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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1:15-18http://onlycross.net/voice/sam1/re-111518.wma<본문>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요한계시록 11:15-18)

 


<설교>
현대 교회는 이구동성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강조합니다. 감사하지 아니한 것은 바른 성도의 모습이 아니며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감사하지 아니할 때 하나님은 주신 것을 거두어 가실 수도 있음으로 엄포를 놓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는 신자로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가 하라고 시켰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감사의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로서 자연적으로 감사함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인 것입니다.

 

현대 교회가 감사를 강조하면서 빼놓지 않는 것은 돈입니다. 즉 감사에는 필히 돈이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돈을 헌금함으로써 감사가 되는 것이고, 돈의 액수에 따라서 감사의 정성도 정해지는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감사를 강조하는 이유는 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모든 절기가 돈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사에도 많은 제목들을 붙여서 헌금하도록 가르치고 있고, 성탄절, 송년주일, 신년 주일, 부활절, 맥추절 등등 수많은 날을 만들어서 이 역시 헌금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음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멸망자의 모습에 지나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감사란 돈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과연 얼마를 가지고 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가 되겠습니까? 과연 얼마를 주면 영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전 세계에 있는 돈을 다 끌어 모아도 영생을 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인정하십니까? 하나님이 돈을 준다고 해서 은혜를 파시는 분입니까? 돈을 헌금한다고 해서 복을 주시는 분입니까?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갚고자 하는 것 자체가 은혜를 무시하는 것이며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곧 멸망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신자에게 있어야 할 참된 감사는 무엇이며 감사의 내용은 또 무엇인가를 하늘에서 있었던 감사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에 보면 24장로가 등장합니다. 24장로란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제자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을 위해 모든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을 위해 족은 순교자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들이 하늘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감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따라서 이들의 감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신자에게 있어야 할 진정한 감사는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감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자기 육신이 중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신에 득이 되는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해가 되는 일에 대해서는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이 땅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감사를 보면 하나같이 자신의 잘됨에 그 초점이 모여 있습니다. 수능시험 점수가 잘나온 것, 좋은 대학에 합격한 것, 사업이 잘되는 것, 복권에 당첨된 것 등등 육신의 잘됨이 곧 복이며 그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늘의 것은 관심 밖의 일입니다. 하늘의 것이 무엇이든, 또 그것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자기 육신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자는 비록 육신은 땅에 존재하지만 하늘의 사람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일에 관심을 둡니다. 육신은 땅에 있지만 하늘의 것이 관심의 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관심이 하늘의 것을 향할 때 자연히 감사는 하늘의 일, 하늘의 것을 중심으로 나타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의 감사는 무엇에 국한되어 있으며 무엇과 연관되어 있습니까?

 

물론 땅의 것으로 감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부정할 수 없을진대 우리의 생존 자체가 감사해야 할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과연 나의 생존만으로 감사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고, 설사 하나님이 세상의 좋은 것을 풍요롭게 주셨다 할지라도 단지 세상 것을 주신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옳은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의 감사와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늘에서 감사하는 이십 사 장로들을 통해서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7-18절을 보면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고 말하는 이것이 이십 사 장로들의 감사의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이것이 무슨 감사의 내용인가?’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분명 아주 낯선 감사일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도 아닌 것 같은 감사가 하늘에서 이십 사 장로라는 순교자들에 의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과연 하늘에서 벌어지는 이십 사 장로들의 감사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늘날 신자라고 일컫는 우리 자신들의 감사와 이십 사 장로들의 감사를 비교해 보라는 뜻은 아닐까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에 대한 감사가 실상은 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으며, 신의 마음과 일치되지도 않은 잘못되어 있는 것임을 고발하기 위한 것은 아니겠습니까?

 

장로들의 감사는 옛적에도 지금도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심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 주시는 일을 하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장로들의 감사와 우리의 감사의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장로들의 감사에는 자신의 문제, 자신의 일이 개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인해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자신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성취되었을 때 감사하는 것입니다. 남의 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됨으로 다른 사람이 못될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잘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감사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편협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이러한 감사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장로들의 감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시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고 믿는 자에게는 상주시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러한 감사를 하시고 있습니까?

 

믿는 자에게 상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믿음의 사람답게 만들어 가시고, 그리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셔서 하늘의 상을 주시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완악함을 꺾기 위해 일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세상이 아닌 하늘에 두기 위해 열심히 일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약속을 성취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감사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에게 실패가 있었고 고통이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을 붙드시고 여러분의 심령을 깨우시사 하늘에 붙들어 놓기 위해서 하신 하나님의 열심임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늘의 상을 주시기 위해 일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흔적임을 생각해 보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데살로니가의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항상이란 어떤 형편과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음을 말합니다. 범사 역시 모든 일을 뜻합니다. 고통이든 어려움이든 아니면 풍성함이든 모든 일에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신자인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육신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무엇을 주기 위해서 일하시는가를 생각하십시오. 세상 것입니까? 하늘의 것입니까? 하늘의 것도 주시지만 세상 것도 주신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늘과 세상 그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강한 탐욕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하늘의 상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상을 받을 자답게 만드시기 위해 여러분에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신자는 세상의 무엇에서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발견하면 하나님의 일로서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피하고 금할 것은 내 육신을 기준으로 해서 감사할 내용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있었던 좋은 일만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하루하루가 감사할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게 하신 인생에서 내게 감사가 될 것만 골라내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하는 감사입니다. 이것을 과연 진정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자가 십자가를 믿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다가 예수님처럼 죽을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자가 살기 위해서 육신에 도움 되는 것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그것으로 감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감사절은 오히려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일을 보면 사단에게 넘어간 인간의 심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에 복종하는 것에서 자신을 생각하고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자신에게 좋은 것만을 취하고 원하는 심성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심성에서 나와지는 감사가 어떨지 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한일서 2:15-17절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것과 함께 세상의 것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분명히 말씀하기를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며 그것들은 하나같이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 것으로 감사하겠다는 것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세상 것을 바라보지 마시고 세상 것, 세상일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 때문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권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 일하시는가를 이십 사 장로들의 감사를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감사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되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하늘의 것을 소망삼고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자입니다.

 

신자는 세상 사람의 감사에서 그들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자의 감사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으로 우리의 속을 살피고 참다운 감사로 고쳐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진다면 오늘 감사절은 성공적인 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자에게는 감사가 메마를 수 없습니다. 육신을 기준으로 한다면 감사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숨쉬는 것 하나에까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에서까지 나의 영혼을 하늘에 붙들어 놓기 위한 하나님의 일로 인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감사는 풍성하며 범사가 되는 것이며 메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5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의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는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 감사하시는데 그 내용은 아버지의 이것을 누구에게는 감추시고 누구에게는 나타내신 일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이란 27절의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곧 아들을 알고 아버지를 아는 일입니다. 따라서 지혜와 슬기를 가지고도 아들과 아버지를 알 수 없고 아무리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타내신 그들만이 알 수 있게 하신 것으로 감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놓고 본다면 지금 우리가 아들을 알고 아버지를 알고 있다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결과가 아닙니까? 세상의 어떤 지혜로도 알 수 없는 분을 알게 된 은혜를 누리고 있는데 이것이 감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하늘 나라에 있게 하시려고 수고하고 계십니다. 이것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감사의 내용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감사하고 좋아하기 보다는 세상을 멸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건지심으로 하늘에 있게 하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이러한 감사가 있다면 그가 바로 하늘에 속한 성도입니다.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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