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8 11:39

삿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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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14:14)

 

고대부터 전승된 놀이 가운데 수수께끼가 있다. ‘어떤 사물을 빗대어 말하여 그 뜻이나 이름을 알아맞히는 놀이로 설명된다. 질문은 주로 동물, 사람, 식물, 또는 어떤 물체의 특징이나 형태를 모호하게 묘사한 서술적인 것이 많고 이에 대한 답은 상식에서 벗어난 기지와 재치로 찾아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문제가 모호하다 해서 답도 모호하면 안 된다. 답은 누가 들어도 이해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만든 사람은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산 사람도 사용하지 않으며 그것을 사용한 사람은 그것이 뭔지 모르는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답은 관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관은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장례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이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수께끼라는 놀이 안에서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이라는 답에 ~’하고 수긍한다. 따라서 수수께끼는 모든 사람이 보고 듣고 알고 경험한 것이 토대로 되어야 한다. 만약 한 개인의 경험을 수수께끼로 제시한다면 답은 경험한 그 사람만 아는 것이기에 누구도 수긍하지 않게 된다.

 

 

삼손의 수수께끼가 그러하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낸 수수께끼는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것이 나왔느니라이다. 삼손이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갔을 때 그곳 포도원에서 젊은 사자를 죽인 일이 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삼손이 딤나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다시 내려가는 길에 사자의 사체를 봤는데 그 몸에 벌 떼와 꿀이 있었다. 이것은 오직 삼손만 경험한 일이기에 답은 삼손만 안다. 따라서 답을 안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수긍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사자를 죽인 것은 힘 있고 용맹한 자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죽은 사자의 몸에 꿀이 있고 그것을 먹은 것은 오직 삼손만의 경험이다. 죽은 사자의 몸에 벌 떼가 와서 꿀을 모으는 것은 세상에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손의 수수께끼는 삼손이 아니면 누구도 풀 수 없다.

 

 

삼손이 포도원에서 사자를 만났을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한다. 사자를 죽이고 죽은 사자의 몸에 벌 떼가 모여 꿀이 있게 된 현상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관여하신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손의 수수께끼는 하나님이 관여하심으로 된 사건과 현상을 내용으로 한다.

 

 

수수께끼를 받은 사람들은 사흘이 되도록 풀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동원한다 해도 풀 수 없다. 하나님이 관여하심으로 된 사건과 현상을 세상 지식으로는 알 수 없음을 의미한다. 결국 그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남편을 꾀어 수수께끼를 알아내라고 협박하여 답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삼손에게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라고 답을 말하여 약속한 옷을 받는다.

 

 

과연 삼손의 수수께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삼손은 먹는 자(삼키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게 하시고 강한 자에게서 단것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다. 죽은 사자의 몸에서 꿀, 즉 단 것을 얻은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경험한 것이다.

 

 

삼손의 경험은 하나님이 우리를 삼키는 자, 강한 자로 만들기 위해 관여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이 삼키는 자가 되고 강한 자가 되고 싶어 한다. 삼키는 자, 강한 자가 주는 것을 먹는 약자의 자리는 거부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삼키고 강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것이 자기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구원 밖에 있는 인간의 정신이다.

 

 

삼손의 수수께끼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한 자의 경험이라는 점에서 성도의 존재를 나타낸다. 성도가 성령을 경험한 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 누구도 풀 수 없는 삼손의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것이 성도다.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게 하시고 강한 자에게서 단것이 나오게 하셔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경험이 있는 그들이 삼손의 수수께끼를 알고 속에 품고 있는 성도라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수수께끼를 알았다 해도 여전히 비밀이었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을 때 삼손에게 주어야 할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지키고, 또한 옷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여 답은 알았다 해도 그 내용의 의미는 몰랐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예수님과 십자가를 말하는데 의미에는 무지하고 관심도 없고 현대 교회의 실상을 보게 된다. 그 증거는 인간의 힘과 열심을 동원하여 원하는 단 것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것이 수수께끼로 드러난 블레셋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고 죽은 자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음을 경험한다. 죽은 사자에게 있을 수 없는 꿀이 있는 것처럼 죽은 자에게 있을 수 없는 생명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며 성도만 아는 삼손의 수수께끼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성령으로 산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베푸신 것을 누리고 감사하기에 힘이 필요하지 않고 힘으로 살지 않게 된다.

 

 

그런데 삼손은 아내가 울며 수수께끼를 말해달라고 강요하자 결국 일곱째 날에 알려주는 잘못을 범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경험한 수수께끼가 아니라 여자를 사랑한 것이다. 이것이 인간, 곧 우리의 한계임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한계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일하심과 경험에 대한 오해를 초래하는 것이다.

 

 

 

성도가 성령을 경험했다 해도 사랑의 대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기 사랑에서 예수 사랑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성령의 경험은 얼마든지 무시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성도는 끝까지 자신을 가능성이 없는 죄의 존재, 죽음의 존재로 바라본다. 그리고 죽은 자에게 있게 하신 그리스도의 생명, 꿀을 은혜로 품고 산다. 이것이 성령의 경험이며 삼손의 수수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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