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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50:22-23http://onlycross.net/voice/2007(감사절).mp3


<본문>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22-23)


<설교>
본문에 보면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말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정한 때에 희생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리고 말씀을 적은 종이를 담은 작은 상자를 어깨나 미간에 달고 다녔고  또 집의 문설주나 곳곳에 써 붙여 놓았던 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잊고 살았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여러분께도 누군가가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라고 책망을 한다면 분명 인정하지 않고 반발할 것입니다. 주일이면 꼬박꼬박 교회를 찾고 기도하고 성경을 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이 보이기에 그런 자신이 하나님을 잊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라면 이스라엘도 그 정도는, 아니 그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여호와를 잊었다고 말한 것을 보면 가시적인 그러한 생활들이 여호와를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3절을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합니다. 

 


말한 대로 이스라엘은 제사를 잊고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사에 대한 열심만큼은 나무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는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의 제사에는 감사가 제외되어 있었고 따라서 제사를 드리긴 하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감사로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그것이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예배당에서 행해지는 모든 예배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오직 감사로 드리는 예배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감사가 빠진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오랜 세월 흘러온 제사가 종교적 관습이 되고 형식적인 것이 됨으로써 제사의 의미를 잊어버렸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제사를 드리면서도 제사가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지 못하고 감사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제사 드렸다는 것으로 자기만족을 삼았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에게 감사를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곡식을 추수하고 감사를 드리는 절기가 있었습니다. 맥추절과 추수절이라고 하는 장막절이 그것입니다. 제사와 함께 그러한 절기까지 형식적인 것이 되었다고 해도 곡식을 풍성하게 수확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겠습니까? 풍성한 수확들이 모두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을 잊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감사는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풍성한 결과 외에는 하나님이 베풀고 계시는 은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 받고 있으며, 하나님만이 진심으로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믿음이 없이 살아간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면서도 매일 같이 베풀어지는 은혜를 보지 못하였으며 감사의 절기를 지키면서도 눈에 보이는 풍성한 것만 바라볼 뿐 보이지 않는 풍성한 은혜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이라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 채 살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형편은 오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을 잊고 산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알지 못한 자로 살아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드리면서도 감사가 빠진 예배를 드리고 있고, 오늘처럼 추수감사절로 지낸다고 하면서도 매일처럼 베풀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잊고 있거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채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는 감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것을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으로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을 잊었다고 말하고, 감사의 절기 역시 잊지 않았던 이스라엘에게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제사가 제사가 아니었으며 감사가 감사가 아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이스라엘의 감사는 세상과는 달라야 했는데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감사만을 행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감사는 세상 사람들의 통상적인 감사와는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받고 싶어 하는 제사는 불신자나 이방신을 믿는 자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이 나름대로 자기들 신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말하자면 가시적인 풍성한 은혜에 대해서는 누구나 성경이 요구하지 않아도 쉽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쏙 드는 좋은 것을 받고 감사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인간으로선 자연스런 반응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가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감사의 제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감사절이라는 것이 단순히 그 해 수확한 것이나 좋은 일들에 대한 감사로만 그쳐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의 제사는 세상의 감사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하심을 전하고 증거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외면한 채 하나님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 풍성히 채워주시고, 자기들 형편을 나아지게 만들어 주는 분으로만 섬겼을 뿐입니다.

 


본문은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이웃을 하나님 사랑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증거 했던 제사장으로서의 열매를 감사함으로 바쳐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께 자기 원하는 것만 받으려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 행위가 옳지 못한 것입니다. 

 


신자가 감사절에 하나님께 드릴 진정한 감사는 올 한해에 하나님의  뜻대로 진심으로 이웃을 제대로 섬긴 일이 있는지 점검한 결과여야만 합니다. 자신의 선행을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사랑으로 이웃을 섬겼으며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이었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거룩한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해 주신 것부터 감사해야 합니다. 죄인의 괴수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더 큰 축복임을 깨닫게 해 준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악에 빠져 하나님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바라 볼 때마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오직 먹고 마시는 것에만 힘쓰면서 서로 최고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다투며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서 세상과는 달리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러한 감사가 없다면 그는 하나님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잊고 있는 자가 하나님을 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상에 있게 하신 것이 남들보다 조금 잘 먹고 잘살게 하기 위한 것은 분명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잘 먹고 살든 못 먹고 살든 하루 세끼 먹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옷을 몸에 걸쳤든 몸을 가리는 것에는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라면 세상에서 남보다 조금 잘 사는 것에 삶의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백성으로 삼으시고 세상에 있게 하신 그 뜻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면 신자에게는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감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받은 것보다는 이웃에게 좋은 것을 졸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귀한 사랑과 은혜로 이웃을 섬길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자로 부름 받은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 이감사가 곧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증거물인 것입니다.

 


 신자가 그 행위를 옳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형제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하고 받은 것이 아니라 형제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이러한 감사로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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