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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18-21http://onlycross.net/videos/co1-01182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설교>

1).나는 십자가의 원수였습니다.

 바울은 눈물을 흘리며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빌3:18)

십자가를 우상이라고 경멸하고 가증스럽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십자가는 입에 담지도 못했지요.

만일 십자가를 보게 되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꺼림직 했다.

그토록 십자가는 이교도의 상징이고 우상이라는

생각 때문에 무척 혐오스럽게 대한 겁니다.

 

저 같은 자는 그냥 좋은 말로 하면 절대로 복음을 알아먹을 수 없는 자였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택하신 자를 포기하지 않는 법입니다.

손을 비틀어서라도...끌어내시는 거예요.

 

신은 인간이 가장 처량하고 한심한 것 같은 방법으로 일하실 때가 많아요.

아니 십자가가 뭐예요. 거기에 못 박혀 비참하게 그리고 저항도 하지 않고 무력하게 죽어주는 것이 어찌 승리입니까?

어찌 이것이 능력이라 할 수 있나요?

 

그러니깐 강한 자는 절대 하나님 안 믿게 되어 있어요.

지지리 못난 자들이 포기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 복음인줄 믿습니다.

 

이단 속에 미끼로 던져 버린 거죠.

이처럼 많은 도구를 사용하시어 택한 자라면 그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하시는 겁니다.

모든 것이 다 도구예요

질병.사업실패.고난.낭패.좌절.이단까지도 말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가라지를 뽑아 버릴까요?

'가만 두어라,(마13장) 가라지 같은 이단도 써먹을 때가 있다는 거죠.

 

하나님이 욥을 시험하기 위하여 사단이게 그를 치도록 허락했잖아요.

자식이 망하는 일로. 육신의 병으로 친구들이 조롱하는 것으로 흔듭니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는 그가 오해하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 즉 바른 복음으로 돌아서게 하시는 거잖아요. 이것이 회심 이예요.

울고불고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진리에서 바른 복음으로 돌이키는 것 이것이 회심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걸 위하여..필요하면 사단도 들어 쓰시는 하나님 입니다.

질병도 쓰시는 하나님이에요.

 

사업이 망하는 일로도 정신 차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세요.

 

우린 무조건 병 낳게 해 달라고 사업 잘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무관할 수 있어요. 그러니깐 여러분! 기도 응답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도리어 그 속에 숨겨진 아버지의 뜻을 알게 해 달라고 매달려야 합니다.

 

이제부터 난 기도하는 것마다 다 응답받아 알고 보면 이런 말보다 더 무식한 말이 없는 거죠. 응답에 집착하는 것은 여전히 주인은 나예요.

나는 아무 문제없이 언제나 만사형통해야 하는 나, 탐욕에 사로잡힌 자기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어요.

 

이런 것으론 이런 신앙의 자세론 감히 십자가에 담겨진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없어요. 왜 십자가를 지라 하시는지요.(마16:24) 예수가 진 것으로 뭐가 부족해서 말입니다.

 

그 십자가의 고난을 겪어보지 않은 자 그 사랑 모른다는 겁니다.

(주님의 쓴잔을 마시지 않으면 주님이 사랑을 모르리~)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그 길은 존귀와 영광의 길이 아닙니다.

 죄인으로서 멸시 받으며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이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4;13)

그러니 이 세상에서 호위호식 고난과 질고와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고 평탄하게 지낸다.

어느 면 에선 다시 못 올 귀한 기회를 허송세월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어패가 있는 말인지 모르지만) 고난과 문제들을 무조건 없애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어차피 성도에겐 고난은 필수코스 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그 코스가 없다면 이상한 거 아니겠어요.

 

창세기에 인간이 어떻게 창조됩니까?

흑암과 공허와 혼돈 속에서 생명이 창조됩니다.

창조의 메카니즘 하나님 창조의 과정이 이런 거예요.

 

인간이 잘만 했으면 예수님이 안 와도 되었고 십자가도 필요 없었던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인간이 범죄 하여 십자가가 골고다에 선 것이 아니고 인간은 애당초 십자가를 거쳐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런 언약으로 십자가는 창세전에 이미 세워진 겁니다.

 

만일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작정에도 없었던 십자가가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거라면...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은 예기치 않게 서둘러 그 문제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갑자기

십자가가 세워진 거라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 따먹을 것도 모르고 있었던 그런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잖아요?

여러분! 그런 하나님을 믿을 겁니까?

 

십자가는 그렇게 병고치고 어떤 문제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갑자기 세워진 것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 바로 십자가였다는 거예요.

 

어둠 저편에 빛이 있습니다.

인간은 어둠 가운데 홀로 던져진 것 같은 거 있죠.

육신이란 사망의 옷을 입고 이 땅에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 아담은 경험을 통하여 배우게 됩니다.

"선악과 먹지 말라"(창2;17)

그거 따먹고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그 죄를 인간은 해결한 길이 전무하고 오직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은혜를 알라는 겁니다.

선악과 통해 십자가를 배우는 거예요.

경험만큼 큰 스승은 없다고 하잖아요.

왜 진리가 아닌 비 진리를 경험케 하시며 빛이 아닌 어둠을 먼저 경험하게 하실까요?

 

2)여기에 십자가의 필연성이 있는 겁니다.

십자가는 아담의 범죄로 오지 말아야 될 것이 온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와야 할

사랑의 절정이 십자가였다는 겁니다.

 

은혜가 은혜 되기 위하여 먼저 죄를 알아야 했듯이 그것은 하나님만 찬송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만 영광이 되기 위한 필연적 섭리인 것이죠.

그래서 사망 가운데서 생명을 썩어질 육신의 한계 안에서 영생을 나타내시며

죄 가운데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고, 율법 아래서 은혜를 알게 하시며,

죽어서 사는 원리를 보여주시려는 것이 십자가였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 죄인 하니까 나하곤 상관없는 거로구나 할지 모르지만, 인간은 날 때부터 죄를 물고 태어납니다.

인간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태어나서 먼저 울죠. 나란 자기존재 증명이에요.

또한 난 배가 고프다 이겁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젖을 물고 빨고 하면서 쾌락의 달콤함을 배우게 됩니다.

언제나 막 울고 보채면 풍요로운 것으로 채워지네, 요런식 신앙이 뭔 신아이죠?

막 땡깡기도 하면 하나님 응답하신데 이거잖아요?

유아기식 기도(배워야 해요)

 

땡깡을 부리고 억지를 써도 안 되는 것이 있네, 요걸 알기까지 달라는 대로 주는 겁니다.

(구하는 대로 응답 받았다) 요거 자랑이 아닙니다.

 여러분 기도할때마다 응답 받는다는 얘기는 나 아직 어린애 신앙이에요.

그러는 겁니다.

 

너무 내 기도응답, 내 관심사에 집착하다보면 하나님의 뜻은 안 보이고 문제 해결이 하나님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분명 이렇게 기도 했는데 응답은 전혀 다른데서 생각지 않게 답이 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게 되면 이런 것이 보이게 되는 겁니다.

예전에 목회할 때 갑자기 기도 안하던 분이 기도를 시작하면 큰일 났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가 뭘까요?

더 나아가서 뭔가 응답을 받았다고 하면 더 겁나는거 있죠~

 

문제를 주셨을 땐 그 문제 안에서 답을 풀라는 거지 그 문제를 없애 주세요? 하는 건 시험 거부하는 격이잖아요.

 

이처럼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창조주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왕이라고 내 말 안 들으면 울어버린다. 엄포를 놓고 윽박지르는 것을 먼저 배웁니다.

타인을 굴복시키는 것부터 배워요.

죄부터 배운다는 겁니다.

죄의 맛을 먼저 터득한다는 거예요. 참으로 놀랍죠~

 

태어나서부터 엄마가 날 낳으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아기 보셨어요.

저건 인간이 아니라고 신이라고 놀랄 겁니다.

인간적인 것이 인본적인 거예요.

인본주의가 날 때부터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무서운 죄  죽을 때까지 우리 안에서 피와 살처럼 붙어 있어 결코 죽는 순간까지 떼어낼 수 없는 거란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겁니다.(롬7:11)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고 천사처럼 성인군자로 변했다는 것이 아니잖아요.

여전히 어제와 나는 다른 사람이 아냐?

크게 변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거 하나가 다른 겁니다.

이것이 기적이에요.

나란 존재로는 도저히 예수 믿을 수 없는데 그 믿음이 나에게 선물로 주어지면서 믿게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엄밀히 말해 주님의 겁니다.

 

여러분 구원의 확신, 확신 하는데, 확신은커녕,

정말 내가 구원 받았나? 이렇게 믿어서 천국갈 수 있나?

이런 의심이 전혀 안 나와요~ ‘그럼 그것도 큰일인데요,

(확신이란 건 ~사상, 신념, 종교 속에나 있는 거예요)

 

기독교의 믿음은 그 믿음 자체도 내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은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의심도 나타나고, 염려와 두려움도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겨주시는 은혜 때문에...

이걸 약속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봐 주시는 거잖아요? 네가 믿었다고 여겨 주시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선의로 여겨주시고 의롭다 칭해 주시는 거지, 내가 잘 믿어서 하나님 맘에 들어서

대견함에 보상차원으로 주는 것도 어떤 굳은 확신 때문에 주는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왜 하나님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은혜를 알고 창조주의 의존적 존재임을 알아먹는 철든 인간을 만들어 놓으시지 선악과 입에 물고 태어나게 했을까요?

 

성경은 모든 인간을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고 불순종에 가두셨다는 말씀이 있어요. 죄를 경험하지 않고는 의를 알 수 없고요.

죄인 됨을 자각하지 못하면 결코 십자가를 볼 수가 없는 구조, 그래서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는 거 이것이 성경에 반복되고 있는 대속의 원리. 십자가가의 원리 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제한적 존재로 육신을 입혀 시공 안에 역사 안에 보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계획이 있고 뜻이 따로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육신의 한계 안에서 죄라는 것을 실감하고 인간은 그 죄의 집요함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뼈저리게 배우게 하시려는 겁니다.

 

죄인의 자각이. 바로 인간 처음자리 인식이잖아요?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티끌 됨을 스스로 자각 하라고 인간의 한계를 폭로해 내시는 것이 우리가 사는 역사에요.

 

그러니 우리 성도는 이 땅에서 잘되는 꼴을 볼 수가 없는 거예요.

너 티끌인데. 똥 덩어리에 불과한데. 네가 잘 먹고 잘 되고 부러울 것이 없이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게 되면 그 하늘나라의 필요성이 없어지잖아요.

 

자기 결핍이란 것을 느껴보지 못한 인간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너무 불행한 겁니다.

(그런 분이 있을 거 같아 겁나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 하는 건데요?

이건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빈곤하게 그것이 주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 내가 처하든지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느냐? 인간의 결핍을 느끼느냐의 문제예요.

 

하나님은 인간들이 태어나자마자 육신의 정욕에 굴복 당하게 하십니다.

언제나 육신에 지게 되어 있어요.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 했죠.

이 말이 '여러분이 육신대로 더 이상 살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더 이상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어야 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요.

 

그러나 그 반대에요.

여러분 성령의 인도 불순종하지 않고 따라갈 자신 있어요.

난 이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으니 육신의 정욕에 굴복하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고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넘어지게 되어 있어요.

실족하게 되어 있어요.

남을 판단하게 되어 있어요.

자기를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한계를 체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극복하려는 극기 훈련 같은 것이 신앙의 대단한 경지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어 있어요.

 

거의 99% 고급한 성화주의 황홀한 신비주의에 빠집니다.

 

신비주의의 함정은 내 힘으론 안 되는데 하나님이 능력 주시면 된다는 거예요.

응답 받고 예언하게 하고 능력 행하게 해서 하나님이 능력의 도구로 나를 쓰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뭔가 인간이 무력하다.

자길 부정해야 한다.

십자가를 져야한다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은연중에 실증이 나게 되어 있어요.

언제까지 자기부인만 하다 갈 겁니까?

이제는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거 아냐?

이제는 변화되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말입니다.

 

메너리즘에 빠져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소리 너무나 솔깃하게 드리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해, 사명 감당해야 해, 그러니 능력 받고 은사 체험해야 해 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쓰신다는 데 누가 마다하겠어요.

'탐스럽고. 먹음직하고~,

마귀의 속삭임은 언제나 그렇게 오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도구로 쓰세요.

나의 육의 연약을 통하여 넌 안 되는 부인해야 할 존재로 인정하도록 하는데 쓰는 겁니다.

능력이나 줘서 날 할 수 있는 자로 세우는 일에 쓰는 거 아니에요.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내 한계를 절감하게 하도록 하고,

'선악과 따 먹지마,(창2:17)

'하나님  사랑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해야 해,(눅10:27)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여러분 이거 우리가 지켜낼 거라는 기대로 주셨다고 보면 아직도 눈이 열리지 않은 거예요.

 

네 주제를 파악하라는 거예요.

네가 이런 거 지켜서 뭐가 된 줄 알아 오직 십자가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먹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진짜 능력 받으면 내가 쭈그러드는 거예요.

배추 저려지듯이 성령의 불로 소금 치듯 한다고 했잖아요.

 

능력 받고 으쌰~ 으쌰가 어딜...

내 속을 들키게 되니 고개를 못 들겠는데, 내 어둔 속을 밝히 비춰내어 나의 무력함을 폭로해내는 것이 성령의 불 성령의 권능입니다.

나를 죽여 내는 권능이지 날 살리는 능력이 아니에요.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십자가는 죽은 자를 살려내는 능력이지 산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역사 안에서 십자가를 만날 때까지 죽여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 입니다.

 

나 죽었음을 아는 자에서 나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네, 예수와 하나 되는 겁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거예요. 십자가 안에 내가 있었다는 거죠?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시간 속에서 없었거든요.

그래서 십자가는 시공을 초월하여 골고다에 선 겁니다.

그래야 십자가 전이나 후나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겁니다.

 

이 십자가를 알긴 전까지 우리로 세상의 자랑에 탐닉되게 하세요.

이 세상이 너무 좋은 거예요.

세상이 너무 좋아 하늘의 소망마저 잃어버리게 만든다면 뭐가 잘못 되 거예요.

세상이 그리 녹록하지 않죠.

 

반대편에 있는 것은 서로 통한다 했잖아요.

아닌 것을 찾으면 되니까요?

그러나 엇비슷하면 절대로 합쳐지지 않는 법입니다.

진리는 비슷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 정 반대 편에 있다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에게 인도받기 위하여 죄악 속에 내 던져지고 세상에 버린바 되고

율법과 저주에 묶이게 하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3),진리는 십자가 안에서 성취 되었고 그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거예요.

왜 사람은 먼저 진리를 주지 않고 율법을 먼저 주시고 죄를 먼저 접하게 하시고

사망에서 생명을 주시는가?

 먼저 진리를 주심 아무도 깨달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거짓된 것을 경험케 하시고 거짓이 아닌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 진리임을 알게 하시는 겁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결단코 진리에 이를 수 없는 자임을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 하잖아요.(롬5:20)

죄를 통하여 은혜를 알게 하신다는 거지 죄를 많이 지으면 자을수록 좋다는 얘기 아닙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죄를 알게 하심은 하나님의 의를 거저 입혀 주시기 위함이에요.

의는 절대로 인간이 노력으로 쟁취 할 수 없는 겁니다.

인간은 죄밖에 다른 것을 낼 수 없는 죄 자체거든요.

의는 하나님이 거저 입혀 주셔야 하는 의복 같은 겁니다.(갈3:27)

죄 속에 뒹굴어 본 인간만이 죄가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 인정하며 절감하게 되어 있어요.

선악과가 은혜 베푸는 수단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알 때, 선악과 안에서 십자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창조의 섭리는 없음을 전제로 한 것이잖아요.

있는 가운데 새로 짓는 것은 수리나 보수지 창조라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런고로 내 없음과 사망을 인정하지 않고 새 창조의 은혜를 입을 수 없는 것이죠.

 

인간을 의인으로 지었음에도 죄를 경험케 하시며 세상에 육을 갖고 보내신 이유는 내가

죽은 자이며 나는 스스로 살 수 없는 자에게 어떻게 하나님은 생명을 부어주셨는지를 알게

하기 위함 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그러므로 십자가는 예수의 죽으심의 자리가 아니라 내가 죽은 자리라는 내 존재의 확인이

먼저 돼야 하는 것이죠.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가 대신 죽으신 것이지 원래 예수가 죽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왜 십자가에서 죽어야 마땅한 존재였는가?

믿어지는 것 그 사실이 내 삶에 실체화 되는 것 이것이 자기부인이에요.

예수 안에서 내가 죽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내가 새 창조의 대열에 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표징이요. 그것이 세례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의 죽으심을 당신이 받아야 할 세례로 말씀 하셨어요.(눅12:49~50)

 

4),왜 십자가이어야만 하는가?

우린 다 죽어 있는 송장과도 같은 입장입니다.

그런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찾고 만날 수 있냐 이거죠.

기도로도 만날 수 없는 분,

지식으로도 포착되지 않는 분,

내 자의로 믿을 수도 없는 예수, 기도로도 안 되고 성경을 파도(원어파자) 안 되고 의지로

믿을 수도 없으면 어떻게 하란 말이죠.

 

죄인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겁니다.

죽어 마땅한 자 십자가를 만나기 전에 내가 죄인이란 전제가 성립 돼야 하는데 자신이 무엇 때문에 죄인인 것을 몰라요.

죄인인 우리 모두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예수 믿을 수 있는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내가 나로 살아 있는 한 내 안에 예수는 없는 것이고 그런 난 예수를 믿을 수 없는 겁니다.

 

죽지 않고 믿으려하니 예수를 내 밖에 두고 섬김의 도구로 삼는 것을 믿음인줄 우리는 착각합니다. 내 죄를 주문처럼 ‘믿습니다. 라고 외우기라도 하면 감쪽같이 죄가 없어지는 부적처럼 예수 십자가를 그리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믿는 자들 주문 외우듯 무조건 예수 피만 외쳐 댑니다. 왜 그런 거죠? 내가 믿으려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자들에게 예수 십자가는 감추어져 있는 겁니다.

 

예수께서도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 하셨잖아요.

건강한자에겐 의원이 필요 없는 겁니다.(마9:12)

우리가 손발 다 썩어 들어가지만 그걸 못 느끼고 있을 뿐인데 죽었던 감각이 돌아오게만 하면 고통스러워 팔짝~ 뛰게 되어 있어요.

 

율법은 통증을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문둥병자 소경인 것을 알게 하시고 인정하게 하신 후에 낳게 하시고 고쳐 주시는 것 아니 새롭게 창조 하시는 것

이것이 창조의 메카니즘 입니다.

만일 진리가 먼저 오고, 선이 먼저 왔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인간이 죄를 모르고 타락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더 이상 죄와 악을 가르칠 기회가 없게 되는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알 수도 느낄 수도 실감나지도 않게 될 뿐만 아니라

아무도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 율법을 저들에게 주었는데 저들을 그 율법을 주신 목적을 제대로 활용했느냐?

그래서 아무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지 못했던 거예요.

저들은 예수 죽인자로 성령이 오셔서 폭로해 내심으로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인 자 맞네요.

자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성령의 계시로 인해서만 밝히 보이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 것입니다.

 

이처럼 멀리서 보면 희미합니다.

저거 바라보고 치료 받으라는 건지, 저거 바라보고 섬기라는 건지,

그러나 성령이 오면 밝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니까요?

우리를 예수 죽인자로 고발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우리 모두 심판 받아 지옥에 떨어질 자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누가 건짐을 받겠습니까?

누가 용서 받겠습니까?

 

하나님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십자가가 골고다에 섰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미 창세전부터 하나님 언약 안에 어린양의 십자가가 하나님 계획 속에 있었던 사실 누가

부정하겠어요.

 

이걸 부정해 버리면 십자가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사건이요.

그 아들은 공연히 희생된 제물밖에 안 되는 거예요.

죄인들을 구해 내시기 위한 공연한 고난을 예수가 받아버린 결과 밖에 안 되는 겁니다.

 

이런 십자가 우리들 안에서 동정을 살 수 있어도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낼 능력이 없는 거예요.

나를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여 내시고 함께 부활에 동참시켜 하늘 영광을 받게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 동정을 받기 위해 내 대신 죽으신 거 아니잖아요.

죄 없는 자를 세상에 역사 속에 던지심은 뭘 하라고 가 아니라 뭐가 부족해서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이 진리를 알라고 십자가 은혜를 배우라고 이 세상에 보낸 거라 이말 입니다.

우리를 어떻게 지었는지를 그걸 아는 것이 영생이에요.(요17:3)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계시 하실 때만이 인간은 그 세계에 대한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요. 부르심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육신(썩어질 것)을 쓰고 왔기에 세상 것을 먼저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보다는 법이, 은혜보다는 행위가, 예정보다는 내 의지 발동이, 십자가를 통한 자기부인 보다는 체면유지가, 자기 부정보다는 자기 변화가 앞서게 되어 있다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이렇게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죽지 못하는 존재가 맞네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때 그걸 믿는 자들에게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 은혜라 이

말입니다. 그것이 여겨주심의 은혜인 것이에요.

 

기독교는 섬김의 종교가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에 나를 동일시로 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없음으로 자기 존재 근거 자체를 부인하는 자기부인의 신앙이 바로 십자가 지는 삶인 겁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섬기려 하는 거죠?

섬겨 어떤 유익과 혜택을 보려는 목적이잖아요.

주체는 언제나 나이고, 하나님은 그 대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내 잘되는 수단이요. 방법이 되기 때문에 믿는 것뿐이죠.

이런 사람은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와 하나 된 그리스도의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의 죽으심 십자가가 내 삶속에서 체휼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아무도 내게 올 자가 없느니라.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기 부정이 먼저 고백되는 자들에게는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성과 주체성을 챙기는 행위가 얼마나 위선적이며 주제넘은 일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회만 생기면 자아 확립에 올인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체에요.
이런 자신의 실체가 폭로될 때, 이것이 내 모습임을 인정하고 그래서 예수 안에서만 구원이 가능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거 깨달으라고 이 세상에 죄인의 모습으로 보내진 겁니다.

우리는 이제 성숙해서 더 이상 예수의 은혜가 필요 없는 자가 아니라  일마다 때마다 역사 속에서 나를 부정하시고 부인해 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날마다 체험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만 생명이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깨닫고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에 의해 귀하게 쓰임 받고 있음에 감사하며 찬송하는

여러분 되시기만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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