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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16-18http://onlycross.net/videos/2015.10.11-kim(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설교>

 

신조어로 “먹스타그램”이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누리 소통망 서비스(SNS)에 올리는 일 또는 음식 사진을 주로 올리는 누리 소통망 서비스’라고 합니다. 이런 신조어가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뜻일 겁니다. 맛집 블로그들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TV 채널을 돌리면 방송사 곳곳에서 맛집들을 소개하고 또 남자들이 나와 요리를 하는 프로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현대는 그야말로 먹는 관심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의 것을 더 가지려고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욕심이라고 말하고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은 기본적인 욕구이기에 당연한 것이고 그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맛집이라는 소문을 들으면 어디든 차를 타고 가서 맛있는 것을 먹습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그저 작은 즐거움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의 식욕에 대한 죄라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금식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제와 기도, 금식을 경건생활의 아주 중요한 문제로 생각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경건을 위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던 것들을 대표적으로 들어서 그 본질적인 뜻을 밝히셨는데 그 중에 오늘 우리는 금식에 대한 말씀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16절). 그리고는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17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금식을 할 때에 금식하는 표시가 나지 않게 하면 됩니까? 금식을 해도 티가 나지 않게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은밀하게 보시고 다 보상해 주신다는 그런 뜻입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하는 것은 잘못 되었으니까 이제는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유대인)이 율법의 말씀을 따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5:20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따라 열심히 지킨다고 해서 율법에 엄격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보다 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의 율법 지키는 행위는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는 그들 발바닥 밑도 못 따라 갑니다. 율법으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나은 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도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티내지 말고 겸손하게 금식을 하라는 말씀으로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본문이 아닙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라고 말씀하신 그 문맥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자가 되신다는 이 말씀의 전제 속에서 이해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구약에 보면 금식한 내용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속죄일에 “스스로 괴롭게 하는 것”(레 16:29)이 금식이었고, 사사시대에 레위인의 첩을 비류들이 윤간하고 죽이자 이스라엘이 베냐민을 치기 위하여 모여 금식하였고(삿 20:26), 사무엘이 미스바에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금식하며 회개하였고(삼상 7:6), 사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7일간 금식하였으며(삼상 31:13), 요나의 메시지를 들은 니느웨 성 백성들이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욘 3:7).

 

 

이 외에도 구약에는 금식한 많은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식음을 전폐함으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스스로 근신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표현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약의 금식을 이렇게만 쉽게 이해하고 끝나서는 곤란합니다.

 

 

“금식”이란 한 마디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일시적으로 끊는 것을 말하는데 성경에서는 ‘안 먹는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먹을 것이 없다’(마 15:32)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먹지 않는 것과 함께 먹을 것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상태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금식을 음식을 먹지 않는 종교적인 행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레에 두 번씩이나 금식한다고 율법적 행위를 자랑하였던 것입니다(눅 18:12).

 

 

그러면 예수님께서 금식에 대해 묻는 자들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하셨는지 마태복음 9장에 있는 말씀을 살펴봅시다.

 

 

14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마 9:14-15)

 

 

이 질문은 단순히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율법적 행위를 자랑하고 내세우는 본심이 깔려 있습니다. 이 본문을 풀어서 말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먹을 것을 안 먹고 있는데 당신들은 먹을 것을 먹고 있느냐?”

이런 말로 자랑하며 예수님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답변은 이러하였습니다.

 

“혼인집의 아들들은 신랑과 함께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게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먹을 것을 먹는 저희들은 나중에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안 먹어도 되는 날이 오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 금식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가 다 들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먹을 것이 있지만 그것을 먹지 않고 금식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금식하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비록 음식을 일시적으로 먹지 않아 굶지만 금식이라는 율법적 행위가 자신들을 살리는 것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요한이 제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이 먹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율법입니다. 이들의 생각이나 태도는 금식을 하는 그것이 율법을 먹어 살려고 하는 상태라는 것이 예수님의 판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안 먹는 것을 통해 먹는다고 생각하는 죄성을 비난하시며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혼인집의 아들들은 신랑과 한 가족입니다(우리 성경에 손님이라고 번역되었으나 실상은 아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생명으로 오셨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때이고 그분과 더불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먹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이 생명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바리새인들이 먹는 율법을 먹지 않고 예수님과 더불어 살게 된 것이 참된 금식이며 그것이 곧 영생입니다.

 

 

구약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금식에 대하여 선포한 말씀이 있는데 보겠습니다.

 

 

6내가 선택한 금식은 불의의 사슬을 풀어 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는 것이 아니겠느냐? 7또 굶주린 자와 네 음식을 나누며,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을 집에 데려오고, 네가 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 그를 입혀 주며, 네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바른성경)

 

 

이사야 선지자가 외쳤던 말씀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며 금식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쾌락을 구하며 일꾼들을 억압하고 다투면서 싸움만 일삼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금식하는데 하나님은 돌아보지도 않으며 열심히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지 않았다고 항변하였습니다(사 58:3-4).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참된 금식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신 것이 6-7절의 말씀입니다.

 

 

개역개정성경에는 6절을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원문에는 없는 말입니다. 바른성경에서 번역하고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선택한 금식”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금식은 불의의 사슬을 풀어 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만드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헛된 금식에 매여 사는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을 허락하여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아)가 이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61:1-3). 이 예언의 말씀은 누가복음 4장에서 이렇게 성취되었다고 선언합니다.

 

 

16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6-21)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금식은 이스라엘이 율법으로 살면서 끼니를 굶으며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의 죄의 멍에를 부수고 그 죄에서 놓임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죽음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한 금식의 모습을 몸소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금식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금식의 본질적인 뜻을 드러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거기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13-14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율법을 행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먹는 물처럼 계속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갈증을 계속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행하고 또 행하여도 또 행할 것이 있으며 잘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기 때문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금식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율법을 생명으로 삼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삼느냐 하는 문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2-40)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아니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진 자는 이미 생명의 떡을 먹는 자입니다. 먹어야 할 것을 먹으면 먹지 말아야 할 것은 먹지 않게 됩니다. 먹어야 할 참된 양식이 있는데 거짓 된 양식들이 눈에 들어옵니까? 참된 양식을 먹는 자는 거짓된 양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금식이나 기타 다른 모든 율법적인 행위를 함으로 그것을 먹고 사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홀로 완성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은 이 땅의 양식이 아니라 하늘의 양식이 따로 있고 그것으로 삶이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이 땅의 음식에 집착하고 이 땅의 음식이 나를 살려 줄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 속한 자의 모습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다른 죄악들에 대해서는 민감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심에 대해서는 그리 죄의식이 없습니다. 음식에 대한 탐욕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맛집을 찾아다니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죄악된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먹스타그램은 우리의 죄악상을 드러내주는 한 단면입니다.

 

 

세상에서 먹을 것은 웰빙이라고 하여 건강에 대한 문제와 결부하여 어떤 것은 매일 먹는게 좋고 어떤 것은 무엇과 함께 먹으면 좋지 않다는 음식 궁합까지 들먹이며 따지지만 정작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맛집 소개, 하루 삼시 세끼 먹는 것에 대한 관심만큼이라도 우리가 말씀에 관심이 있습니까? 여기서 말씀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단순히 성경을 열심히 읽느냐 안 읽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먹스타그램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한 마디로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경에서 진리의 말씀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구약에서 또한 신약에서 말씀하는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설명하고 드러내려고 하는 언약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 속에서 죄인 된 우리의 모습까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더불어 생명을 누리며 그 진리의 말씀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주는 상태로 살아가는 자가 성도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생명의 떡이시고,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며 사는 자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산 자가 되었습니다. 산 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일용할 양식을 즐기며 사는 존재라는 것을 늘 마음속에 새기고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설교를 즐기는 자가 아닌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강론/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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