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7 11:20

마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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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8:20)

 

십자가는 인간의 종교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용납하지 않은 결과로 발생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성경은 반드시 인간의 종교성과 부딪히게 된다. 인간과 부딪히지 않는 성경 해석은 복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바른 해석은 인간의 근원인 종교성을 죄로 폭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종교성은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고 존중한다. 구원받을 자격 있는 인간이 되는 것에 관심을 두고 그 방법을 성경에서 찾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행함이 믿음으로 강조되고 행함으로 구원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이것이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성이다.

 

 

성경이 이러한 종교성을 죄로 폭로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종교성으로 죄를 가리고 오히려 죄를 믿음으로 왜곡하여 해석해 온 인간의 어리석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부인되고 십자가에서 홀로 이루신 예수님의 일을 믿는 믿음에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는 신자의 바른 태도다.

 

 

무엇보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따라갈 수 없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교회에 전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성경 해석이라 하여 옳은 것으로 당연시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성경적 점검과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종교성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는 해석을 따라가는 것이 맹인의 인도를 따라가다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본문은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명령이라는 점에서 교회가 중요시한다. 그리고 이 명령을 선교로 해석하고 모든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을 교회의 의무와 책임으로 강조한다. 이러한 해석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성경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오류투성이다.

 

 

이 말씀이 신자가 지켜야 할 명령이라면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 목사에게 주어진 명령, 목사가 아닌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라. 현대 교회에서 목사가 아닌 사람이 세례를 행할 수 있는가? 천주교에서 영세는 신부만 베풀 수 있고, 기독교에서는 목사만 세례를 베푼다. 결국 세례를 베푸는 목사만 명령을 지키고 목사 아닌 사람은 지키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또한 목사라 할지라도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는 명령 앞에서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있는 것은 불순종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친다 해도 지키게 할 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누구도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없이 선교를 지향하고 강조하며 여러 나라로 선교사를 파송해서 돕는 사업에 힘쓰는 것으로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성실히 지킨다고 자부하는 것은 교회의 미련한 착각일 뿐이다.

 

 

본문은 열한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28:17). 그러한 제자들에게 그들의 힘으로 지켜 행하라는 뜻으로 하신 명령일까? 무엇보다 열한 제자는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친 실패자들이다. 믿음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런 그들이 지금 예수를 따른다면 그것은 개과천선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의 권세가 그들에게 함께 한다는 증거다. 따라서 제자는 자기의 실패와 예수님의 권세를 경험하는 자로 말할 수 있다.

 

 

제자로 삼으라는 것은 제자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 삼으라는 뜻이다. 교회를 다니는 교인 되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일에 반드시 동원되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실패다. 믿음에 있어서 인간은 실패하는 존재인데도 예수님을 따르고 구원에 있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권세가 함께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거 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도 먼저 세례의 의미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흔히 목사가 머리에 물을 뿌리고 물속에 들어가는 방식의 세례를 생각하겠지만 인간의 세례가 예수님의 세례를 방해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세례는 육에서 영이 되는 것이다. 육은 자신의 노력으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에 뜻을 두고 행하는 것이고, 영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행하신 일을 의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육의 사람에게는 자기가 행한 일이 쌓이고 영의 사람에게는 자기의 일은 비워지고 대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행하신 일로 채워진다. 그래서 세례를 베풀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 아닌 주가 행하시고 이루신 일을 증거 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약속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이 약속은 성령이 오심으로 지켜진다. 그런데 우리는 함께 계신다는 약속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수님의 약속이 무색하리만큼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이유는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위해 함께 하시는 예수로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함께 하셔야 하는 이유는 제자로 삼고 성령을 베풀고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 제자들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을 돕고 힘을 주어 이루게 하시려고 함께 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믿음은 주의 도움을 받아서 신앙으로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다. 자신이 행한 일은 빠지고 예수님의 일로 채워진 것이 믿음이며 이 믿음에 있는 그가 제자다. 인간의 종교성으로 채워진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만 선물로 넘치는 믿음의 사람, 제자 되게 하시려고 함께 하신다. 선교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는 사랑을 말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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