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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12-19http://onlycross.net/videos/2016032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설교>

오늘은 전 세계 기독교가 중요한 절기로 여기는 부활절입니다. 현대의 기독교가 중요한 절기로 여기는 것은 성탄절과 부활절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이야 말로 기독교의 중심이고 복음의 전부라고 할 수 있기에 성탄절과 부활절을 중요하게 여기며 절기로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성탄절은 물론이고 부활절이라는 절기가 제정된 적은 없습니다. 아예 교회가 지켜야 할 절기 자체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오심이나 십자가의 사건은 어느 한 날을 정하여 지켜야 할 기념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부활절을 지킨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부활절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볍게 여기거나 믿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절이라는 절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이해하고 믿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여러분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즉 부활은 신자가 죽은 후 예수님이 재림하셨을 때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난다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매일의 삶이 부활 생명을 증언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활절이라는 절기를 지켰다는 것으로 부활을 믿고 소망한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부활이 없이는 복음일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구약의 안식일인 토요일이 아니라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된 것도 초대교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일 다음날에 모인 전통 따른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기독교는 사실 매주일이 부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부활에 관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부활보다는 교회 부흥, 기복신앙, 치유, 도덕적 실천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부활절이라는 것으로 포장하여 마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처럼 스스로를 인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활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부활은 예수님이 재림 하셨을 때 죽은 몸이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죽지 않고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부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또한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몸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부활한 몸은 어떤 몸일까요? 죽었을 때의 몸 그대로일까요 아니면 다른 몸일까요? 이처럼 부활에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부활에 대한 의문이 없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의문이 있어야 부활을 믿는 것으로 인정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한 의문조차 없는 사람이 부활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마치 부활에 대해 잘 알고 잘 믿는 것으로 여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12,13절)고 말합니다.

 

 

바울의 말에 따르면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음을 믿는 여러분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여러분만이 아니라 부활을 믿는 대개의 기독교인들 모두가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교회에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적으로 부인한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 부활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다만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 해도 그들이 믿는 부활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즉 죽은 자의 부활이기에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었을 것이며 믿음도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들이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고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무엇 때문에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을까요?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 없다는 것은 죽은 육체의 부활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들은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의 몸이 부활이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당시의 헬라 사상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헬라사상에는 영혼불멸설이 있었습니다. 영혼불멸설은 인간이 죽어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속한다는 것인데 조상 숭배나 윤회,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이러한 사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헬라사상에 의하면 영혼은 인간의 몸에 거주하다가 그 몸이 죽으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영원히 존재합니다. 이것을 이원론적 사고라고도 합니다. 즉 인간의 몸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죽으면 썩어져 사라질 뿐이고 영혼만 몸에서 분리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즉 죽은 몸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눅 24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을 때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며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눅 24:36,37절). 제자들이 예수님을 목격했으면서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나타난 것으로 여긴 것도 죽은 몸이 다시 사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영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8,39절)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몸의 부활임을 확인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몸의 부활로 믿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몸의 부활을 단지 죽은 몸이 다시 사는 것으로 이해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몸이 부활하면 죽을 때의 몸 그대로 부활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게 되고, ‘죽은 몸을 화장하면 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인데 그런데도 부활이 가능한가?’라는 질문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은 고전 15:42-44에서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 15:51-54절에서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몸의 부활을 몸의 변화로 말합니다. 지금의 몸은 썩어질 몸입니다.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고 영혼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영원한 몸으로 변화한다는 것이 바울이 말하는 부활입니다. 본질적인 변화이며 질적이고 전적인 변화입니다.

 

 

물론 이것이 어떤 변화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증거 되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썩을 몸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가 부활을 소망하고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단시 다시 산다는 차원에서의 기다림이 아니라 썩을 몸에서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는 부활이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마 헬라사상에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자들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과 영혼이 분리된다는 이원론적 사고에 의해서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셨을 때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상태로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믿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에 대해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13-15절)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16절부터 반복하여 말함으로써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심각하게 반응합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을 기독교의 모든 것을 허무는 것으로 말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도가 전파하는 복음도 믿음도 모두 헛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몸의 부활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의 폐해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인간의 몸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죽으면 썩어지고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는 몸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몸이 죽으면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깨달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헬라사상에 의한 영지주의였고 이로 인해 금욕주의, 또는 도덕적 방종으로 흘러간 기독교인들도 많았기에 사도 바울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것입니다.

 

 

몸의 부활을 믿는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죽음이 영원한 사라짐에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믿음은 죽음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활의 믿음에 붙들린 신자는 죄로 인해 죽고 썩어져야 할 몸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에 참여되어 썩지 아니할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을 소망하고 기다리며 그리스도를 향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빌 3:10-12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말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을 믿기에 부활의 권능에 붙들려서 몸의 부활을 기다리며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해서 힘든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삶이 힘들고 무거워도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활이라는 영광이 그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성령이 임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이 삶이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볼품없이 보인다 해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붙들려 있음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여러분을 반드시 부활의 영광의 나라에 있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믿음은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풍부하면 풍부한 대로 비천하면 비천한대로 받아들이며 다만 그리스도로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신자로서 가야 할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사는 것이고 부활의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자신의 힘과 의지로 살지 않습니다. 언제나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며 자신이 가는 길을 살피게 되어 있고 내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서는 여전히 죄가 나오고 우리는 죄를 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죄를 보게 되면서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사는 부활을 소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삶입니다.

 

 

고전 15:31-32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날마다 죽노라고 말하는 것은 부활의 영원한 소망을 바라봄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누리게 되는 것보다 부활의 영광을 더 크고 존귀한 것으로 바라보기에 세상에서의 높음을 위한 싸움에 붙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한 맹수는 짐승을 말한 것이라기보다는 바울을 적대시하고 죽이려는 세력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을 적대시하는 세력을 이기기 위해 사람의 방법으로 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지키고 자기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달려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부활신앙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삶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였습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니까 오늘을 즐겁게 살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몸으로 하는 것은 어차피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말처럼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사는 부활을 기다리며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부활 신앙임을 간과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지금의 몸은 썩을 것이고 흙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썩을 몸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이 약속을 위해 예수님이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신자는 이 믿음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몸의 부활을 믿으며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복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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