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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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6:3)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믿음은 불가능하다. 믿는다고 해도 믿음이 아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인간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의 믿음 또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배우고 알아가는 것처럼 반드시 인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믿음을 믿음 되게 하는 조건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과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성경을 본다면 성경의 모든 내용은 인간을 위한 인간 중심으로 해석될 뿐이고 그것이 사탄의 해석이라는 것에 심각성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보시는가는 선악과를 먹은 후에 행하신 조치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창 6:3절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을 하늘의 천사로 말하기도 하지만 천사가 사람의 딸을 아내로 삼아 자식을 낳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선악과를 먹은 후에 모든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단절된 죽은 자임을 생각해 보면 실제 하나님의 아들이 존재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자처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사람의 딸은 하나님의 아들로 자처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을 비난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는 인간의 문제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사람의 딸을 아내로 삼은 것일까? 가령 오늘날 기독교인이 교인이 아닌 자와 혼인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문제가 된다면 하나님은 교인과 교인의 혼인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신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교인과 교인이 혼인한다 해도 버릴 수 없는 것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교인끼리의 혼인으로 믿음의 정당함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잘못된 것은 사람의 딸을 아내로 삼은 것이 아니라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좋아했고 그것이 아내로 삼는 기준이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자처하면서도 세상 사는 방식은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을 택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으로 인식되는 것을 하나님은 영이 함께 하지 않은 육신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악한 본성의 삶으로 규정하신 것이다. 이것이 5절에서 말하는 세상에 가득한 사람의 죄악이며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하는 이유다. 자기를 위하여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을 택하는 방식의 삶을 악하다고 하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인간의 악함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고 함께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람에게 나타내시고 알게 하시는 것밖에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눈이 열리고 말씀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을 육신으로 말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육신으로 사는 인간 됨을 여자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여 아내로 삼은 것으로 증거 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선택하는 본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육신이 된 인간의 특징이며 그러한 인간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무 가치 없는 악한 존재라는 뜻이다. 이것이 육신이 되었다는 인간의 의미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가치 향상을 위해 살아간다. 하나님을 찾는 것도 자기 가치를 위한 것이고, 말씀의 실천을 중요시하는 것도 사실은 믿음을 자기 존재 가치를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신으로 존재하는 인간에게 믿음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육신의 인간에게 믿음은 오로지 자기를 위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찾는다고 해도 육신의 일만 생각할 것이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고 사망의 생각으로 치우칠 뿐이다(8:5-6).

 

 

하나님은 이처럼 육신이 된 인간의 날을 백이십 년으로 확정하신다. 사람들은 백이십 년이라는 숫자에 관심을 두고 인간의 수명, 홍수 심판 때까지의 날, 회개할 수 있는 기간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해석에서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불변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인간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 속에서 영이 함께 하지 않은 육신으로 살다가 끝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제 희망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것인데 이것은 이미 영원히 영이 함께 하지 않을 것으로 선포되었기에 헛된 희망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할 인간으로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하나님을 알지 못한 육신으로 살다가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에 의해 끝나는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심판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육신으로 사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매일의 삶이 심판인 것이다.

 

 

이처럼 육신이 된 인간에게 반전이 일어난다.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자로 등장하는 것이다(6:8). 이제 인간은 은혜를 입은 자와 육신으로 존재하는 자로 구별된다. 하나님의 영은 은혜를 입은 자에게 함께 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눈이 열리며 진리에 참여하게 된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거룩한 성도다. 이들이 육신이 된 심판의 존재에게 은혜가 주어지고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을 기적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2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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