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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5:28)

 

인간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정확한 실체이고 실상이다. 그래서 인간을 패역하고 거짓말하며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존재로 말씀하신다면(30:9) 그것을 나의 현실로 간주해야 한다. 그것이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듣기 좋은 말만 자신에게 적용하려는 악한 습성이 있다. 패역하고 거짓말하는 인간 됨에서 자신을 제외한다. 나 아닌 다른 악한 자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선별하여 들으며 자신을 구별한다. 이것이 성령 받지 않은 자가 말씀을 듣고 대하는 태도다. 한마디로 말해서 말씀을 들을 귀가 없고 믿지 않는다.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렇게 드러낸다.

 

 

우리는 서로의 믿음을 인정하고 칭찬하며 연약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독려한다. 인간에 대해 모른다는 증거다. 타인은 물론이고 자기에 대해서도 모른다. 하나님 말씀대로 인간을 패역한 자로 보지 않기에 인간에게서 믿음이 나올 수 없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간 됨으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생명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없다. 결론은 모든 인간이 어둠에 속한 죽음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문을 생각해 보자. 먼저 우리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주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는 것을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세상에 있을 현상으로 쉽게 단정한다. 무덤 속에 있는 죽은 자가 주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을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미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 자는 무덤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는 무덤 밖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해야 하는가? 하지만 예수님은 무덤 속에 있는 자와 무덤 밖에 있는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인간을 육신이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육신의 상태로 구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삶과 죽음의 때를 주관할 수 없는 인간이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 무의미하다. 그래서 무덤 속에 있는 자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현재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우리가 모두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되어 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를 믿지 않고 살다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 자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셨을 때 그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이 참된 구세주이심을 알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기에 심판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로 듣지 않아야 한다.

 

 

인간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다.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이고 믿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은 없다. 결국 말씀을 자기 마음에 맞게 조작하고 고쳐 듣는 것일 뿐인데 그것을 말씀을 듣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됨은 구약이나 신약에서 달라짐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듣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이 무덤 속에 있는 죽은 자라는 증거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철저하게 지키고 행하는 자로 자신했다. 그리고 지금의 기독교인이 유대인과 같은 생각에 매몰되어 있다. 교회를 다니는 자신을 말씀을 듣고 지키며 행하기 위해 힘쓰는 믿음에 있는 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무덤 속의 죽은 자라는 자기 인식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으로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듣고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 말씀에 대한 죽은 자의 생각이다.

 

 

십자가 사건은 세상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는 증거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서 세상이 죽은 자들의 무덤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무덤 속에 있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면 그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실현되는 신비하고 놀라운 기적이다. 이것이 성령의 오심이다.

 

 

성령은 우리의 죄를 책망하고 드러내어 우리가 무덤 속에 있는 죽은 자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고 그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여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피로 다 이루신 일을 믿게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저주받은 무덤 속에 있는 죽은 자로 간주하는 그들에게만 들리고 듣게 되는 것이 예수님의 음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서는 선을 행하자라는 것이 없다. 세상에 없는 선을 행하시고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믿음으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선한 일을 행한 것으로 받아주신다. 그렇다면 악한 일을 행하는 것으로 간주 되는 것은 자신을 무덤 속에 있는 자로 보지 못하고 자기 열심과 믿음으로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해 힘쓴 모든 것이 된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주받은 죽은 자일 뿐이며 구원받을 가치도 자격도 없다. 자기에 대해 이러한 인식이 있다면 예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심판을 받았기에 자신을 죄의 존재로 보면서 주가 행하신 선한 일을 의지하며 주의 일만 증거한다. 그래서 성도는 무덤 속에서 주의 음성을 들은 자들이고 주의 음성에 의해서 심판을 받은 자로 드러난다. 심판을 받았기에 심판이 없는 자가 성도다.

 

 

 

인간은 무엇이 참된 현실인지를 모른다. 주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어서 주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목소리만 높인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방법과 방식을 옳은 것으로 고집하며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한 신앙생활에 열심이다. 이러한 인간이 영원한 멸망에 들어간다는 것이 주의 음성이다. 놀라지 말라. 주의 음성은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듣는다. 그렇다면 주의 음성을 듣게 하는 성령의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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