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든든한 인생

by 신윤식 posted Nov 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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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8:26-30http://onlycross.net/videos/rom-08263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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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설교>

 

   사람은 자기 인생에 대해 불안해하고 염려합니다. 그 이유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들은 취업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가득하고 퇴직을 앞둔 중년 직장인들 역시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과 염려에 휩싸이게 됩니다.

 

 

학교에 간 아이가 조금만 늦어도 불안해하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염려하게 됩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것도 염려가 됩니다. 이렇게 사람의 염려와 불안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를 불안과 염려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아무리 애를 써도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점령한 채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불안과 염려는 죄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이상 그 누구도 불안과 염려에서 해방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인간의 죄는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이 죄로 인해서 사람은 항상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하는 일이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등의 문제로 불안해하며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저런 일을 생각해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며칠 전에는 서울에서 도로공사에 사용되는 대형 천공기가 넘어져서 주행 중이던 승용차를 덮쳐 운전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길을 가던 행인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망자의 가족에게는 말 그대로 날벼락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길을 가다가 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불안한 인생길을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때문에 염려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과 염려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종교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종교를 선택하여 신을 찾아 자신이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문제를 맡기고 신의 힘을 의지함으로써 심적인 안정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연약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강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실패를 해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고 시작할 의지가 있기에 강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불안과 염려까지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진심으로 강한 인간은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입니다. 맞습니다. 모든 인간은 연약합니다. 연약함을 모르고 인정하지 않은 채 살아갈 뿐이지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처럼 연약한 존재가 보이지 않는 생명의 세계에 소망을 두는 신자의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럴만한 사람들이 못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고 찬송을 한다고 해도 마음에는 여전히 세상의 여러 가지 일로 인한 염려가 넘칠 뿐입니다. 어쩌면 지금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마음도 말씀과 찬송으로 인한 평강보다는 세상 일로 인한 염려로 가득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사도는 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는가 하면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연약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것이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이러한 도우심을 실감하시고, 또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감사하십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성령의 도우심은 자신을 불안하게 하고 염려하게 하는 모든 문제들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소를 통해서 심적 평안을 누리고 염려가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둡니다. 그래서 기도도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이것이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위해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한다면 성령의 간구는 우리가 원하는 보이는 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명의 세계를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안다면 이 같은 성령의 도우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돕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생명의 세계를 향해 갈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7절에 보면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시고,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이러한 성령의 생각을 아시기에 성령의 간구대로 성도를 인도하십니다. 결국 성도의 삶이 든든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의 뜻을 따라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한 성령의 간구대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세상의 일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실망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또한 세상의 일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지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도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 같은 신자로 살아가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불안과 염려에 휩쓸려 항상 흔들리며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풍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니까? 사도는 2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많은 사람들은 이 구절에서 우리를 만사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을 만사형통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신자를 만사형통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사형통의 의미를 모든 것이 잘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신자의 인생은 분명 만사형통의 길로 인도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잘되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리석고 연약한 우리가 눈앞에 벌어지는 일만을 바라보면서 불안해하고 염려하며 원망하고 실망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생 안에서 만사형통은 세상의 모든 일이 내가 마음먹은 대로 풀려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이 여러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다는 것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에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임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일은 좋은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행이라고 여기는 나쁜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의 감사는 내가 원한 일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열심히 기도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사이비 종교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싸구려 약속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신자는 이러한 싸구려 약속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이 아니고 거짓된 말에 속아서 나만 복 받고 잘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길을 가는 사람도 아님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내 인생에 궁극적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게 좋은 것이 내 인생에 좋은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지금 나쁜 것이 내 인생에 나쁜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고 3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되었고 영화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실존이 저주에 갇힌 자로 멸망을 향해 가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르심을 입고 의롭고 영화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인생을 장악하여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자는 든든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세상일을 내 힘과 내 뜻대로 이루어 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되어지는 일을 바라보면서 울고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능력 없음과 운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자기 인생에 실망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선하심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고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의 인생에 결코 실패가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믿음이 우리의 삶을 든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 불안과 염려로 마음이 흔들리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뜻대로 일하심을 묵상하며 평강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믿음의 길로 인도 받는 신자는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이 복을 하찮게 여기고 여전히 자기의 뜻을 따라 보이는 세상의 것을 구하는 것이야 말로 불쌍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자의 감사는 내 뜻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것이어야 함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럴 때 범사, 즉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달으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의 인생은 불안할 수가 없습니다.

 

 

신자가 인생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되어짐을 믿는다면 신자는 그 어떤 일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풍부에도 처할 줄 알고 비천에도 처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이 믿음이 힘이 되어서 모든 일에 승리하는 신자로 살게 할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다른 사람보다 잘살고 못사는 것에 민감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울고 웃고 실망하고 좋아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그것들이 인생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주의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지금 당장은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일일지만 그 일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짐을 믿고 소망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형통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