경을 인간의 구원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에서 벗어난 잘못임을 모르는 것이다.

 

 

선택과 예정은 인간의 죄가 존재하지 않던 창세 전의 일이다. 그 말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창세 전의 선택과 예정을 이용하여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은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6장은 이처럼 인간의 구원을 중심으로 성경을 보는 것에 대한 단죄로 생각해야 할 내용이다.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것은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인간으로 불가능한 일에 참여하게 하시고 맛보게 하신 것은 우리의 구원과 가능성을 생각하지 말고 완전이 되시는 예수님의 의만 의지하고 높이는 자리로 나아가라는 뜻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구원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빛을 받고 은사를 맛본 것을 구원받았다는 뜻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는 말에 혼란을 느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타락이란 단어에 대한 바른 이해다. 용어만으로는 죄를 범한 자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도덕이나 인간의 행위가 아닌 십자가의 개념으로 해석하게 되면, 타락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 사건을 자기 구원을 위한 것으로 이용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용서될 수 없는 죄다. 용서의 능력이 되는 피의 은혜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될 수 없는 인간을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의 공로만 자랑하고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영원한가? 취소될 수 있는가라는 인간 중심의 헛된 생각에 갇힌 상태에 있는 것이 곧 인간의 타락이다.

 

 

6:2절을 보면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고 말한다.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의, 예수님의 사랑만 완전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완전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분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이 또한 우리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6:3)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 없이는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면서 십자가만 자랑하게 된다.

 

 

6:1절의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는 빛을 받았고 은사를 맛본 자신에게 주목하면서 자기 믿음에 머물러 버린 상태로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잘못된 행실을 회개하면서 바르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인간에게 있다고 가르치는 교훈을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완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는 것이 성령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타락은 인간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을 맛보고 경험하고서도 완전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늘의 은사와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게 하고 성령에 참여하게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욕되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그런 경험을 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신자는 말씀의 능력을 맛보게 된 것만으로도 자기의 무능을 실감한다. 그리고 자기 구원에 주목하지 않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완전하신 주님께로 나아가 주와 함께하며 십자가만 자랑하고 높이게 되는 것이다.

 

202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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