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1:20

요일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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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교회에서 목사와 교인은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관계로 되어 있다. 목사를 성경을 가르치고 교인의 영적 성장을 돕는 일을 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알고 교인은 목사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가르친다는 것이 목사의 권위로 작용하여 교인과 차별적 관계에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생각에 성경이 제동을 건다.

 

 

성경은 성도를 주께 받은 기름 부음이 안에 거하는 자로 말하면서 아무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유는 성도 안에 거하는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성도에게 가르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내용에 따른다면 목사는 가르치는 위치에 있을 수 없다. 성도에게는 이미 참되고 거짓이 없이 가르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는 목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것이다. 목사의 기능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증거하는 일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게 된 복음을 내어놓고 전달하는 것임을 주지해야 한다. 목사 또한 성도로서 기름 부음으로부터 가르침 받아 알게 된 것을 증언하고 전달하는 것이고, 이것이 목사가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이유다.

 

 

이렇게 목사를 통해 복음이 전달되는 자리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함께 하는 그들이 기름 부음의 가르침을 받아 십자가를 믿고 시인하는 성도로 확인된다. 복음은 성도만이 알아듣는 하늘의 언어, 방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사가 가르치는 것을 자기 권위로 이용하여 교인에게 순종을 요구한다면 기름 부음이 있는 성도는 단연코 거부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주의 말씀에 복종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기름 부음으로 인해서 거룩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기름 부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기름 부음이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이것이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은 기름 부음의 가르침이 아님을 분별하게 하기 때문이다.

 

 

기름 부음이 의미하는 것이 성령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께서 주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성령이 주께 받은 기름 부음이다.

 

 

이러한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성도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성령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목사의 설교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설교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라면 설교가 복음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면서 전달되는 복음에 감사하며 함께 하여 하나 된 교회로 드러나는 것이다.

 

 

목사가 성경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목사 개인의 생각과 지식이다. 하지만 목사가 가르치는 성경이 사도가 전한 복음과 일치한다면 그 출처를 생각해야 한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증거를 자신의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말한다(고전 2:4). 복음의 출처를 자신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한 것이다. 바울도 성령의 가르침으로 깨닫게 된 것을 전했을 뿐이다. 그래서 목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알게 하신 것을 전할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가르침에는 사람의 뜻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기의 생각, 의도, 목표, 욕망이 혼합된 다른 성경으로 가르쳐서 교인을 자기 뜻대로 이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성령의 가르침에 사람의 뜻은 없다. 다만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뜻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사람은 누구도 성령 받은 성도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가르칠 수도 없는 이유다.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고, 그 일을 위해 성령이 오셨다. 자신과 목사와 교회를 위해 성도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것이 사람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성령이 가르치신 것을 그대로 설교로 전달하는 목사라면 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가르치고 주를 알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성령입니다. 내 말이 아니라 성령의 가르침에 복종하는 것이 성도입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성도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성령이 와서 하시는 일을 책망하는 것으로 말씀한다(16:8). 율법의 완성인 십자가를 근거로 하여 사람이 가르치는 믿음의 열심과 선을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는 사람의 뜻을 책망하고 정죄한다. 행할 수 있다는 자신의 의지를 정죄 받은 자로 다 이루신 주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가르침이다.

 

 

주 안에 사람의 일은 없다. 사람의 믿음과 공로와 선함이 가치 있는 일로 평가되고 높임 받는 것은 우리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밖의 현실이다. 그래서 성도가 주 안에 거하게 되면 사람의 일은 무너지고 주가 이루신 일만 자랑한다. 예수님이 피 흘리고 죽으신 십자가의 일이 자신을 생명에 있게 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믿는가에 따라서 현실이 달라진다고 가르친다.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고 주 안에 거하지 않는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을 현실로 간주하고 그 현실을 도와주는 예수로 가르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육에 속한 것으로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이 아니라 세상의 영을 받았기에 그러한 가르침이 나오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성도는 성령이 가르치는 것을 믿는다. 아니 믿어진다. 사람의 지혜로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되는 놀라운 현상을 통해서 성령이 거하시고 활동하심을 경험하고 주가 일하심을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성령이 가르치신 효과는 매일의 삶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우리의 죄를 확인하고 그 죄를 우리가 아니라 주께 돌리심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는 것으로 증거된다. 이것이 성령이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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