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2 23:25

마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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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17:27)

 

믿음의 세계는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일을 행하여 주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총으로 주신 믿음이 하나님의 자녀를 장악하여 십자가에서 행하신 주의 일이 증거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단연코 없다. 행할 수 있음에도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행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예수님은 이것을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옮길 수 있다는 말씀으로 가르치신다. 이러한 가르침이 본문의 내용으로 계속 이어진다.

 

 

당시 유대인은 성전세로 반 세겔을 내고 있었는데 성전세 받는 관원이 베드로에게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않느냐라며 성전세를 요구한다. 베드로가 내신다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예수께서 먼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17:25)라고 말씀한다. 베드로가 타인이라고 답하자 다시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라고 하시고 이어서 본문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본문은 단순히 성전세를 내야 하는가 내지 않아야 하는가?’의 문제로 다룰 수 없다. 임금이 자기의 아들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지 않는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전세를 면제받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도 성전세를 주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성전세로 인한 불필요한 시비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당시 회계를 담당하던 유다에게 명하여 내게 하면 된다. 반 세겔은 남자의 이틀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라고 하는데, 그 정도면 제자들에게 큰 액수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바다에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의 입에서 한 세겔을 얻게 하는 이상한 방식으로 성전세를 내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다른 의문은 베드로는 관원으로부터 예수님 몫의 성전세를 독촉받았을 뿐인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것까지 두 사람 몫의 한 세겔을 얻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제자인 베드로의 성전세도 함께 내게 하신 것이라면 다른 열 한 제자의 성전세도 포함해서 내도록 해야 하는데 제외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들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

 

 

성전세는 출 30장에 등장하는 생명의 속전이다.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내는 것인데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반 세겔이 적용되는 것은 생명의 문제에서 어떤 인간도 차별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모두의 죄가 같고 주어진 은혜가 같다. 따라서 부자 된 것이 복과 사랑을 받은 증거가 아니고, 가난한 것이 믿음이 없어 복을 받지 못한 결과도 아니다. 십자가에서 생명의 속전이 되어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에 차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참된 성전이고 생명의 속전이니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라고 하시면 간단한데 성전세를 내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항상 자기 행함에 주목하여 선악을 판단하는 인간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라고 하셨다면 제자들은 성전세 내지 않는 것을 의로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성전세 내는 자는 믿음이 없고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비난받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의 교회에서도 드러난다. 십일조와 헌금을 강요하는 것이 교회의 폐단으로 지적되면서 십일조가 없고 헌금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세워 복음을 알고 복음대로 행하는 참된 교회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행함을 믿음으로 주장하는 것이나 행하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주장하는 것 모두 자기 행함에 주목하는 것일 뿐이다. 행하지 않는 것이 또 다른 의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임금의 아들들은 세를 면한다는 말을 오해하여 성전세 내지 않는 것을 의로 여기는 것이 곧 실족하는 것이기에 성전세를 내게 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똑같이 자기에게 있는 돈으로 낸다면 성전에 대한 유대인의 인식과 규례를 인정하고 따르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물고기 입에서 성전세를 얻는 방식을 동원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제자들에게 믿음의 세계를 가르치신 것이다.

 

 

성전은 유대인의 성전세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유대인에게 있어서 성전세는 자신이 노동하여 번 돈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한다는 정당성을 얻게 한다. 성전세를 바치는 자기의 행함에서 하나님을 위한다는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기 입에서 얻은 한 세겔은 일단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다는 의미가 있다. 그것으로 성전세를 내게 하신 것은 참된 성전은 인간의 공로와 노력, 즉 인간의 것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한 세겔에 담긴 의미다.

 

 

고기 입에 있었던 것은 반 세겔 두 개가 아니라 한 세겔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하나 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베드로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된 모든 자와의 관계를 베드로 한 사람을 대표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가 된 관계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명의 속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의의 완성자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과 하나 된 관계에서 인간에게 다른 의와 공로는 요구되지 않는다. 인간에게 있는 것의 차이가 차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 너를 위하여라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 된 관계에 있게 된 신자로 인해 예수님이 완성이 되는 십자가의 공로가 자랑이 되고, 신자는 자신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 거룩한 성도로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 세겔은 인간의 공로와 열심이 필요 없는 예수와 하나 된 믿음의 세계를 가르치고자 하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믿음의 세계는 세상의 법과 경험과 상식을 벗어나 있다. 인간의 공로, 선함, 정성, 열심, 이 모두를 부인하고 생명의 속전으로 오신 예수님의 피 흘림이 의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한 세겔을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얻게 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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