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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12-19http://onlycross.net/voice/go1-151219(부활).mp3
<본문>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린도전서 15:12-19)


<설교>
성경을 보면 신자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다고 해도 믿음의 원리대로 살아가지를 못하고 여러 가지 분란과 의심에 사로 잡혀서 믿음의 중심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자들을 향해 사도들은 편지를 써서 권면을 하였고 사도들의 편지를 통하여 지금 우리의 현재의 삶을 조명하여 살피며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부활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부활이 없다고 하는 그릇된 사상에 미혹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바울은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부활이 없는 예수 믿음은 그 어떤 가치도 없는 헛된 것임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의 형편과 지금 우리의 형편을 비교해 볼 때, 일단 세상에서야 부활을 믿지 않고 부활이 없다고 여기겠지만 어쨌든 정통 기독교라고 말하는 보편적인 교회들은 부활이 없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고린도 교회와 우리는 다른 상황에 있고, 또한 우리는 부활이 없다는 말도 하지 않고 또 그런 말에 미혹되지도 않으니 적어도 본문의 내용은 뛰어 넘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본문은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것입니다.

 

사실 본문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여러분이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내용들이 여러분이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내용에 여러분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여러분들 역시 부활이 없다는 말에 미혹되어 살아가는 고린도 교회의 어떤 이들과 다르지 않음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생각하셔야 할 것은, 제가 여러분 강조한 대로 믿음은 말로서 증거 되는 것만이 아니라 삶으로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내 입으로 말하고 고백하는 내용들이 삶에서 그대로 보이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면 부활을 믿는 자로서의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삶은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들에게는 부활이 없기에 지금의 목숨이 그들의 전부입니다. 다른 삶이 없습니다. 이생에서의 삶이 전부일 뿐입니다. 다른 것에 둘 소망도 없습니다. 이생에 소망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갑니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좀 더 멋있게 편안하게 좋은 것을 누리면서 사는 것을 꿈꿉니다. 삶의 기회를 단 한번으로 여기기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신자는 부활이 있다고 믿고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말하는 부활이 나 자신에게도 진리로 남아 있다면 부활을 믿는 자로서 다른 삶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단순히 다시 산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에서의 새로운 삶의 시작을 뜻합니다. 이 세상은 잠시 잠간의 세월이 흐르고 끝날 것이고 시간이 없는 영원의 세계에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부활입니다.

 

따라서 부활을 믿는 신자에게는 세상에 좋게 보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신자가 부활이란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동일하게 산다면 입술은 부활을 말하되 내 중심에는 부활이 없는, 즉 부활을 믿지도 아니하면서 부활을 말하여 신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고자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확고한 근거로 증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가 부활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보니 나는 예수님 안에서 부활한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됩니다’가 참된 부활신앙으로 자리하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고 말하고, 16절에서도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살리는 방편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죽은 자가 다시 산다는 것의 근거로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노라 하면서 부활이 없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면 부활을 말하는 자신 스스로 부활이 없음을 보이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나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어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의 확실한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헛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부활이 없고 영원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삶이 없다면 믿음은 분명 헛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것은 적어도 이생이 전부가 아니라 내세가 준비되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어디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소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내세를 소원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삶을 뜯어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이 많이 발각될 것입니다. 부활을 말하는 나 스스로 부활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잔뜩 짊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굉장한 말이 아닐 수 없는 부활이 우리의 삶에서 전혀 힘을 나티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속 다르고 겉 다른 신앙만 잔뜩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부활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고, 또 부활이 있음을 굳게 믿고 있다 할지라도 과연 부활이 소망이 나로 하여금 세상이 아닌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는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부활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이생이 전부가 아니기에 이생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비록 지금의 일이 뒤죽박죽되고, 자식의 문제가 뜻대로 되지 않고 어려운 문제들이 나를 기다린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이생의 마지막이 있고,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만을 바라보면 부활이 없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부활신앙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부활을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신자라고 하면서 신앙 문제보다는 세상 일로 인해서 더 안타까워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예수님의 부활 앞에 세워서 깊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인가?’라는 물음을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허망하게 비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죽음으로 끝날 운명 속에서 모든 것이 사라질 것임을 보지 못한 채 다만 순간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위해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안타깝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신자가 소망하는 것이 이생뿐이라면 가장 불쌍한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들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 명심해야 합니다.

 

부활의 자리에 서 있으면 실패가 실패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어차피 사라질 세상 속에서의 실패는 실패로 여겨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잠시 동안의 괴로움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실패의 자리로도 밀어 넣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이 없다면 실패에서 소망할 것도 바라볼 것도 없게 됩니다. 결국 끝없는 절망과 낙심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부활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이 자랑거리로 다가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말하는 사람으로서 부활이 있는 부활신앙으로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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