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7 10:16

(부활절) 부활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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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8:1-10http://onlycross.net/voice/ma280110.mp3


<본문>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10)


<설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전지전능하다고 할 수 있는 능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의 전부를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전부를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 의학, 과학, 우주항공학, 천문학 등등 그 모두를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죽음’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으뜸 되는 위대함이요 전지전능함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위대함과 전지전능함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1절을 보면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고 말합니다.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에 대한 옛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즉 무덤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단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분이었을 뿐인 것입니다. 무덤을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다른 소망과 기쁨과 감사가 없습니다. 이들이 죽은 예수님 앞에서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으로 기뻐하고 무엇으로 감사를 하겠습니까?


이런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5-6절)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인들은 예수님이 무덤에서 살아나셨음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달음질하게 됩니다(8절).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부활하신 분입니다. 부활하셨다는 것은 죽음도 예수님을 이기지 못하였음을 뜻하는 것이고, 이것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예수님에게서 모두 해결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의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는 위대함이며 전지전능함입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위대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고 따라서 믿음의 삶은 그 믿음만으로도 부족함이 없고 힘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믿음의 삶이 그러한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활주일이라고 이름 하는 이 날에 우리 자신에게 물을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까?’ 이 물음 앞에 우리의 속마음을 정직히 내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현재 모습은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한 채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이 아니라 무덤에 죽어 있는 예수님으로 우리의 마음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말을 아무리 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부활을 믿는 믿음의 흔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다’고 소리쳐도 중요한 것은 믿음의 모습입니다. 물론 믿음의 모습이라는 것을 어떤 실천으로 받아들이지는 마십시오.


야고보서 1:15-17절을 보면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행함 없는 믿음이라는 것도 믿음의 모습이 없는 믿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모습이란, 믿음이 있기에 증거 되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에 의해서 맺어지는 열매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가난한 자들에게 쓸 것을 주지 않고 말만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고 하는 것을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말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쓸 것을 주는 것이 믿음이라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는 믿음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무엇인가가 곧 긍휼인 것입니다.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는 말이 긍휼의 전부일까요? 긍휼이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들이 쓸 것을 나누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합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믿음은 사변적 사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말하는 십자가나 부활이 사변적 사고에 불과할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여러분이 십자가를 말하고 은혜를 말하고 부활을 믿는다고 해도 그것을 믿음으로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한 대로 죽은 믿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 부활의 기쁨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말을 하면서도 감사함이 없습니다. 은혜를 말하면서도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주어진 죄 용서의 은혜가 세상 모든 것을 주시는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얘기하면서도 죽음이 해결된 기쁨의 맛을 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기쁨이 항상 사변적인 사고로 그칠 뿐, 은혜와 기쁨이 우리의 삶에서 발산되는 그 무엇이 없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항상 자신의 힘과 가치를 보여주고 증명하고 싶어 하는 유혹에 빠져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보여주는 것에서 믿음의 보람과 보상을 얻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붙들게 됩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자랑거리가 됨으로써 그 교회에 속한 자신을 우쭐대고 싶은 것입니다. 때문에 내가 다니는 교회가 남에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고 여겨질 때 불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39-40절을 보면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라는 구절을 보면, 세상이 신에게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가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렇게 맥없이 죽어가지 말고 능력을 보여 보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구원할 능력도 없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그렇게 죽어 가신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나타내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예수님이 답답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조롱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보란 듯이 하늘 군대로 동원해서 원수들을 모조리 처단하고 온 세상 위에 임금으로 우뚝 서신다면 얼마나 후련하고 시원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죽으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가십니다. 10절의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을 봐도 참 답답합니다.


그토록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믿지 않고, 부활하심도 믿지 않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억울하게 당하셨으면 그들을 찾아가셔서 ‘너희가 죽인 예수가 이렇게 부활했다. 이제 내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겠는가?’라고 외치시면서 혼쭐을 내시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들이 잘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멋있는 복수고 분풀이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 전혀 상관없이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갈릴리는 교회가 흔히 말하는 비전이 없는 곳입니다. 시골의 작은 마을 일뿐입니다. 하지만 갈릴리는 예수님이 처음 복음을 외치신 곳입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을 만나고자 하시는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자리에서 주님을 좇는 자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결국 제자의 일이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증거 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의 길을 가는 신자에게 비전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지금 살아가는 자리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외치는 비전이라는 것은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에 붙들려 있지 않는 모습인 것입니다.


믿음은 나를 증거하고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자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교회를 세우신 것도 바로 이 일을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항상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게만 모든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지 교회에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믿음을 교회가 잘되고 교회가 자랑거리가 되는 용도로 이용하려고 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비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말고 교회의 성장에 비전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그리스도께 관심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주장하는 것은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누가 했습니까? 어떤 사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사도들은 매 맞고 죽어가면서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증거했을 뿐입니다.


죽음을 해결하신 그리스도의 부활이 여러분에게 놀라운 능력과 기쁨과 힘으로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무엇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죽음이 해결된 길에 우리가 들어선 것으로 감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의와 진리와 생명에 참여하게 된 것으로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신자이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입니다.

(200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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