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2:27

롬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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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10:6)

 

우리는 성경에서 구약과 신약을 만난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한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이 누구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구원에 대해 낱낱이 증거하는 것이 성경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무지하다라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인데 그 말씀이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세상에는 예수님을 아는 자가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모든 지식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무지하다라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옳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을 때 그 자리에 채워지는 것은 죄와 아무것도 행할 수 없는 무능이 전부다. 성경은 인간에 대해서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일관적으로 이점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 연구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인간의 현실에 눈을 뜨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대인들처럼 자기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고집과 완고함의 결과다.

 

 

사람들은 예수를 잘 믿고 싶어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잘 믿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방법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을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종교성에 의한 산물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들이 인간이 만든 다른 종교가 가르치는 것과 그 의미와 본질이 다르지 않고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한다. 각자 개인의 축복이라는 사탄의 영역에 빠져 성경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으로 구축된 종교 세계의 현실이다. 구약성경이 이러한 현실을 이스라엘을 세워서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데도 하나 같이 자기 지식에 갇혀 있기에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신앙 세계로 나가지 못한다.

 

 

교회가 가르치는 믿음의 토대는 한마디로 말해서 행함이다. 행함의 여부로 믿음의 진정성을 판단한다. 입으로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행함의 열매로 나타나야 참된 믿음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도덕과 윤리에 접목할 수 있는 성경 구절을 뽑아서 실천하라고 하지만 그것은 십자가를 향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 행함을 신뢰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자신의 믿음이 믿음답게 드러나고 그 믿음이 구원과 복이 된다는 생각으로 성경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성도에게 오셔서 일하시는 의미를 모독하는 사탄의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을 볼 때는 자신이 알고 있고 옳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모든 지식이 부인되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없이 성경을 보게 되면 자신이 유지해온 신앙 방식, 즉 행함을 정당한 믿음으로 간주하고 행함을 근거로 자기 의를 쌓을 수밖에 없다. 바울은 이것을 자신의 노력이 담긴 믿음으로 예수께 나아가려는 것으로 말하면서 단호히 거부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30:11). 명령이 지키기 어렵지 않고 쉽다는 것이 아니라 지키라고 주신 명령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의 힘으로 지켜서 이루라고 주신 명령이 아니라는 것을 어려운 것이 아니요라는 말씀으로 분명히 나타내신 것이다.

 

 

또한 먼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인간이 실천하여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명령을 주시고 열심히 노력하고 힘써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수준의 백성이 되라는 뜻이 아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윤리를 뛰어넘는 것이어서 인간이 완벽하게 실천할 수 없지만 완벽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다.

 

 

모세는 명령이 어렵지 않고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30:14)라고 말한다.

 

 

말씀을 단지 지키라고 주신 법으로만 생각하면 말씀이 입과 마음에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말이 된다. 만약 하나님이 말씀을 힘써 지키라는 뜻으로 인간에게 주셨다면 하나님은 말씀을 잘 지키는지 그냥 지켜보시면 된다. 이것이 인간이 알고 있고 믿는 잘 지키면 복을 주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주는 하나님이다. 즉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고 동행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지키는 분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고 언약으로 오신 예수님이 말씀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지켜야 할 말씀은 없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라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없으니 먼 것도 아니다.

 

 

말씀을 이루시고 지키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그 은혜로 산다면 성도는 그 은혜 안에서 모든 말씀을 지킨 자가 된다. 그래서 주를 믿는 성도에게 말씀은 어렵지 않다는 것인데, 이것이 인간이 알지 못한 믿음이다.

 

 

그런 점에서 신 30:12,13절의 내용은 명령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먼 것으로 여기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이 이 내용을 인용하여 본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의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에 속하여 의로운 자로 여김 받는다. 바울은 의를 의인화하여 의가 우리에게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라고 말한다고 한다. 의가 우리에게 행함을 보면서 누가 하늘에 올라갈 만한 자인가를 판단하지 말라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행함을 내세워 자기에게로 모셔 내려서 자신과 함께하게 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영으로 오셔서 함께 하고 동행하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또한 행함에 문제가 있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염려하는 것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과 같다고 한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죽은 자에게 생명으로 함께 하시는데 자신을 죽은 자로 보지 않기에 행함이 없어서 지옥 갈 것을 불안해하는 것이다. 결론은 믿음을 실천하는 행함으로 증명하고 확인하는 것은 의가 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믿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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