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3 17:28

삼상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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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삼상 16:14)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 인간은 없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 이유와 목적은 자기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나를 위한 하나님이 인간이 만들어 지향하는 신의 존재다. 성경을 보면서도 이런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서 저주받아 죽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나의 구원을 위하여로 곡해하게 된다.

 

 

이처럼 자기 구원에 중점을 두고 성경을 봄으로써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자기 구원의 여부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그런 점에서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케 했다는 내용은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이끌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여호와의 영을 성령과 같은 영으로 이해하고 나에게서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오면 나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불안과 두려움에 붙잡히는 것이다.

 

 

본문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의문은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가 떠나기도 하는가?’, ‘악령이 들어왔다면 구원받지 못하는가?’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분명히 직시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그러한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기 구원을 지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악함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의문에 대한 답만 찾고자 한다면 결국 답의 여부에 따라 안심하기도 하고 구원을 지킬 방법에 시선을 둘 뿐이다.

 

 

구약에서는 사울에게 임했던 여호와의 영이 떠나는 일이 있지만, 신약에서의 영은 여호와의 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셨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신 성령은 성도에게 임하셨다가 떠나는 일은 없다. 자기 구원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이러한 말에 안심이 될 것이다. 믿음 생활을 잘못해도 성령이 떠나지 않는다면 구원의 여부에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자신이 성령 받지 못한 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성령의 임하심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 여러 주장이 있는데 크게 둘로 나누면 단회적 내주반복적 내주. 단회적 내주는 성령이 한번 임하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반복적 내주는 임하셨다가 떠날 수도 있고, 다시 임하시기도 한다는 주장이다. 주장만 놓고 보면 단회적 내주가 맞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떠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단회적 내주는 인간의 지식에 의한 의미 없는 주장일 뿐이다. 단지 성령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에 단회적 내주를 주장하는 것이다.

 

 

반복적 내주로 주장하는 이유는 성령의 임하심을 인간의 행함에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사울이 번뇌하게 된 것은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임했기 때문이다. 번뇌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 괴로운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울의 상태를 근거로 해서 번뇌가 있고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성령이 떠났기 때문으로 진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에 힘을 쓰면 성령이 다시 오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으로 성령이 떠나지 않기 위해 믿음 생활에 힘을 써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구원에 중점을 둔 악령의 사고일 뿐이다.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왔다고 하여 사울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시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다윗을 죽이려고 쫓고 있는 사울에게 다시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이다(삼상 19:23). 그러면 이때의 사울은 구원을 받았다고 해야 하는가?

 

 

그런데 그 전에 악령이 사울에게 임하여 수금을 타는 다윗을 죽이려고 한 일이 있다. 이처럼 악령이 들어왔다가 다시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는 일이 반복되는 사울의 구원 여부에 초점을 두게 되면 성경 해석은 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구약에서의 여호와 영은 임했다가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신약에서의 성령은 임하면 떠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영과 성령은 다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영과 성령, 두 영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으로 임하여서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임하여서 하시는 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영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이해해야 한다. 삼상 10장에 보면 사울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고 왕이 된다. 그리고 여호와가 다시 사울을 버리고 사무엘을 이새의 집에 보내어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실 때 여호와의 영이 임한다(삼상 16).

 

 

이처럼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 임했다가 다윗에게 임하고 사울이 왕이 되게 하셨다가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일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왕은 사울이 아니라 다윗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문제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사울이 아닌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지 않은 것인가? 그 이유는 악령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악령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훼방하는 것이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사울을 왕이 되게 하신 후에 악령으로 번뇌하게 하여 수금을 타는 다윗과 만나게 하시고 약속의 사람인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으로 악령의 존재를 알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악령이 약속을 훼방하는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 사울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고, 이것이 사울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가 떠나고 악령이 임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악령을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존재로 말하는 것도 여호와께서 주관하시는 일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약속의 사람인 다윗을 죽이려고 한 악령의 의도는 다윗 후손으로 오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으로 드러난다.

 

 

 

성령은 약속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셨다. 자기를 위하여 예수를 찾는 것을 악령에게 사로잡힌 것으로 폭로하면서 자유 하게 하신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하신다. 그래서 성령은 하나님이 택하여 부르신 성도를 떠나지 않고 죄를 알게 하며 십자가만 자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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